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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여행을 간다고 하면 그저 신이 나서 따라나서던 딸아이 동윤이가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달라졌다. 이번 방학에 코로만델 반도로 여행을 가자고 했더니 반응이 시큰둥했다. 엄마ㆍ아빠 따라 다니느니 집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즐겁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나와 아내의 여행 취향이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문화 유적을 둘러보는 것이다 보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자연의 풍취나 문화 유적보다는 신나게 몸을 움직여 재미를 느끼거나 뭔가 특별하고 신기한 볼거리에 더 눈길이 가는 나이가 되었으니, 동윤이의 마음이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말한 것처럼, 그 나이 때 아이들의 생명 리듬은 성인의 그것보다 열 배 백 배 더 빠르게 고동치기에 그러한 아이들의 내면을 가득 채우려면 열 배 백 배 풍부한 삶의 질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한없이 느려서 한결같아 보이는 자연의 풍경이나 오랜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는 문화 유적으로는 이제 열세 살이 된 딸아이의 마음을 도저히 채울 수가 없을 터였다. 궁리 끝에 나는, 이번 코로만델 반도 여행은 식구들 각자가 나름대로 여행 일정을 짜서 그것을 모두가 합의하는 일정으로 다시 짜 맞추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딸아이가 원하는 바를 이번 여행 일정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엄마ㆍ아빠가 일방적으로 짠 일정을 따라다닌다느니, 그래서 재미없다느니 하는 딸아이의 불평, 불만도 미리 차단할 수 있겠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동윤이가 짠 일정에서 두 곳이 이번 여행에 포함되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놀이공원 비슷한 성격의 관광지여서, 아내와 나는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인공의 놀이기구 몇 개를 타는 것이 전부이겠지만 딸아이가 원하니 갔다 오자는 심정으로 그곳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두 놀이공원에는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고 어른과 아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조화로움이 있어서 우리도 몹시 즐거웠다. 그렇다.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야말로 여행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매력이 아니던가! 기대 밖에서 만난 기대 이상의 두 놀이공원을 다시 추억해 보는 지금 나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다. 와이아우 워터웍스에서 하늘을 나는 자전거 타기 나비와 난초 정원을 구경하고 난 후 25번 국도를 타고 코로만델 타운을 향해 약 50분 정도 달리니 우측으로 309번 도로가 나타났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 와이아우 워터웍스(Waiau Waterworks)는 비포장도로인 309번 도로의 약 5km 정도 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단순하지만 참으로 재미난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 공원 안으로 들어갔더니,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아담한 연못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약 2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숲의 곳곳에 그리고 연못의 주변에 물을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온갖 기발한 기계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의 힘을 이용해서 음악을 들려주는 뮤직 박스도 있었고 시계추에 거꾸로 매단 플라스틱 병들 속으로 분사되는 물의 압력을 이용해서 작동되는 물시계도 있었다.
사막에서는 얼마나 멀리 달렸는지 모르겠으나 여기서는 작은 관을 통하여 바퀴들 위로 뿜어져 나오는 고압 물줄기의 힘으로 하루에 40km를 달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뼈만 남을 만도 했다.
"엄마 아빠도 재밌었지? 그것 봐, 내가 여기 꼭 오자고 그랬잖아." 와이아우 워터웍스를 떠나면서 보란 듯이 뽐내는 딸아이의 말에 우리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었다. 드라이빙 크릭 레일웨이에서 꼬마 열차를 타고 계곡 오르기 코로만델 타운의 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아침, 우리는 딸아이가 고른 또다른 놀이공원인 드라이빙 크릭 레일웨이(Driving Creek Railway)로 향했다. 전날에는 신나게 자전거를 탔는데 이번에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산 기슭에 자리잡은 그곳에 도착해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기차를 타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철로를 따라 가파른 계곡을 올라가 전망대까지 갔다 오는 일종의 산악열차 관광이었다.
보통 시즌에는 하루에 두 차례(오전 10시 15분과 오후 2시) 열차가 운영되지만 방학이나 여름 휴가철 등 바쁜 시즌에는 두 번을 더 운영한다(오후 12시 45분과 3시 15분). 이것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허탕을 칠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미리 예약을 해서 10시 15분에 떠나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열차는 가파른 계곡을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정말 뱀처럼 기어 올라갔다. 워낙 가파른 곳은 지그재그로 선로를 놓았기에 고개에 올라설 때마다 열차의 진행 방향을 바꿔 주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운전사가 내려서 뒷자리로 옮겨앉는 것이 우스웠다.
그러나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온통 푸르른 녹색으로 물들었고 비할 데 없이 상쾌한 숲의 바람을 들이마신 우리의 폐는 돛폭처럼 한껏 부풀었다. 전망대까지 이르는 선로의 총연장은 3km에 불과한 짧은 거리였지만, 우리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이 지역의 산과 숲은, 광부들의 금광 채굴과 나뭇꾼들의 산림 벌채 그리고 뒤이은 농부들의 목초지 개발로 90퍼센트가 황폐화 될 정도로 훼손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숲을 가꾸어 낼 수 있었단 말인가!
딸아이 동윤이에게는 조금 심심하고 시시한 기차 타기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차에서 그리고 전망대에서 내가 보고 들은 이곳의 풍경과 역사는, 여행정보 안내서에서 코로만델 반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형용사 중의 하나인 '장엄한(magnificient)'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코로만델 반도의 장엄미는, 자연이 펼쳐보이는 아름다움만도, 인간의 손길이 닿은 문화 유적만도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 둘이 함께 서로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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