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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0일 목요일. 오늘 진행로를 결정하는데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사전 허가 노선대로라면 바오딩(保定)-스좌창(石家庄)-타이위엔(太原)을 거쳐 싼먼시아(三門峽)에 당도해야 하는데 우린 스좌창에서 남하해 정저우(鄭州) 거쳐 뤄양(洛陽)으로 들어가길 원했다. 가이드 철봉씬 허가된 노선이 아니어서 곤란하다는 입장이었고 우린 군사적인 문제가 있는 곳도 아니거니와 어차피 시안(西安)으로 들어가는 길목인데 왜 안 되느냐는 생각이었다. 뤄양에 꼭 가야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원래 허가 신청을 넣었던 톈수이(天水) 맥적산 석굴을 경유하는 310번 도로는 군사훈련 중이란 이유로 핑량(平凉) 312번 도로로 대체되었다. 때문에 톈수이의 맥적산 석굴과 더불어 둔황의 막고굴과 따통의 운강석굴까지 실크로드상의 주요 석굴을 답사하겠다는 계획이 틀어졌다. 그렇다면 중국 3대 석굴에 드는 뤄양의 용문석굴이라도 꼭 들러야 했다. 허가노선 엄수여부를 감시해야하는 철봉씨는 여전히 난감한 기색이다. 결국 내가 팀 대표 자격으로 부득이하게 노선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유서를 써 주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갈 길이 멀다. 뤄양까지의 거리 650㎞. 고속도로로 가는 길이라지만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거리이다. 이론적으론 시속 100㎞ 주행 시 7시간이면 닿을 거리고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해도 9시간이면 갈 거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다시 타이어가 터지는 일도 없고 앞길을 막는 화물차들도 말끔히 치워져 있을까? 지도상에 고속도로라 표시된 길들은 정말 고속도로의 기능을 다하도록 정비되어 있을까? 뤄양에 도착해 숙소까지는 수 킬로미터 내의 짧은 길일까? 절대 길을 잃는 일없이 순조롭게 질주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순조로워도 오늘 하루는 길 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 다만 길 위에 머무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내가 갈 전체의 여정이 그러하듯 오늘도 길에서 생각하고, 길에서 쉬고, 길에서 움직일 것이다.
일반도로와 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을 골라 쭉 뻗어 갔는데 고가도로 아래로 고속도로가 놓여있고 그 위를 우리가 지나친다. 맙소사! 이 양반이 지도상의 나들목 표시를 구분하지 못한다. 운전 경험이 없으니 평생 교통지도 볼 일이 없었던 탓이다. 현재로선 1호차 안에서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 나 하나 뿐. 운전대를 교수님께 넘겨 드릴 처지도 안 돼 지도를 보지 못하니 갑갑하다. 엉뚱한 시골길을 뱅뱅 돌다가 다시 고속도로에 오르니 이미 11시. 네비게이션 역시 고속도로의 선만 표시할 뿐 나들목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내지 못해 더 애를 먹었다. 어이없게도 오전 동안 100여㎞를 헤맨 셈이다. 고속도로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안정적이고 편하다. 속도제한은 시속 120㎞까지이지만 과적과 노후된 엔진의 출력부족으로 대부분의 화물차는 시속 90을 넘기지 못한다. 간혹 승용차가 빠르게 지나지만 그래봐야 시속 120 내외. 중국의 도로엔 아직 속도측정용 무인카메라가 일반적이지 않아 무한 질주가 가능한 구간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도 언감생심. 군데군데 저속으로 가는 화물차가 양 차선을 다 틀어막는 탓에 맘대로 내달리는 게 쉽진 않다. '조금 느린 화물차'가 '많이 느린 화물차'를 추월하려 애쓰는 상황이란 보기 애처롭다. 결국 조금 느린 화물차가 많이 느린 화물차를 다 추월하여 2차로로 비껴나 줄 때까지 1차로는 열리지 않는다.
화물을 저리 과도하게 싣다보니 도로가 남아나질 않는다. 2차로 쪽은 노면이 많이 울어 있다. 곳곳에 과적 검문소가 많고 활발히 단속하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하나같이 과적한 차량들만 도로를 다니고 있을까? 과연 과적의 기준치는 어느 정도일까?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드넓은 하북평원의 정경이 눈에 그득하다. 유럽의 지평선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음… 뭐랄까(나리님의 말투다. 무언가 선뜻 표현하기 어려운 문장을 시작하는 발문인데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일행에게 전파되었다) 유럽이 색감 잘 나오는 유화의 풍경이라면 중국의 지평선은 담담하고 끝이 흐려지는 수묵화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난생 처음 그런 아련한 지평선을 향해 운전한다. 하늘과 맞닿은 땅을 바라고 한참을 달리면 어느새 그 끝은 또 저만치로 멀어져 있다. 차 안에서 굳이 이러저러한 말들이 흐르지 않아도 지루할 겨를이 없다. 나는 지금 지평선 좇기 놀이 중. 나도 달리고 길도 달린다.
중국 연료는 황성분이 많아 엔진과 연료기기 계통에 무리가 많다고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사실인 것 같다. 백구가 출고 1년 밖에 안 된 차라 매연이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중국에서 연신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다녔다. 따로이 연료정화제를 준비해 가서 섞어 사용했다.
가이드 철봉씨 말에 의하면 중국 내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좋고 한국인에 대해 무척 우호적이라 한다. 화물차 운전수 하나는 남의 차 안에 머리를 들이 밀고 본격적인 탐색이다. 행여 물건이라도 집어갈까봐 밖에서 은근한 감시의 눈길을 보내는 내 소심함. 그걸 읽었는지 그는 순진무구한 웃음으로 인사를 남기어 사람을 무안케 한다. 누가 내게 "왜 하필 자동차냐?"고 묻는다면, 난 자유때문이라 답하겠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실크로드 여행은 그야말로 '점'적인 통찰이다. 시안에서 둔황으로 찍고 투루판, 우루무치 그리고 카슈가르. 실크로드 상의 주요 오아시스 거점 도시들만을 건너 뛰듯 이동하는 여행은 빠르고 편한 만큼 길에 대한 통찰로는 부적격이다.
자동차를 통한 이동 역시 계획한 구간이 있고 허가된 주요 노선이 있기는 하지만 비행기나 기차에 비길 바가 아니다. 이동의 속도도, 경로도, 서고 갈 곳도, 보고 싶은 곳도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자유다. 운전의 피로와 경비의 부담이라는 자유의 대가가 따르기는 하나 본시 자유엔 피냄새가 나는 법 아니겠나. 사륜구동은 그 자유의 연장선상에 있다. 산이나 물, 그리고 모래, 제약을 극복하고 의지가 닿은 최대한의 깊이까지 접근하고 관통할 수 있는 능력. 그렇게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차후의 문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자유다.
그런데 오늘은 선적인 이동을 한다. 정해진 고속도로를 따라 최단거리 노선을 잡고 끝없는 주행. 기차나 다름없다. 더구나 고속도로다. 사륜구동도 필요 없고 AT타이어도 오히려 장애가 되는 길이다. 그러나 내겐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필요하다면 고속도로를 포기하고 먼 길을 돌 것이며, 바쁘지만 하루쯤은 중간의 기착지에 몸을 뉘일 것이다. 이것이 기차나 버스와 다른 점이다. 그리고 같은 고속도로라도 내 발로 가속 페달을 밟아 내 손으로 조향해 한땀 한땀 길을 줄여 나간다. 이 길은 내가 간 것이다. 비록 말과 낙타가 아닌 차의 힘을 빌기는 하였으나 내 발과 의지로 실크로드를 딛어 나가는 것이다.
무능한 1호차를 앞세운 탓에 2호차 사람들도 속 좀 타겠다. 어쩌랴 나는 생전 처음 겪는 중국의 도로를 겪는 사람이고 철봉씨는 고속도로 운전 경험이 없는 사람인 걸. 웬일인지 네비게이션도 먹통이 되었다. 대기가 온통 부연한데 황사인지 먼지인지 그냥 공기인지 정체를 알 수 없다. 위성과 신호를 주고 받는 놈이라 이 현상과 관련 있는 건 아닌지 의심도 든다. 한국의 고속도로도 길 한 번 잘못 들면 먼 길을 에도는 고생이야 감수해야하는 노릇이지만 중국의 상황은 더욱 심하다. 족히 60㎞는 손해봤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지는데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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