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카오스의 도시는 무엇으로 굴러가나
인도네시아 여행기(1) - 자카르타
정철용(ccypoet) 기자
지난 9월 20일부터 10월 4일까지 2주간 인도네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5월부터 자카르타의 현지법인에서 파견 근무 중인 처남이 부모님과 함께 그곳에 살고 있어서 가족 방문을 겸해 다녀온 여행이었다. 주로 자카르타의 처남 집에 머물면서 자바 섬의 몇 군데 도시를 다녀왔는데, 그 여행의 기록을 4회에 걸쳐 게재한다. 그 첫 회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다.

자카르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쯤. 오클랜드에서 출발한 지 13시간 30분 만이다. 직항편이 없어 이렇게 늘어진 비행시간이 그래도 지겹지 않았던 것은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선 여행객으로서의 흥분과 오랜만에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렘 때문이었으리라.

모든 입국 수속을 마치고 걸어 나오니 처남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공항 청사 주변은 늦은 시간인데도 웬 사람들과 차량들이 그렇게 많은지 마치 저자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숨이 턱 막히는 후끈한 열기의 매캐한 공기와 어지럽고 무질서하게 도로변에 댄 차들에 짐들을 싣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뉴질랜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주차장까지 걸어가서 짐을 실으면 이런 번잡스러움과 혼란은 없을 텐데…. 속으로 생각하면서 눈살이 조금 찌푸려지는데 처남의 차가 우리 앞에 다가와 선다. 뒷좌석에 올라 탄 우리 가족은 차가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질겁한다. 마치 자동차 경주를 하듯이 앞차들을 추월해 달리는 거친 운전 때문이다. 안전띠를 서둘러 매자, 앞좌석의 처남은 이 정도는 양호한 것이라며 웃는다. 자세히 보니 처남과 운전기사는 안전띠도 매지 않고 있다. 처남 말로는 이 나라에서는 안전띠를 매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긴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땅을 밟은 지 1시간 안에 경험한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는 우리 가족이 자카르타에 머무는 동안 계속 느껴야만 했던 거대한 카오스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영화 <자카르타>에도 나오듯이 오죽했으면 자카르타가 완전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는 도시로 여겨지게 되었으랴!

거대한 카오스의 도시

처남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니 마치 군부대 입구의 초소처럼 차단기가 설치된 경비 초소에서 경비원이 나와 신원을 확인하고 차를 들여보낸다. 주로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이 아파트의 입주민들을 도둑이나 강도 등의 범죄와 폭동 사태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삼엄한 경계 태세는 집을 벗어나 도심의 대형 쇼핑센터나 공항 등의 공공 건물로 들어설 때도 어김없이 이어져 숨이 막히기까지 하다. 이렇게 철저한 차량 검문검색은 지난 해 발리에서 발생한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 사건과 최근 자카르타 도심의 마리옷(Marriott) 호텔 주차장 폭발 사건 탓이다. 그러나 둥근 거울이 달린 장비로 자동차 밑을 검사하고 트렁크의 짐과 탑승자까지도 살펴보는 검색요원들의 얼굴에는 어쩐지 진지함이 없어 보이고 시늉만 하는 듯한 느낌이다.

자카르타는 지금도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여행 자제를 요청할 정도로 위험하게 여기고 있는 지역인데, 정작 이곳 사람들은 그러한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겉으로는 삼엄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무심함과 태연함이 지배하고 있는 모습 역시 자카르타의 거대한 카오스를 이루는 일부이다.

그러나 그 거대한 카오스의 밑그림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는 극심한 빈부 격차다. 처남의 아파트가 자리한 동네는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촌이어서, 9층 처남의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집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큰 대저택들이다. 그러나 조금만 벗어나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 보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잣집을 볼 수 있다.

▲ 박물관에서 나온듯한 미니 삼륜차 택시 바자이. 창문이 없어 매연이 그대로 들어온다.
ⓒ 정철용
일부 부유층은 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2대, 3대씩 소유하고 있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작은 오토바이가 고작이다. 그것도 없으면 비좁고 낡은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창문이 없어서 매연이 숭숭 들어오는 미니 삼륜차 택시 바자이(bajaj)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자가용과 버스는 물론이고 오토바이와 바자이까지 모두 같은 도로를 사용하다보니 서울의 도심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길이 막히는 것은 당연한 일. 여기에 차선과 교통규칙까지도 모두 무시하는 이들의 운전 습관이 더해져 차 안에서 바라보는 도로의 교통 흐름은 답답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조금만 길이 뚫려도 속도를 내고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는 운전기사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카르타에서 운전하는 것은 거대한 카오스를 뚫고 지나가는 스릴 가득한 모험이다.

백화점에서 살짝 엿본 전통문화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목격되는 개발과 보존의 대립은 자카르타의 거대한 카오스에 색채를 더해준다. 그러나 그 대립이 만들어 내는 색채는 어떤 경우에는 강한 충돌 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묘하게 조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세련되고 날렵한 최신형의 승용차와 자동차 박물관에서 막 끌고 나온 것 같은 코믹한 모습의 바자이가 함께 달리는 거리의 풍경이 전자의 예라면, 복잡하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건물들의 모습은 후자의 예라 하겠다.

자카르타의 현대식 백화점인 빠사라야(Pasaraya)에서 한 층 전체가 인도네시아의 전통 목공예품, 은세공품, 바틱(Batik)제품 등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할애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생경함보다는 감동이 앞섰던 것도 바로 그 모습 속에서 거대한 카오스 속에도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조화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 화려한 색상과 무늬의 바틱 그림. 이 그림 한 장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갔을까.
ⓒ 정철용
바틱은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직물을 말하는데 자연물에서 따온 다양한 문양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정교한 무늬와 화려한 색상이 특징이다. 지금은 기계로 찍어내는 바틱도 많다고 하지만 일일이 사람 손을 거치는 제조 과정이 전통 바틱의 특징이며 그렇게 만든 수제품이 더 고급품으로 평가받는다.

너무나 화려하고 인상적이라 기념으로 집에 걸어두고 친구에게 선물로 줄 요량으로 손으로 그리고 서명도 들어가 있는 바틱 그림 세 점을 샀다. 그런데 그림 세 점이 모두 합쳐서 한국 돈으로 2만원! 액자에 들어있지 않고 접혀진 상태로 비닐 안에 포장되어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싼가! 그러나 나중에 족자카르타를 여행하면서 한 바틱 공방을 둘러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많은 손길이 그 천에 닿아야 했을까를 나는 미처 가늠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자동차에서 오토바이까지, 고양이에서 호랑이까지 없는 게 없는 갖가지 모양의 목공예품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바틱과 각종 공예품을 만들어낸 그 정교하고 섬세한 손재주가 인도네시아의 전통문화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 놀라운 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미니’ 공원, 인도네시아 인다

1970년대 초, 수하르토 대통령의 부인인 이부 티엔 여사가 제안해서 만들었다는 따만 미니 '인도네시아 인다'(Taman Mini "Indonesia Indah"-작은 공원 “아름다운 인도네시아”라는 뜻)가 바로 그곳이다. 현지에서는 흔히 따만 미니라고 불리는 이 공원은 그러나 이름처럼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 마치 날아갈듯이 날개를 펼친 술라웨시섬 남부지역의 독특한 건물
ⓒ 정철용
150헥타르(약 45만여평)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 자연과 생태 등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15개에 달하는 박물관이 들어차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특색 있게 꾸며놓은 갖가지 정원과 공원, 각 종교별 사원, 그리고 각종 오락 유흥시설까지 완비되어 있다. “여기에 오면 인도네시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27개 지역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지어 그 안에 그들의 주거, 의상, 풍속 등과 관련한 전시물을 전시해 놓은 민속촌도 자리 잡고 있어서, 많은 여행객들에게는 인도네시아 민속촌이라고도 불린다. 공원의 중심에는 인도네시아 지도 모양으로 인공 섬들을 만들어 놓은 커다란 인공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주변으로 지도에 상응하는 위치에 각 지역별 민속촌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 수마트라섬 남부지역의 뾰쪽한 첨탑을 지니고 있는 건물. 지붕의 첨탑 수는 방의 개수와 함께 소유자의 지위와 부를 반영한다고 한다.
ⓒ 정철용
이 민속촌만 제대로 둘러보는데도 한나절이 더 걸릴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나서 우리는 승용차를 몰고 들어가서 이동하면서 구경을 했다. 지역마다 확연하게 표가 나는 독특한 건축 양식은 매우 이채로왔는데, 특히 술라웨시섬 남부 지역(South Sulawesi)의 날아갈 듯이 하늘로 향한 처마를 가진 건물과 수마트라섬 서부 지역(West Suamatra)의 지붕에 여러 개의 뾰족한 첨탑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칼리만탄섬 동부 지역(East Kalimantan)의 건물 내벽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무늬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형태의 나무 계단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 칼리만탄섬 동부 지역의 건물 내벽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무늬. 거미를 본뜬 문양이냐는 내 질문에 안내인은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 정철용
그러나 안내판 하나 서 있지 않고 간혹 서 있는 안내인에게 물어보아도 영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그러한 특이한 형태의 건축양식과 무늬와 나무 계단이 지니고 있는 깊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입장료와는 별도로 돈을 주고 산 공원 안내문에도 건물의 위치와 개략적인 설명만 있을 뿐이어서 답답할 뿐이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있는 화장실조차도 유료로 운영하고 있어서 기분이 언짢았다.

인도네시아 최고의 관광지로 꾸며 놓고는 이렇게 부실하게 운영하고 있으니 이 또한 자카르타의 카오스를 이루는 또 하나의 모습임이 분명하다.

▲ 칼리만탄섬 동부 지역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나무 계단
ⓒ 정철용
자카르타의 잠 못 이루는 밤

자카르타의 거리와 관광지에서 경험한 이러한 사회문화적 카오스에 적응하는 것 못지않게 내가 빨리 적응해야만 했던 것은 시차와 기후였다. 그러나 5시간 시차는 어렵지 않게 극복하였지만 한밤에도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는 견디기 힘든 자카르타의 열대야는 떠나는 날까지 내 잠을 방해하였다.

어렵사리 잠이 들어도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회교 사원의 기도 소리에 나는 잠을 깨고는 하였다. 선풍기를 켜놓고 자려니 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만 했는데, 그러다 보니 새벽 4시만 되면 모스크의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 야릇한 코란 암송 소리를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 잠을 설치다 보니 드디어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자카르타에 도착한 지 1주일 정도가 지나자, 피곤하면 잇몸이 욱신거리고 심한 경우 염증이 생기기도 하는 나의 고질병인 치주염이 재발한 것이다. 뉴질랜드로 돌아와서도 2주 동안 치료를 받고 쉬어야만 했을 정도로 통증이 제법 있어서 현지 치과에서 검사를 받고 약을 지어 먹었다.

▲ 수라바야의 호텔 천장에서 발견한 '키블라' 표시. '키블라'는 메카의 카바 신전을 가리키는 방향표시로 이슬람 교도들은 기도할 때 항상 '키블라'를 향한다.
ⓒ 정철용
그런 어느 날, 어김없이 들려오는 새벽의 코란 암송 소리에 잠이 깬 나는 거실 베란다로 나가 멀리 그 소리의 진원지쯤으로 여겨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1시간 정도 더 있어야 하는데도 여기저기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다. 기도를 드리려고 이 이른 시간에 벌써 모두 깨어났구나!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인도네시아는 전 국민의 90%가 이슬람교도인 세계 최대의 회교국가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이 거대한 카오스의 도시 자카르타가 굴러나가는 힘 역시 종교로부터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개발과 보존의 첨예한 충돌이 빚어내고 있는 거대한 카오스를 이곳 사람들은 어쩌면 그들의 유일한 무기인 종교로 지금 돌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