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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문화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고도(古都) 족자카르타(Jogjakarta)는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걸렸다.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현지 안내인은 뜻밖에도 분명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족자카르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기여(Wagiyo)라고 자신을 소개한 안내인은 족자카르타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5명의 현지 가이드 중 하나란다. 시내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최고의 국립대학교인 가자 마다(Gadjah Mada) 대학교에 있는 한국문화센터에서 4개월 동안 배운 실력치고는 너무나 유창했다. 덕분에 자카르타에서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 느낀 답답함과 불편함은 면할 수 있었다. 낯선 이국에서 한국말을 제법 잘 하는 현지 가이드를 만나니 반가운 마음과 친근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와기여의 설명에 의하면, 요그야카르타로 불리기도 한다는 족자카르타는 "우정(Yogya)의 도시(Karta)"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족자카르타는 우리에게는 정말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었다. 생김새와 피부색은 우리와 조금 달랐지만 한국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그와 함께 한 1박 2일의 족자카르타 여행은 거대한 카오스의 도시 자카르타에서 경험한 유쾌하지 못한 인상을 말끔히 씻어내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느끼는 일말의 우정은 족자카르타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두어야겠다.
점심을 먹고 제일 먼저 간 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 사원으로 손꼽히는 프람바난 사원(Candi Prambanan)이었다. 사원이라면 으레 산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우리나라 사찰이나 자카르타에서 머무는 동안 보았던 회교사원을 떠올리는 것이 고작인 내게 멀리서 바라다 본 프람바난 사원은 사원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장식된 거대한 석탑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서 드러나는 그 장대한 규모는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힌두교의 3대 신을 모시고 있는 시바 신전과 그 양 옆의 브라마 신전과 비슈누 신전은 화려한 아름다움과 거대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그녀를 전설상에 나오는 아름다운 공주 라라 종그랑(Lara Jonggrang '날씬한 처녀'라는 뜻)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녀를 만지면 예뻐진다고 믿고 있다. 와기여의 이런 설명을 듣자마자 딸아이는 얼른 두르가 상에 손을 갖다 댔다. 나와 아내는 그 모습에 그저 웃고 말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온통 새까맣게 손때가 묻어 있는 두르가 상은 가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을 터이다. 이렇게 새까맣게 손때가 묻은 신상의 모습은 시바 신전의 서쪽 석실에 봉안된 가네샤(Ganesya) 상에서도 볼 수 있다. 시바 신의 아들인 가네샤는 코끼리 두상을 하고 있는데, 왼손으로 인간의 두개골을 잡고 긴 코로 그 내용물(두뇌)을 빨아먹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이 광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지만, 그는 지혜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그 코를 만지면 똑똑해진다는 믿음이 이곳 현지인들에게는 널리 퍼져 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만져보라고 하였더니 한사코 거부해서 대신 내가 만졌다. 그 이후로 내가 얼마나 똑똑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신상들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내 마음은 썩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문화유산 제642호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 훌륭한 세계의 문화재를 이토록 소홀하게 관리해도 되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70년이 넘게 걸린 복원 작업 현재 프람바난 사원에는 이 6개의 신전들과 이들 측면에 각각 2개씩 서 있는 작은 신전들을 포함해서 모두 18개의 신전들만이 복원되어 서 있다. 그러나 9세기 무렵 처음 건립 당시에는 라라 종그랑의 전설이 전하고 있는 1000개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작은 신전들을 포함하여 모두 240개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6세기에 화산 폭발과 큰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프람바난 사원은 1918년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서 복원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200년이 넘도록 폐허 속에 방치되었다. 무너져 내린 돌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맞추어 쌓아 올려야만 하는 까다로운 복원작업은 쉽지 않은 재정문제로 여러 번 중단되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70년이 넘도록 계속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복원된 신전은 18개에 불과하며 복원되지 못한 나머지 작은 신전들은 아직도 프람바난 사원 주위에 돌무더기들로 쌓여 있으며 복원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와기여의 말로는 재정 문제 때문에 더 이상 복원작업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틱 공방에서 한없이 느린 시간을 만나다 프람바난 사원에서 만났던 구걸하는 이들의 모습은 시내에 있는 바틱(Batik) 공방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수없이 목격되었다. 우리 차가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으면 작은 기타를 든 아이들과 청년들이 어김없이 다가와 손을 벌렸다. 거부 의사를 밝히면 끈질기게 따라붙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것을 봐서는 그러한 구걸행위에 이골이 난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해서 그들이 버는 돈은 하루에 얼마나 될까? 아직 학생들일 텐데, 학교 끝나고 저렇게 거리에서 구걸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부모들은 가만히 놔두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나는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드디어 도착한 한 바틱 공방은 어두운 조명에 흙바닥이 그냥 드러난 것이 공방이라기보다는 낡은 공장이나 헛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열심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의 손놀림은 정교하고 섬세했다. 그 손놀림을 따라 왁스가 옷감에 흘러내리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설명을 듣고 보니, 바틱의 그 아름다운 무늬와 색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한없이 느린 그 시간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자카르타의 한 백화점에서 산 바틱 그림 3점의 값이 한국 돈으로 2만원도 안 될 정도로 싸다고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 싼 것은 이들의 노동력이지 바틱의 값어치가 결코 아닌 것이다! 일일이 사람의 손이 가는 복잡하고 많은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바틱의 아름다움은 정녕 한없이 느린 시간의 아름다움이다. 프람바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환상의 무대, 라마야나 발레 공연 바틱 공방에서 나와 호텔 체크인을 하고 우리는 잠시 쉬었다. 오후 6시에 호텔 로비에서 와기여를 다시 만나 저녁을 먹고 우리가 향한 곳은 다시 프람바난 사원. 낮에 느꼈던 프람바난에서의 감동을 이번에는 프람바난을 배경으로 삼은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에서 맛보기 위해서였다.
무대의 자연적인 배경을 이루는 프람바난의 시바 신전과 비슈누 신전 사이로 솟아오른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는 가운데 무대가 열리면 가히 북경의 자금성에서 열린 오페라 <투란토트>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인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이 공연을 본 날은 그믐에 가까운 날이라서 그렇게 멋진 광경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매일 있는 공연이 아니니,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밖에…. 아요댜(Ayodya) 왕국의 왕자 라마(Rama)가 원숭이 전사들의 도움을 받아 악마의 왕 라바나(Rahwana)를 죽이고 그에게 납치당한 자신의 아내 신타(Sinta)를 구해낸다는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공연의 내용은 다소 호전적이었다. 하지만 야외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함과 무대 뒤에 자연스럽게 배경이 되어 주고 있는 프람바난 사원의 신비스러운 실루엣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전쟁까지도 아름다운 신화적 세계로 감싸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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