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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우드(Inglewood)의 한 모텔에서 여행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첫 행선지로 ‘펀 호! 장난감 박물관(Fun Ho! Toy Museum)’을 찾았다. ‘펀 호!’는 지난 1930년대부터 50여 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질 좋은 장난감 자동차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친 상표 이름이다. 펀 호! 장난감 자동차들은 처음에는 납을 사용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납으로 만든 장난감이 금지되면서부터 알루미늄을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서 만들었다. 그렇게 주물로 형태를 잡은 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정교하게 페인트칠을 하고 꼼꼼하게 마무리 작업을 했기에 보통 장난감들보다 훨씬 미려하고 내구성도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펀 호! 장난감 자동차는 당시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선물이었고, 생산이 중단된 지금도 수집가들이 즐겨 찾고 있는 품목이라고 한다. 장난감 박물관, 순장당한 장난감 자동차 9시 정각에 장난감 박물관이 문을 열자마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사설박물관이라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박물관 내부는 작았지만, 작은 장난감 자동차들의 전시공간으로서는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안내 책자에 의하면 약 3000개에 달하는 다양한 장난감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일반 승용차, 버스, 트럭, 불자동차, 경주차 등 익숙한 모양의 자동차들보다는 트랙터, 경운기, 트레일러 등 지극히 뉴질랜드다운 차량들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물렀다. 그런 농사용 장난감 자동차들을 가지고 놀았을 주근깨 투성이의 꼬마가 상상이 되면서 내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에 따르면, 펀 호! 장난감은 1935년 웰링턴에서 살고 있던 잭 언더우드의 집 지하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몇 년 뒤에 잉글우드로 옮겨져 한때는 200명의 일꾼들을 거느릴 정도로 큰 공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도 값싼 플라스틱 장난감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펀 호! 장난감 공장은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마침내 1987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이후 1999년 잉글우드 개발 신탁이 이 박물관을 인수해서 현재의 자리로 확장 이전했다고 한다. 개관 첫해에는 1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왔고 지금도 1년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작은 박물관을 보러 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공장의 상품에서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바뀐 펀 호! 장난감 자동차들의 운명이 부활인지 아니면 순장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아마도 순장에 더 가까우리라. 이제 더 이상 꼬마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장난감 차들은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먼지 한 점 묻히지 않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저 자리를 지켜낼 것이지만, 그 생애에는 이제 더 이상 기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롤랑 바르트도 <신화론>이라는 책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현대의 장난감들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사실 현재 유통되는 장난감들은 자연에 거스르는 물질이다. 그것들은 자연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화학적인 산물이다. 많은 장난감들은 복합적인 혼합물을 주조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은 반자연적이지만 동시에 위생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촉감의 인간적인 본성을 파괴한다. 다시 말해서 플라스틱은 만질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부드러움을 파괴한다.” “그것은 이제 촉감이 주는 즐거움과는 무관한 것이다. 게다가 이 장난감들은 매우 빨리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한 번 사라지면 아이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진다.” 물론 여기서 롤랑 바르트는 플라스틱 장난감 때문에 사라지고 있는 나무 장난감들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펀 호! 장난감 박물관에서 내가 보았던 납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장난감 자동차들도 그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펀 호! 장난감 박물관은 사라져가는 옛날의 장난감 자동차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으로 겨우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박물관으로 들어서는 얼마 되지 않는 관람객들 가운데 아이들보다는 나이든 어른들이 더 많은 것으로 봐서는 그 노력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이다. 자동차 박물관, 부활하는 구식 자동차 하지만 여행 닷새째 되는 날, 웰링턴으로 향하는 길에 들렀던 '사우쓰워드 자동차 박물관(Southward Car Museum)'은 자동차라는 같은 품목을 전시하고 있었지만 펀 호! 장난감 박물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부터가 달랐다. 잉글우드 시내의 번잡한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펀 호! 장난감 박물관과는 달리, 사우쓰워드 자동차 박물관은 웰링턴으로 이어지는 1번 고속도로상의 작은 마을 파라파라우무(Paraparaumu) 근처의 넓은 벌판에 세워져 있었다. 전시장의 규모도 1500평 가까이 되어 펀 호! 장난감 박물관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구식 자동차 수집광이었던 렌 사우쓰워드경이 1956년부터 사 모은 자동차들을 내놓아 1979년에 문을 연 이 자동차 박물관에서 우리는 정말 다양하고도 이색적인 온갖 자동차들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었다.
또한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며 아마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에 들 정도로 오래된 차인 1895년식 벤츠 벨로(Benz Velo)는, 10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뛰었지만 그 세련되고 우아한 자태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오즈의 마법사>가 도시를 배경으로 했다면 등장했을 법한 구리로 만든 자동차, 디즈니랜드나 용인 에버랜드와 같은 테마 파크의 놀이기구에서 막 떼어내 옮겨 놓은 듯한 코믹한 모양의 작은 자동차들도 있었다.
1세기도 안 되어 벌써 박물관 신세를 지게 된 자동차들은 장난감 박물관에서 보았던 장난감 차들과는 달리 순장이라기보다는 부활에 가까워 보였다. 그들은 폐기처분을 앞둔 고물 자동차가 아니라 고가의 골동품이었다. 기름을 넣어주고 시동을 걸면 아직도 그들의 엔진은 생생한 육성을 내지르며 도로를 달릴 것처럼 보였다. 이쯤에서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을 다시 인용해보자. “나는 자동차가 오늘날 거대한 고딕 성당들의 매우 정확한 등가물이라고 생각한다. 무명의 예술가들은 이 자동차에 열광하고, 대중 전체는 자동차를 사용가치가 아니라 이미지로서 소비하면서 그것을 완전히 마술적인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자동차의 계기판은 발전기라기보다는 현대적 주방의 작업대와 닮아 있다. 희끄무레하고 물결무늬 차체의 얄팍한 덧문, 우수한 작은 기어, 매우 단순한 표식, 니켈 도금의 은은함 등. 이것들은 모두 운동에 대해 실행되는 일종의 통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 통제를 속도의 기록갱신이라기보다는 안락함으로서 이해한다. 우리들은 분명히 속도의 연금술로부터 드라이버의 식도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 떼를 지어 들이닥치는 관광객들이 중세의 고딕 성당들에게 경배를 드리듯이,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동차에게 일상의 경배를 드리고 있다. 도처에 넘쳐나는 자동차의 이미지 앞에서 오래된 구식 자동차들은 그 원본을 주장하며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또한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엔진이 없는 장난감 차는 더 이상 쳐다보지 않는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조차 일찌감치 장난감 차를 내팽개치고, 전자오락실에서 자동차 핸들을 잡거나 TV나 컴퓨터 모니터 화면 위를 달리는 시뮬레이트된 자동차 운전을 더 선호한다. 자동차는 이미 너무 깊숙이 우리 삶에 침투해서 엔진이나 전기의 동력을 받지 않는 장난감 자동차는 이제 너무 시시한 것이 돼 버렸다. 어릴 적 놀이의 연금술에서 이미 벗어나 있는 자동차는 위험해 보였지만, 자동차 박물관에 웅크리고 있는 그 많은 자동차들은 죽은 듯이 숨을 삼킨 채, 뒤늦게 입장한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오래된 내부를 공개하고 있었다. 불이 꺼지고 나면 그 중의 하나는 전시장을 박차고 나가 도로를 달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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