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크로드 여정기' (8 편)

(2006` 6, 17 ~ 6, 25)

야간열차서 또 흥겨운 술판

우리는 침대칸이 아닌 우등좌석 칸에 올랐다. 빈 좌석이 많아 끼리끼리 앉을 수 있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친구는 아무도 없다. 10명이 앉은 좌석은 이내 시끄러워졌다. 술판이 벌어졌으니깐. 두 시간이란 시간은 흥겨운 술자리 때문에 언제 흘러갔는지 몰랐다. 신강성 하밀 역엔 새벽 1시 10분쯤 닿았다. 우루무치에서의 그 가이드가 마중 나와 있었다.

꾸미기_DSCN1242.JPG

(돈황에서 유원역으로 가는 길에 사막을 다시 찍어봤다. 지평선 뒤엔 푸른 나무가 자라는 오아시스가 자리했다.)

꾸미기_DSCN1241.JPG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에도 열매가 열렸다. 나무 이름은 가이드조차 몰랐다.)

가격달빈관(加格達賓館)이라는 호텔에서 여정을 푼 시간은 거의 새벽 2시가 지났다. 우리 룸은 반지하다. 1층이라고 했는데, 막상 찾아가니 아니었다. 샤워 룸에 들어갔더니 구역질이 바쳐왔다. 반 지하라 하수구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썩는 냄새가 역류해 올라온 듯했다. 도저히 샤워를 할 수 없어 되돌아 나와 버렸다.

마침 가이드 장진영양이 룸을 체크하려고 들렸다. 그만 고함이 터지고 말았다. “일류 여행사가 이런 대접할 수 있느냐?”고 속사포로 쏘아붙였다. 가이드 장양의 무참했던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저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면서. 바로 후회막급이란 것 느꼈다. “왜 좀 더 신중하지 못했느냐?”고 스스로를 꾸짖고 또 꾸짖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 아니라 평정을 찾기가 힘들었다. 눕기만 하면 5분 내에 잠이 들고 마는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새 날이 또 밝았다. 난 간단히 세수만 했다. 룸메이트 권 부장과 산책을 나왔다. 나와 보니 홍 단장도 어쩐 일인지 일찍 나와서 서성였다. 홍 단장은 어느 여행에서든 시간 맞춰 일어나는 습관을 가졌다. 오늘은 일어날 시간을 잘 못 계산한 것이다.

꾸미기_DSCN1244.JPG

(가격달빈관 옆에 있는조그마한 인공호수. 가지가 늘어진 버드나무와 이름모를 꽃이 피어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침이면 주민들이 나와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한다. 부채춤으로 몸을 단련하는 이곳 부인들의 모습.)

식당 오픈시간이 40분가량 남았다. 덕택에 우린 함께 이른 아침 호텔주변 시가지를 산책할 수 있었다. 가로수가 싱싱했다. 사막지대이기 때문에 가로수엔 땅 속으로 연결된 호스를 통해 마침 물이 공급되는 중이었다. 사막지방 오아시스에도 이 같은 많은 량의 물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하미과’로 이름난 하밀에서

하밀(哈密: Hami)에서는 오전 일정을 보냈다. 하밀은 인구 50만의 큰 도시다. 이곳 특산물 ‘하미과(哈密瓜)’로 더 유명해졌다. 청(淸) 강희제(康熙帝)가 이곳을 순시하면서 더위에 목이 말랐을 때 호박같이 생긴 과일을 먹어봤다. 당도가 높고 사각사각하는 맛이 일품이었다. 껍질은 누르스름하나 속은 약간 불그스름한 빛을 띤 누른색 과일이다. 황제는 못생겼어도 그 맛에 반해 ‘하미과’란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하미과’는 참외와 멜론을 합친 모양과 맛을 가졌다. 길거리에서는 리어카나 삼륜오토바이 짐칸에 이 과일을 가득 싣고 파는 위구르 상인들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꾸미기_DSCN1246.JPG

(회족의 하미왕국 왕릉. 모스크식으로 만든 무덤이다. 갖가지 타일을 외벽에 붙여 치장했다.)

우선 회 왕릉을 봤다. 회족(回族)은 1697년부터 1930년까지 하미왕국을 세워 9대(九代)를 이어오며 이 지역을 통치했다. 이 왕릉은 1840년 왕과 왕비를 묻은 높이 25m의 모스크로 만든 이슬람식 무덤이다. 모스크 안쪽엔 이슬람 전통양식 ‘복숭아 모양 봉분’을 한 대리석 관이 놓였다. 그 위에는 색색의 천이 덮였고. 모스크 안과 바깥은 여러 색깔 여러 모양의 타일로 장식해 아름다움을 뽐냈다. 모스크 앞에는 나무로 만든 3층 건물형태의 대형 탑을 세운 건물이 버티어 왕실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화려하거나 웅장한 건물이 아님은 물론이다. 국력에 맞추어 검소함이 베어나는 듯한 왕릉이라고 느껴졌다.

꾸미기_DSCN1247.JPG

(목조 3층 건물의 대형 탑 전경. 벽은 흰 회로 발랐고, 나무는 단청도 올리지 않았다. 문살과 창살무늬가 살가와 눈길을 끈다.)

퍽 재미있는 사실은 왕과 왕비의 무덤에 탈곡기와 베틀을 부장품으로 묻었다는 점이다. 팔찌 ․ 목걸이 ․ 귀걸이 등 귀중품을 부장하지 않고 왜 탈곡기와 베틀을 묻었을까? 황량한 사막지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대를 이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농사를 지어 먹을 거리를 마련해야했고, 베를 짜 옷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왕이나 왕비도 예외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백성들에게 의식(衣食)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려는 의도도 물론 포함되었으리라. 그들의 내세관은 극한 상황에서 생존이 무엇보다 우선시됐다는 강한 느낌을 받고 안쓰러움조차 일었다.


풍식작용이 빚은 ‘모래예술’

일행은 서둘러 마귀성이란 곳으로 떠났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사막 속으로 빠져든다. 달려도 끝도 없다. 조그마한 오아시스마을을 지난다. 사막의 황토와 모래를 섞은 흙벽돌로 지은 포도 건조장 건물이 죽 늘어섰다. 이 일대 오아시스에는 어느 곳 없이 포도농사가 주업임을 반증했다.

꾸미기_DSCN1259.JPG

(모래와 흙을 이긴 벽돌로 만든 포도 건조장. 사방 벽채는 격자형 창살처럼 바람이 잘 통하도록 뚫어놓았다.)

마귀 성 입구다. 조잡하고, 엉성하고, 생뚱맞은 마귀를 닮은 건물 몇 동이 길을 막는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곧장 또 사막 길을 달린다. 황량한 사막을 얼마나 달렸을까? 도로 양편 모래벌판에 물개, 공작새, 곰, 사자, 사람 등 갖가지 형상을 한 흙덩인지 돌덩인지 모를 것들이 버섯처럼 돋아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런 길을 또 한참이나 달린다. 마귀성이란 곳에 닿았다. 퇴적층 붉은 색깔을 띤 사암으로 이뤄진 산줄기가 70만년의 풍상을 거치면서 풍식(風蝕)작용에 의해 갖가지 멋진 조각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즉 풍식이 빚어낸 거대한 ‘모래예술’이라고나 할까? 절로 탄성이 쏟아진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꾸미기_DSCN1250.JPG

(붉은 색 사암이 수십 만년 풍상을 겪으면서 깎이고 깎여 여러가지 모양으로 변했다.)

꾸미기_DSCN1252.JPG

(마귀성 가장 높은 바위 산에 올라 둘러본 모래평원.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들이 점점이 솟아있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이 거대한 조각 작품이 모래바람을 맞으면 여러 가지 괴성을 내뱉는다는 점이다. 사암덩이 산이 오랜 기간 곳곳에 풍식으로 닳고 깎여졌기에 바람에 날린 모래가 그곳에 부딪치면서 맴돌아 지나가니 소리를 낼 수밖엔. 괴상한 모양의 바위덩이 산들이 모래평원 위에 솟아있다. ‘회음곡(回音谷)’이라고 이름 붙여놓은 바위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아쉬웠다. 모래바람이 불어주었더라면 그 귀신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바람이 이는 밤까지 기다릴 순 없으니깐.

꾸미기_DSCN1254.JPG

(일행들이 가장 높은 바위 산에 올랐다가 모래 계곡으로 내려가는 장면. 오를 때는 가파른데다 발을 디다면모래가 밀리는 바람에 무척 힘이 들었다.)

꾸미기_DSCN1255.JPG

('회음곡'이라는 표지판이 꽂힌 바위 산.)

햇볕이 강하게 쏟아졌지만 일행은 모래계곡과 언덕을 거쳐 가장 높은 바위덩이 위에 힘들게 올랐다. 주위가 확 트였다. 그 넓은 주변을 두루 살폈다. 장관이다. 모래 구릉은 끝없이 펼쳐졌고, 갖가지 형상의 바위덩이는 점점이 솟아있다. 마치 바다 위에 점점이 솟은 삐죽삐죽한 돌산이나 돛단배와 흡사했다. 이정길 사장과 곽청언 사장은 이들 바위산을 다람쥐처럼 뛰어 건너다니면서 호기심을 잠재웠다.


‘마귀성’ 갖가지 바위에 탄성

중국이란 땅덩이가 얼마나 넓은지, 이 풍식지형은 1990년대 후반에야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곳은 2001년부터 관광지 개발에 착수해 사업을 진행 중이다. 버스주차장엔 아무 편의시설이 없다. 단지 짚으로 엮어 햇볕을 가려주는 우산 모양의 조그마한 원두막 몇 개가 고작이다. 또 한편엔 천정도 없이 남녀 칸막이만 겨우 갈라놓은 모래담의 노천화장실이 있을 뿐이다. 대변은 그대로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파리가 들끓고 악취가 풍겼다. 이 황량한 모래벌판에 파리가 서식한다니 의아했다. 중국인들은 머잖아 이곳을 멋진 관광지로 만들어 돈벌이에 안간힘을 쏟을게 틀림없다.

꾸미기_DSCN1257.JPG

(마귀성의 유일한 편의시설의 하나인원두막. 천장을 짚으로 덮어 그나마 정겹게 느껴졌다.)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왔다. 하밀과 선선(膳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삼도령(三道岭)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 때만 되면 일행이 많아 세 테이블로 나뉜다. 우리 팀 열 명은 언제나 한 테이블에 앉는다. 점심과 저녁 매 끼니마다 맥주 한 컵이 기본으로 주어진다. 한 테이블 당 두 병이 나오면 적은 컵에 한 잔씩 돌아간다. 우리 테이블엔 꼭 세 병이 나온다. 여성 두 분을 빼곤 모두 술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두 병이 올랐으나 먹다가 보니깐 다섯 병까지도 마셨다. 그 후 가이드가 아예 세 병을 기본으로 맞춰버렸던 것이다.

꾸미기_DSCN1251.JPG

(모래 평원에도 움푹 꺼진큰 함지박같은 곳이 있다. 바람이 어떻게 불었길래 이곳 모래만 날려버렸는지 알 수 없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늘 많은 량을 마셔대고 목소리가 크니깐 다른 두 테이블의 일행에게 밉상보일 수밖엔. 이 날은 맥주 다섯 병을 추가해 더 마셨다. 추가 술값은 물론 홍 단장이 계산했고. 이곳 삼도령에서 선선(膳善: 샨샨)까지는 세 시간 버스를 타야했다. 다른 테이블의 일행들은 “노인들이 저렇게 맥주를 마셔놓고 소변이 마려워 어쩔 건가?”라는 눈치들이 역력했다. 우린 단체행동에 지장을 줄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장시간을 잘 버텨내면서 목적지 선선에 닿았다.


붉은 색 ‘쿠무타크’, 미의 극치

쿠무타크(庫木塔格) 사막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이 사막은 선선시내와 붙었다. 사막과는 키 큰 포플러나무 숲이 경계선을 이뤘다. 시가지에서 불과 300m도 떨어지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역시 철저한 장사꾼이다. 이 사막에 모래조각을, 그리고 사막으로 가는 통로에 나무판으로 깐 길을 만들어놓곤 입장료를 받았다. 뿐만 아니다. 모래구릉지대를 달릴 수 있는 특수차량을 배치해두곤 엄청나게 비싼 요금을 받아냈으니 말이다.

꾸미기_DSCN1262.JPG

(쿠무타크 사막에서 조금 떨어진 산야지대. 모래밭엔 낙타풀이 드문드문 보인다. 뒷편엔 높은 산의 연봉이 둘렀다.)

꾸미기_DSCN1275.JPG

(쿠무타크 사막 안내판. 붉은 모래가 쌓인 산임을 강조했다.)

꾸미기_DSCN1263.JPG

(쿠무타크 사막은 선선 시내와 붙어있다.포풀러 숲이 바로 경계선이다. 담장을 둘러 돈을 내지 않고는 전경을 보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사막의 모래 또한 너무 보드라웠다. 색깔은 명사산 모래보다 더 붉은 빛깔을 띠었다. 색깔이 주는 강렬한 인상 때문에 여느 사막보다도 아름다웠다. 모래언덕 높이는 명사산 보담 낮으면서 많은 구릉으로 이어졌다. 강한 태양 볕을 흡수한 모래는 얼마나 달구어졌는지 오후 4시가 지났는데도 그 복사열로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타올랐다. 중국 여성 몇 명이 파라솔 아래 모래찜질하는 모습도 보였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한데 차라리 모래찜질이라도 하고픈 마음이 일었다.

꾸미기_DSCN1265.JPG

(쿠무타크 사막의 전경. 나무로 깐 길이 허옇게 보인다. 사막 위쪽엔 양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놓고 모래찜질을 하고있다.)

이 뜨거운 모래벌판에도 ‘로우타우차우’라 불리는 낙타풀이 듬성듬성 자라나 꽃을 피어냈다. 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인 이 풀은 날카로운 가시가 숭숭 돋아나있다. 이 가시 때문에 양떼도 먹을 수 없다. 단지 낙타만이 이 풀을 먹는다. 낙타도 이 풀을 먹을 땐 주둥이와 입안이 온통 피로 붉게 물든다고 했다. 날카로운 가시가 마구 찌르기 때문이다.

꾸미기_DSCN1260.JPG

(낙타풀.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잎보다는 가시가 더 많은 풀이다.)

꾸미기_DSCN1266.JPG

(모래로 만든 조각작품들. 인어공주다.)

꾸미기_DSCN1271.JPG

(모래 바닥이 마치 물결 모양을 하고있다. 칼날같은 능선을 바람의 속도와 풍향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꾸미기_DSCN1274.JPG

(엄청난 땡볕과 지열 속에 모래조각품을 만드는 작가들. 물을 뿌려 반죽하면서 작업을 했다.)

나무판을 깔아놓은 길을 아마 2km 이상이 될듯했다. 그 뜨거운 기온 속에도 모래조각 작품을 만드느라 땀 흘리는 작가도 보였다. 낙타를 몰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들을 조각 중이었다. 긴 호수로 물을 옮겨와 뿌려가면서 작업했다. 어떤 작품은 너비 40 ~ 50m, 높이 20m나 되는 대형도 보인다. ‘서유기’ 주인공 모습, 삼국지 주인공 등 역사속의 인물들이 그려졌다.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