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0구간] 조령산 - 지명

이화령은 ‘이우릿재’의 차음
늘어진 산줄기의 뜻인 ‘니부리’가 ‘이우리’로 변해

국어 사전에 보면 ‘부리’란 낱말을 ‘①새나 짐승의 주둥이. 구문(口吻) ②물건의 끝이 뾰족한 부분 ③병이나 자루 따위의, 한 끝의 열린 부분’으로 풀이해 놓고 있다. 따라서, 땅 위에 내민 묻힌 돌멩이의 뾰족한 부분은 돌부리가 되고, 봉우리의 꼭대기는 멧부리, 또는 산부리가 된다.

담뱃대의 입에 무는 부분은 물부리가 되며, 바짓가랑이의 끝부분은 바짓부리, 옷소매의 아가리는 소맷부리, 총구멍 있는 총의 앞부분은 총부리, 통나무의 위쪽 끄트머리 부분은 끝동부리가 된다. 매의 주둥이는 매부리가 되어 얼굴에서 콧부리가 아래쪽으로 많이 쳐진 코를 매부리코라 한다.

부리는 땅이름에선 툭 불거진 곳 의미

땅이름에서도 부리가 들어간 말을 많이 볼 수 있다.

부리 : 거제 사등면 청곡리, 합천 야로면 정대리

▲ 하늘에서 본 이화령. 이화령은 이우릿재에서 온 한자 표기로, 늘어진 산줄기의 뜻인 니부리가 이우리로 변했다.

부리골-부릿골 : 양평 청운면 여물리(골짜기), 거창 고제면 농산리(〃), 달성 구지면 대암리(마을),

부리재-부리치-부릿재-부리고개-부릿등 : 파주 천현면 동문리(고개), 경주 강동면 유금리(〃), 경산 하양읍 사기동(〃), 곡성 삼기면 근촌리(마을), 여주 대신면 보통리(고개), 울산 중구 고사동(〃), 경산 와촌면 계전리(등성이)

매부리 : 무안 현경면 외반리(산), 제주 서귀포 강정동(〃)

부릿재먼딩이 : 울산 중구 고사동(산)

부리팃골[火峴谷] : 경주 강동면 유금리(골짜기)

부리끝 : 파주 교하읍 신촌리(들)

부리너머 : 여주 대신면 보통리(들)

그밖에 한부리(화성 우정면 한각리. 閑角), 영부리(인천 중구 덕교동), 샛부리(인천 중구 운서동), 막부리(서산 원북면 동해리), 안부리(남제주 남원읍 위미리), 부릿담(원주 소초면 교항리) 등이 있다.

충남 금산에는 지금도 부리면(富利面)이란 면이 있는데, 옛날 부리현(富利縣)의 부리라는 이름을 원형 그대로 전하고 있다. 지금 나주의 남평읍, 산포면, 금천면, 봉황면, 다도면 일대는 백제시대 미동부리(未冬夫里)다. 이 지명은 ‘밋부리’로 유추되고 있다. 또, 지금의 정읍 고부면 일대와 부안군, 고창군의 일부는 백제시대에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이던 것을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고부군(古阜郡)으로 고친 것인데, 역시 아직도 면이름으로 남아 있다.

위의 여러 부리 관련 지명들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대개가 산지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형이 툭 불거진 지역에 부리라는 이름이 많다. 일반 용어에서 튀어나온 곳(부분)의 의미인 부리는 땅이름에서도 그 뜻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화령 고갯길은 일제 때 열어

경북 문경읍과 충북 괴산 연풍면 경계에 있는 고개가 높이 548m의 이화령(梨花嶺)이다. 이 고개는 조령산(鳥嶺山)과 갈미봉(葛味峰)이 맞닿는 안부에 위치하는데, 고개 남동부에는 조령천(鳥嶺川)이, 북서부에는 쌍천(雙川)의 지류가 곡류한다. 백두대간의 이화령 부분에서도 물줄기가 각각 낙동강권, 한강권으로 나뉘어 흐르는 것이다.

조령산은 남서부로 조금 이화령에 이르러 남동쪽으로 산세를 이루고, 갈미봉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 기복이 적은 이들 사면을 따라 이화령 고갯길이 꾸불꾸불 이어져 있다.

이화령은 조선시대까지엔 지금과 같은 그리 큰 고개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길줄기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고, 이름도 똑같지는 않았다. 옛날 충청도 연풍(延豊)에서 경상도 문경으로 넘는 고갯길이었으나, 그 북쪽의 조령(鳥嶺)이 워낙 잘 알려져서 이용자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주 교통로는 새재라고 불리던 조령이었는데, 산세가 험준하여 일제 강점기 때 이 고개 남쪽에 이화령을 만들고 3번 국도를 이었다.

이에 따라, 지금의 조령은 괴산 연풍면의 고사 마을과 문경읍의 상초리를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될 뿐 차량은 물론 인적이 매우 드물게 되었다. 현재 이화령은 그 밑에 이화령터널을 두고 있는데, 문경 일대에서 생산되는 특용작물을 운반하는 수송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화령 북동쪽에는 문경새재 도립공원과 월악산 국립공원이 있고, 남서쪽에는 속리산 국립공원이 있다.

이화령은 배꽃과는 관계없어

이화령(梨花嶺)-. 우선 그 이름을 들으면 배꽃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고개가 배꽃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 고개에 배꽃이 많아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배꽃과 관련한 어떤 전설이라도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땅이름에선 화(花) 자가 들어간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갯벌(갯불) : 부안의 계화도(界火島)

배고지(배곶) : 서울 강남구 삼성동(梨花洞), 인천 계양구 이화동(〃), 화성 우정면 이화리(梨花里)

한곶 : 고양 일산서구 대화동(大化洞←大花洞)

곶가름 : 북제주 한경면 금등리 화동(花洞)

곶나리 : 남양주 별내면 화접리(花蝶里)

곶내 : 경주 건천읍 화천리(花川里)

곶마-곶매-곶뫼 : 경주 천북면 화산리(花山里), 청양 적곡면 화산리(〃), 고창 심원면 연화리의 화산(花山)

곶만이왓 : 북제주 애월읍 어음리의 화만전(花滿田)

곶이-곶이골-고지-고줏골-고지개-고재 : 해남 마산면 화내리(花內里), 포항 북구 청하면 필화리의 화지(花枝), 영주 장수면 화기리(花岐里), 나주 산포면 화지리(花池里), 상주 상주읍 화개리(花開里), 진천 덕산면 화상리의 곶재 →화성(花城), 천안 구성동의 고재(花峙)

고잔(곶안) : 남해 고현면 갈화리의 고잔, 당진 송산면 무수리의 고잔 →화내(花內)

곶밭 : 고양 덕양구 화전동(花田洞)

▲ 이화령 고갯마루. 이화령의 토박이 땅이름은 이우릿재다. 지금도 이 고개 동쪽 마을인 문경읍 각서리의 새터(신기) 마을의 촌로들은 이 고개가 넓혀지기 전의 고개 이름 이우릿재를 떠올리고 있다.
이처럼 어느 한 지역에서 콧마루처럼 불쑥 튀어나간 곳을 뜻하거나 단순히 장소를 뜻하는 곶(곳)은 한자로 화(花)로 많이 취해져 있다. 이화령도 화(花) 자가 취해진 이름이지만, 이는 꽃과 별 관계가 없을 것이다.

이화령의 토박이 땅이름은 이우릿재다. 지금도 이 고개 동쪽 마을인 문경읍 각서리의 새터(신기) 마을의 촌로들은 이 고개가 넓혀지기 전의 고개 이름 이우릿재를 떠올리고 있다. 그 너머 연풍쪽에서도 이와 거의 같게 이유릿재라고 불러오고 있다. 한글학회에서 낸 <지명총람>에는 이 고개 이름이 이우릿재, 이류릿재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곳 요광원 서북쪽 이우릿재 밑에 있는 골짜기인 이우릿골은 한자로 이화이리(伊火伊里)로 적혀 온다.

이 이우릿재가 바로 대동여지도,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기요람 등에 나타나는 이화현(伊火峴)으로, 지금의 이화령(梨花嶺)이다. 여지승람 연풍현(延豊縣) 조에는 이화현이 현(縣)의 동쪽 7리, 문경현 경계에 있다고 했다.

뉘부리가 이화령으로 되기까지

이우릿재의 이우리는 원래 이부리의 변음인 듯하다. 그리고, 이 이부리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니부리(뉘부리)나 느부리(는부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이우리를 느부리까지로 보는 데는 다소 조심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한자 지명에서의 이(伊)가 니 또는 느의 음차로 많이 씌어 왔다는 사실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학자들이 옛 지명에서 닛재(늦재)로 유추하는 이벌지(伊伐支)나 니즌매(느즌매)로 유추하는 이진매(伊珍買)가 그 예에 해당한다. 이벌지와 이진매는 각각 지금의 영주 순흥면 일대와 황해도 이천군(伊川郡) 일대이다. 닛재는 이어진(連) 산, 니즌매는 (줄기가)늘어진 산의 뜻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전국에는 이와 비슷한 땅이름들이 많다.

이붓재 : 광주 광주읍 목현리

이불 : 밀양 청도면 두곡리, 서천 서천읍 화금리, 나주 문평면 옥당리

니분, 너분등 : 청도 매전면 지전리

너불게 : 고양 덕양구 원당동

너불등 : 합천 삼가면 어전리

너불목 : 하동 악양면 봉대리, 영월 주천면 금마리

너불머리 : 김천 구성면 금평리

이우리에서의 우리는 부리(불이)가 그 뿌리였을 것으로 본다. 이는 이러한 이름들이 뒤에 한자로 화(火)로 많이 취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에는 이화령의 원이름인 이우리와 똑같은 땅이름이 있는데, 한자로 이화어(伊火於)라고 쓴다. 또, 밀양의 이불매(이울매)는 화산(火山)이라고 쓰고 있다.

우리 국어의 변화 과정을 보면, ㅂ(p, b) 음이 한글의 o을 취하게 되는 모음이나 영어의 w 발음식으로 옮겨간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옛말의 고블이 고을로 된 것이라든지, 지금의 서울이 셔블에서 변해온 것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또, 지금의 말 중에 술(酒), 시골(村), 새우(鰕) 등의 말이 수블, 스그불, 사? 등의 옛말에서 변해온 것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쉽다나 곱다 같은 말이 그 어근 뒤에 부사형 어미 ~고를 취하면 쉽고나 곱고가 되지만, 서술형 어미 ~ㄴ을 취하면 쉬운이나 고운 식으로 ㅂ음이 떨어져 나간다. 또, 형용사가 명사로 변한 미움(밉다>밉음>미움), 도움(돕다>돕음>도움) 등의 말을 통해서도 ㅂ 탈락의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부리가 이우리로 변했을 수도 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부리는 아마도 그 원말이 니불(니부리)일 것이다. 니는 느와 서로 넘나들어 씌어온 말이므로 니브리는 느브리일 수도 있으며, 이것은 바로 늘어진 부리(山), 즉 산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음을 뜻하는 이름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올 수 있게 한다.

느+불(부리)=느부리(니부리)>이부리>이우리

여기에서 느(니, 이)가 이(伊)로, 부리(불)가 화(火)로 취해져 한자로 이화(伊火)가 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부리를 불이(불)로 하여 화(火)로 취하는 것은 지명 옮김의 일반적인 예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풍과 문경 사이의 이부릿재는 니부릿재(느부릿재) 또는 이와 근사한 원이름을 이화현(伊火峴)으로 표기했을 것으로 본다. 이 이화현은 일제가 고개를 크게 새로 내면서 이화령(梨花嶺)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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