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0구간] 조령산 - 식생

지형 경관이 그 지역 식생을 결정한다
가야산은분취·꼬리진달래·가는잎향유 자생지

▲ 백두대간 조령산 구간에 무리를 지어 자라는 개쑥부쟁이가 꽃을 활짝 피웠다. 바위지대가 발달한 이 구간의 지형적 특징은 이곳에 자라고 있는 식물의 종류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화령(548m)에서 조령 제3관문(643m)까지의 백두대간 조령산 구간은 지형이 험준하다. 특히 조령산(1,026m) 정상과 조령 제3관문 사이에 있는 신선암봉(937m) 일대는 등산 초보자가 접근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험하다.

겨울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보통사람들이 주파하기에 불가능한 구간이고, 기상 여건이 좋은 때라도 정상에서 제3관문까지 가는 데 5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도상거리 5km 남짓한 거리임에도 소요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그만큼 오르내림이 심하고 험한 구간이 많다는 증거다. 백두대간 개념이 알려지고, 종주자들이 늘어나면서 그나마 밧줄을 매단 길이 났을 정도이지 이전에는 등산객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이처럼 험한 지형이 식물 분포에도 영향을 미칠까? 험한 지형이기는 하지만 이 구간의 고도가 1,000m 이하이므로 고산식물이 많이 분포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도가 낮더라도 특별히 험한 지형이므로 어떤 특별한 식물들이 살고 있지는 않을까? 사람이 접근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험한 이곳에는 어떤 식물들이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고, 가을 맞을 준비를 하는 조령산을 찾았다.

접근 어려운 험한 능선의 꽃을 찾아서

가야산은분취 중부 지방의 높은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조령산 능선에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는 이화령을 출발점으로 잡았다. 안동, 문경, 상주 일대에서 충주, 제천, 서울을 이어주던 이곳은 이화령터널이 새로 뚫려 3번 국도가 그곳으로 옮겨 지나게 된 이후에는 한적한 고갯길이 됐다.

조령산을 향해 출발하자 예의 그 소나무숲이 나타났다. 소나무숲에는 굴참나무, 신갈나무가 간간이 섞여 자라고, 숲 바닥에서는 물봉선, 오리방풀, 꽃며느리밥풀, 참산부추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송이가 많이 나는 절기이고 보니, 꽃며느리밥풀이 자라는 소나무숲이 범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송이꾼들에게는 ‘송이풀’(정확히 송이풀이라고 불러야 하는 진짜 송이풀도 있는데, 며느리밥풀 종류와는 아주 다른 것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송이버섯이 나는 소나무숲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식물이 며느리밥풀 종류들이다.

‘마사토에 며느리밥풀’이 자라는 소나무숲이라야 송이버섯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곳이면 모두 송이버섯이 나는 것은 아니므로 ‘마사토에 며느리밥풀’은 송이버섯이 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구절초 전국의 산과 들에 비교적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쑥부쟁이 종류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마사토에 꽃며느리밥풀이 자라고 있었고, 송이냄새도 분명히 맡을 수 있었다. 가족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자기만 안다는 송이밭을 아침 일찍 둘러보고 오는 송이꾼도 만났다. 하지만, 그 귀한 송이가 어디 아무 눈에나 띄겠는가. 냄새만 맡고 문경이나 괴산이 유명한 송이버섯 산지라는 것을 실감만할 따름이다.

이화령에서 조령산 정상 아래에 있는 조령샘까지는 백두대간 능선에서 동쪽 사면을 따라서 대부분의 길이 나 있다. 대간종주가 붐을 이루면서 능선을 따라서도 길이 새로 나기는 했지만, 이 사면길이 예로부터 자연스레 난 등산로라 할 수 있다.

사면의 등산로는 골을 이룬 곳에 작은 돌들이 쌓인 퇴석지대를 여러 번 건너갔다. 이곳에 자라는 식물은 소나무숲이나 다른 활엽수림 바닥에서 자라는 풀들과는 종류가 조금 달랐다. 나비나물, 신감채, 참꿩의다리, 나도송이풀 등이 자라고 있는 활엽수림 바닥과는 달리 이들 퇴석지대에는 바랭이, 까치고들빼기, 강아지풀, 닭의장풀, 산물통이, 눈괴불주머니, 거북꼬리, 담쟁이덩굴 등이 자라고 있었다.

가는잎향유 속리산, 월악산, 주흘산 등지에 매우 드물게 자라는 한해살이풀로, 조령산 능선의 바위지대에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꽃은 10월 중순에 핀다.
숲속에서 덩굴지어 자라고 있는 한 식물이 눈길을 끌었는데, 꼭두서니과의 계요등이었다. 주로 남부지방에 자라는 식물인데, 이곳까지 올라와 자라고 있었다. 백두대간 조령산 구간의 동쪽, 속리산 구간의 남쪽 땅인 문경 일대는 몇몇 남쪽 식물들의 분포에 있어서 북방한계선이 되고 있는데, 계요등도 그런 식물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문경이 북방한계선이 되는 대표적인 식물로는 춘란(보춘화)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대흥란이 발견됐는데, 이 역시 이곳이 북방한계선으로 추정된다. 춘란이나 대흥란 모두 동해안을 따라서는 동해나 삼척까지 진출해 자라지만, 한반도 내륙 중앙부에서는 문경땅까지만 올라와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들 식물의 분포를 경계 짓는 데에 백두대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백두대간 능선쪽으로는 소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계곡쪽에는 신갈나무, 굴참나무를 비롯해서 물푸레나무, 쪽동백나무, 층층나무, 마가목, 생강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다. 조림한 잣나무가 숲을 이룬 곳도 더러 있었다.

까치고들빼기 전국의 높은 산에 자라는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로 시들 때 고약한 냄새가 난다. 조령산 능선에 큰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잘록한 능선 안부에서 대간 길로 올라서자 어린 물푸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무리지어 자라는 것을 거의 볼 수 없는 나무이므로, 자연적인 것이라면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능선 잘록이에는 환삼덩굴과 개망초가 무리 지어 자라고 있어 사람들이 백두대간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대간 위의 헬기장에도 짚신나물, 쇠서나물, 억새, 개쑥부쟁이 등과 함께 개망초, 나도송이풀 등이 자라고 있어 사람에 의해 귀화식물과 저지대 자생식물들이 유입되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한동안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조령샘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났고, 대간에서 벗어나서 잠깐 올라서자 조령샘이다. 해발 870m에 있는 이 샘은 커다란 버드나무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잣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는데, 인공적으로 심은 것임을 곧 알 수 있었다. 조령샘에서 정상을 향해 출발하자마자 꽤 넓은 잣나무 조림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에 가까워지면서 어수리, 동자꽃, 속단 등이 눈에 띄었고, 물봉선은 밭을 이루었다 할 정도로 많았다. 늙은 신갈나무 군락이 잠깐 나타나서 이전에 좋았던 숲의 모습을 짐작케 하기도 했다.

대간 마루금까리 올라온 미국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북미 원산의 여러해살이 귀화식물로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부터 급속도로 퍼졌다. 조령산 구간의 헬기장에 침입하여 살고 있다.
대간에 올라선 후 조금 더 가자 전망이 좋은 헬기장이다. 속리산부터 이곳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은 물론이고, 주흘산과 월악산 일대가 가늠됐다. 훌륭한 전망에 한껏 고조되었던 기분은 이곳 식물로 관심을 돌리자 씁쓸하게 변하고 말았다. 참취, 억새, 큰까치수염 등과 함께 자라고 있는 쑥, 강아지풀, 달맞이꽃, 산딸기나무 등 사람들에 의해 이곳 높은 능선까지 올라온 식물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쪽에서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 미국쑥부쟁이를 보고는 놀라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국전쟁 때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주로 1980년대 이후에 경기도 포천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 이 식물이 백두대간 능선까지 올라와 자라고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 생태계의 현주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말았다.

나도송이풀 전국의 양지바른 들판에 비교적 흔하게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조령산 구간에서는 능선의 헬기장 등에서 발견된다.
산비장이, 수리취, 바디나물의 꽃을 보며 어린 잣나무들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조림지를 지나자 곧 조령산 정상이다. 정상을 지나자마자 길이 험악해지기 시작한다.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이다. 이화령에서 정상까지와는 산세가 완전히 달라지며 골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기 시작한다.

식물도 달라졌다. 잣나무 따위를 심은 조림지는 아예 없어졌고, 소나무숲도 아니다. 신갈나무가 우점하는 숲에 물푸레나무, 당단풍, 함박꽃나무, 층층나무, 진달래 등이 섞여 자라고 있다. 소나무는 숲을 이룰 정도로 많지 않고 바위지대에 간간이 자라고 있는데, 수령이 오래된 것이 대부분이고, 수형이 아름답다. 몇몇 곳에서는 자생하는 잣나무도 관찰됐다.

풀꽃 종류들도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바위지대에서만 자라는 자주꿩의다리의 늦은 꽃이 나타나는 것을 시작으로 개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이화령에서 정상까지 별로 보이지 않던 개쑥부쟁이와 구절초는 정상부터 조령 제3관문까지 이곳저곳에 큰 무리를 지어 가을꽃밭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맘때쯤 대간의 이 구간을 종주한 이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정령엉겅퀴 강원도 이남의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조령산 능선에서는 몇몇 개체가 발견됐다.
구절초와 개쑥부쟁이 외에도 죽대, 오리방풀, 미역취, 바위떡풀이 많았다. 지난번 대야산 취재에서 발견해 최남단 자생지라고 추정한 왜솜다리도 눈에 띄었다. 눈길을 끄는 식물이 하나 더 있었는데, 가야산은분취였다. 가야산에서 처음 발견된 우리나라 특산식물로서 가야산뿐만 아니라 덕유산을 거쳐 설악산까지 분포하는 식물이다. 은분취에 비해서 잎이 더 얇고, 보통 키가 더 큰 게 특징이다. 한두 포기가 아니라 아주 많은 포기가 바위지대에서 자라고 있었고, 꽃이 한창이었다.

바위봉우리를 넘고 잘록이에 도착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중에 꼬리진달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야산 정상 부근에서 몇 그루 만났던 희귀식물이 이곳에도 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웃한 주흘산이나 월악산 일대에서 많은 개체를 만난 적이 있어서 백두대간의 이 부근부터는 나타나리라 기대했던 식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대야산 이후 육산의 면모를 지닌 이화령~조령산 구간에서는 볼 수 없었고, 조령산 정상 이후에 골산다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다시 나타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지형이 그곳에 자라는 식물을 결정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또 다른 식물이 하나 나타났다. 가는잎향유라는 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주흘산, 속리산, 월악산 등지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식물로 평양 등 북한에도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남한의 고립된 분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매우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라는 희귀식물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 있는 주흘산, 속리산, 월악산의 것들은 주능선이 아니라 7~8부 능선 또는 저지대 바위 위에서 자라는 것들이었는데, 이곳 백두대간 조령산 구간에서는 바로 백두대간 마루금에 자라고 있는 점이 특이했다. 남한의 백두대간에서는 아마도 이곳 조령산 구간이 유일한 자생지라고 여겨진다.

눈괴불주머니 전국의 산과 들 습기가 많은 곳에 흔하게 자라는 두해살이풀이다. 봄이 꽃이 피는 산괴불주머니와는 달리 늦여름부터 가을에 꽃이 핀다.
이곳의 가는잎향유는 신선암봉 전과 후 두 곳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개체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보통 무리를 지어 자라는 것과는 달리 몇몇 개체들이 빈약하게 모여 자라고 있을 따름이었다. 한해살이풀이기 때문에 태풍이나 채취 등으로 씨앗을 남기지 못하게 되면 멸종 위험이 크다는 것을 감안할 때, 백두대간의 가는잎향유는 위태로운 지경에 있다 할 것이다.

밧줄을 잡고 바위지대 오르내리기를 여러 번 한 끝에 신선암봉에 도착했다. 문경새재쪽 전망이 시원스레 터지고, 구불구불한 소나무 몇 그루가 그림처럼 서있다. 바위틈에 흙이 쌓인 곳에는 바위채송화며 난장이바위솔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서 제3관문까지는 아직도 2시간 이상 더 가야 한다.

드물게 보이던 꼬리진달래는 이제 바위지대를 따라 지천이다. 이 식물이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잠시 바위봉우리가 흙 속으로 모습을 숨겨 활엽수가 숲을 이룬 곳이고, 다시 나타나면 바위지대가 시작되었다. 바위지대에서 넘쳐나는 개쑥부쟁이와 구절초는 바위지대뿐만 아니라 활엽수 숲속에서도 무리를 지어 자라는 광경이 번번이 발견됐다. 육체적으로 고된 산행에서 흐뭇한 마음이 들게 하는 일이 되고도 남았다.

조령 제3관문이 가까워지면서 부드러운 능선에 소나무가 섞인 신갈나무숲이 가끔씩 나타났고, 이곳에는 철쭉나무, 진달래, 생강나무, 노린재나무, 미역줄나무, 쇠물푸레 같은 떨기나무와 함께 큰참나물, 정령엉겅퀴, 지리고들빼기, 조밥나물 등의 풀꽃이 자라고 있었다.

생물다양성 감소시키는 백두대간의 간벌

큰참나물 전국의 산에 비교적 드물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참나물에 비해서 잎이 두껍고 자주색 꽃이 피므로 구분된다.
깃대봉 갈림길 표지판에 이르자 길고 험했던 백두대간 길이 끝나가고 있었다. 20여 분이면 조령 제3관문이다. 1km쯤 되는 이 구간에서 숲은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의 활엽수들이 곧게 잘 자라고 있는데, 주변에 떨기나무 같은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군데군데 나무토막들이 쌓여 있다. 주변에서 자라던 소위 잡목들을 제거하는 간벌을 한 지역이다.

이런 백두대간의 간벌은 이화령에서 조령산을 향해 출발하는 곳에서도 목격됐다. 이화령에서 조령 제3관문까지 조령산 구간의 시작과 끝이 비슷한 형국인 셈인데, 이것은 도로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화령의 옛 3번 국도, 조령 제3관문의 새재길로 인해 간벌에 필요한 인원과 장비가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벌이나 조림이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한 국가의 생태계, 나아가 지구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녹지축이자 생물다양성의 터전인 백두대간에서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간벌과 조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Posted by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