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을 차 타고 누비다
인도네시아 여행기(5) 반둥 주변의 자연생태 기행
정철용(ccypoet) 기자
방갈로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일어난 반둥의 아침, 고원도시라서 정말 서늘한 게 상쾌했다. 밖에 나가 한 바퀴 둘러보니 멀리 보이는 산의 기슭에 구름들이 걸쳐져 있고 미세한 아침 안개에 굴절된 햇빛이 푸른 잔디밭 위로 분수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기사 겸 가이드인 토픽이 레스토랑 앞 쪽 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는지, 아니면 점검을 하는지 자동차의 문을 모두 열어놓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어젯밤, 차 안에서 불편하게 잠을 잤을 텐데….’

토픽처럼 기사 겸 가이드로 출발지에서부터 함께 동행하는 경우에는 자기가 알아서 슬리핑백을 챙겨 다니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토픽의 숙박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처남은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제 오후 우리 방갈로 앞에서 헤어지고 난 후, 나는 토픽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차를 살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어젯밤 분명 불편했을 그의 잠자리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함께 아침을 먹으며 잘 잤느냐고 물어보니, 토픽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좋게 웃어 보일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한국에서라면 분명 따져도 한참을 따지고 험한 말을 주고받았을 상황인데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이곳 사람들의 형편이 가엾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화산 지대, 솟아오르는 유황 연기보다 장사꾼들이 더 무섭다

체크아웃을 하고 우리는 자바 섬에서 가장 큰 화산인 땅꾸반 뻬라후(Tangkuban Perahu) 화산으로 향했다. 지도로 확인해 보니 아침에 방갈로 밖에서 보았던 바로 그 산이다. 1829년부터 1929년까지 여섯 차례 폭발한 적이 있어 지금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이라고 한다. 별로 높지 않은 1150m의 정상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도록 도로가 나 있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관광객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우리 차가 도착하자 장사꾼들이 우르르 우리에게 몰려든다. 그들을 떨쳐내고 삭막한 풍경의 분화구 안에서 허연 유황 연기가 솟아나는 모습을 잠깐 바라본다. 그다지 큰 감흥이 오지 않는다. 이미 뉴질랜드의 유명한 화산지대인 로토루아(Rotorua)에서 온갖 기기묘묘한 풍경들을 모두 다 보았기 때문일까?

그래도 처남이 권했을 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내려오는 길에 조그만 기생 화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시 차를 세웠다. 팻말을 보고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누가 막아선다. 위험한 지역이라 자기처럼 교육받은 현지 가이드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단다. 그리고 가이드 비용으로는 5만 루피아를 내야 된단다.

우리는 전문 가이드가 안내하는 것으로 봐서 제법 흥미진진한 풍경이 펼쳐지리라 기대하고 그를 따라 나섰다. 조금 가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뒤에 배낭을 멘 사람이 한 사람 따라오면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보조 가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들과 함께 30분쯤 비탈진 산길을 오르는데 역시 우리 말고는 사람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는다.

▲ 땅꾸반 뻬라후 화산의 중턱에 있는 기생 화산. 바위틈에서 유황 연기가 솟아나오고 있다.
ⓒ 정철용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은 여기저기 흩어진 바위덩어리들 사이에서 하얀 유황 연기가 간간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실망스런 광경에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그 옆의 매점 주인이 “계란 삶아먹고…”라고 또렷한 한국말로 말하면서 계란을 가리킨다. 저 바위틈 끓어오르는 물에 계란을 삶아 먹으라는 것이다.

정말 계란 삶아 먹는 것밖에는 할 일도 볼거리도 없는 그 곳에서 우리는 채 10분도 머물지 않고 돌아 나왔다. 위험하지도 않고 볼거리도 없는 이런 곳을 보여주는데 무슨 교육받은 현지 가이드가 필요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우리의 실망은 돌아 나오는 길에 보조 가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분노로 바뀌었다. 배낭에서 목걸이와 반지 등 조잡한 기념품들을 꺼내더니 그는 나에게, 아내에게 번갈아 가면서 사라고 졸라댄 것이다. 안 산다고, 그만하라고 분명하게 말했건만, 그는 돌아 나오는 길 내내 우리를 졸라댔다.

족자카르타에서도 느꼈지만 이처럼 인도네시아에서의 여행은 장사꾼들과의 전쟁이다. 멋지고 장엄한 풍경을 기대한 화산 지대에서 멋진 풍경은 고사하고 장사꾼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니 정말 우리의 마음은 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처남이 이곳을 추천한 것은 이처럼 우리 자신이 정말 화산이 되는 경험을 한번 해보라고 그런 것일까?

따만 붕아, 잘 가꾼 꽃의 공원에서 화를 갈아 앉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우리의 화를 가라 앉혀준 것은 잘 가꾸어진 꽃의 공원, 따만 붕아(Taman Bunga Nusantra)였다. 뿐짝 고개 못 미쳐 찌빠나스(Cipanas)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이 아름다운 공원은 23헥타르(약 7만평)의 부지에 나라별로 그리고 테마별로 잘 가꾸어진 갖가지 정원들과 놀이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 따만 붕아의 발리 정원의 입구. 특유의 발리식 건축물로 장식되어 있다.
ⓒ 정철용
15분마다 운행하는 트램(tram)도 있었지만 우리는 좀 더 가까이에서 꽃들과 나무들을 즐기기 위하여 정원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하였다.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난 물의 정원과 루이 14세 치하의 르네상스식 스타일로 꾸며놓은 프랑스 정원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동양의 정원들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입구를 화려한 건축물로 장식한 발리 정원에는 고요한 명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일본 정원에서도 눈의 즐거움보다는 마음을 응시하게 만드는 정밀(靜謐)이 느껴졌다. 세계 어디를 가나 만나게 되는 일본 정원처럼 우리 한국의 정원도 외국에서 만나 볼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일본 정원. 우리 한국 정원도 그럴 수는 없는가.
ⓒ 정철용
딸아이에게는 이러한 정원의 아름다움도 별반 큰 구경거리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미로(迷路) 정원 앞에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와, 재밌겠다. 우리 들어가 보자!”

망설이는 우리를 딸아이가 재촉한다. 잘 다듬은 쥐똥나무 울타리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간다. 그런데 한 30분 이상은 헤맬 각오를 하고 들어간 미로 정원은 너무나 싱겁게 길을 열어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미로 정원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흙길은 그 흔적이 너무나 뚜렷해서, 갈림길에서 그 흔적이 이어지는 길을 택해 따라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5분도 안 되어 도착한 미로 정원의 중심에는 물론 황소 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없었다. 대신 독특한 모양과 색깔의 꽃을 피우는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나무의 꽃을 한참 바라보다가 우리는 다시 미로 정원을 빠져나왔다. 출구로 이끌 아리안느의 실이 필요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 너무나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 미로 정원. 아리안느의 실이 필요가 없다.
ⓒ 정철용

따만 사파리, 동물의 왕국을 차를 타고 누비다

유황연기 내뿜는 화산과 아름다운 꽃들 가득한 정원에 이어지는 우리의 자연생태기행은 이번에는 동물원으로 향한다. 토픽은 뿐짝 고개를 쉬지 않고 넘어 내처 달리다가 따만 사파리 표지판 앞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간다.

좁은 길에 아이들이 작은 당근 다발들을 양손에 가득 들고 흔든다. 토픽은 잠깐 차를 멈춰 한 아이에게서 작은 당근 두 다발을 사서 내게 건네준다. 웬 당근? 궁금해하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나의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나는 일반적인 동물원을 예상하고 따만 사파리(Taman Safari Indonesia)의 입구를 통과하자 내릴 준비를 하였는데 토픽은 차를 계속 운전한다.

“야, 얼룩말이다!”

딸아이가 소리치길래, 그쪽을 보았더니 정말 얼룩말이 길 가에 서 있다. 토픽은 속도를 늦추고 내가 들고 있던 당근 다발에서 당근 한 개를 가져간다. 그리고는 창문을 내리더니 당근을 얼룩말에게 내민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얼룩말은 가까이 다가와 당근을 받아먹는다.

아, 그렇구나. 나는 당근의 용도와 이 곳에 ‘사파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그제서야 이해했다. 동물원 측에서 운행하는 사파리 버스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직접 동물의 왕국을 누비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 따만 사파리에서 만난 낙타. 먹을 것을 달라고 차창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 정철용
우리는 낙타와 사슴과 기린 등에게 당근을 먹여주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딸아이도 신이 나서 창문을 열고 연신 동물들을 불러댔다. 당근 두 다발이 금세 동이 나고 말았다. 어떤 동물들은 먹을 것을 내 놓고 가라고 우리 차를 막아서기도 했다.

차는 호랑이와 사자, 곰 등의 맹수들을 풀어 놓은 지역으로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맹수들의 지역에서는 물론 창문을 내리고 먹이를 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중 철책문이 설치되어 있고 군데군데 감시 차량이 서 있기는 하였지만 일반인의 자동차를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에까지 다닐 수 있게 한 것은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자칫 실수로 자동차 창문을 열어 놓은 채 그곳으로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한 그곳을 우리 차는 무사히 빠져 나왔다. 토픽은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코끼리쇼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조련사의 수신호에 따라 그 육중한 몸을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는 코끼리의 눈이 애처로워 보였다.

두 발로 번쩍 서기도 하고, 다른 코끼리와 함께 재주를 부리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밟지 않고 그 사이사이로 걷기도 하는 등 코끼리들은 훈련받은 대로 착실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고 나면 조련사는 메고 있는 가방에서 작은 바나나를 꺼내 코끼리들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어떤 놈은 시도 때도 없이 그 가방 쪽으로 코를 내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조련사는 그 코를 때려준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처로웠다.

▲ 바닥에 누운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는 코끼리. 그 육중한 몸의 둔중한 움직임에서는 웬지 슬픔이 느껴진다.
ⓒ 정철용
자세히 보니 그 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은 슬픔일까, 아니면 분노일까, 그것도 아니면 체념일까? 다음 세상에서는 너도 인간으로 태어나 코끼리 조련사가 되려무나. 그래서 코를 내미는 코끼리들에게는 양껏 바나나를 먹여주려무나. 나는 속으로 빌어주었다.

이외에도 주변에 새들의 우리와 야외 공룡 전시장 등 제법 볼거리가 많아 보였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바로 차에 올라타고 자카르타로 향했다. 그 길에 비를 만났다. 인도네시아에서 머무는 동안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비는 20여분 동안 세차게 쏟아졌다.

빠른 속도로 차창의 빗물을 걷어내고 있는 윈도 브러시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길은 다시 인공의 세계로 이어지고 있었다. 유황연기 보다 더 매운 매연을 뿜어내는 차들과 푸른 녹색이 안보일 정도로 먼지 가득 앉아있는 찌든 가로수들과 학교와 사무실과 집을 오가며 답답한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는 이상한 동물, 인간으로 가득 찬 도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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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에서 타르코프스키를 떠올리다
인도네시아 여행기(4) : 반둥 가는 길
정철용(ccypoet) 기자
족자카르타에서 돌아온 후 자카르타의 처남 집에서 하루 숨을 돌리고 우리는 다시 여장을 꾸렸다. 이번에 갈 곳은 반둥(Bandung). 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약 170km 떨어져 있으니 하루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처남은 자카르타에서 반둥까지 오가는 길에 볼 게 제법 많고 반둥 근처의 유황 온천도 좋으니 1박 2일로 여유 있게 다녀오라고, 우리가 족자카르타에 다녀오는 사이 숙소와 교통편을 벌써 예약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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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서 반둥까지의 여행은 대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처남은 우리의 안전과 편리를 위해서 고맙게도 자기의 승용차를 내주었다. 그리고 거래하는 현지 여행사를 통해서 반둥 주변의 지리를 잘 아는 현지인을 수소문해 기사 겸 가이드로 붙여주었다.

그러나 ‘토픽(Taufiq)’이라는 이름의 그 청년은 길은 잘 알아서 기사로서는 제격일지 모르겠지만,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아서 가이드로서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어쨌거나 우리는 가벼운 흥분 속에서 그가 운전하는 처남의 승용차를 타고 호사스러운 반둥행을 나섰다.

뿐짝 고개에서 ‘홀짝’ 차를 마시다

자카르타를 벗어나서 1시간 반쯤 달렸을까, 차는 경사진 좁은 오르막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그 길의 양쪽으로는 녹색의 초원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풀밭이 아니다. 차밭이란다. 한국의 전남 보성의 차밭처럼 짙푸른 녹색의 차밭이 능선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녹색의 차밭과 함께 해발 1000미터의 고개를 올라간다. 그 고개 이름이 재미있다. 뿐짝(Puncak). 이곳 말로 ‘꼭대기(summit)’라는 뜻이라는데, 나는 자꾸만 ‘뽕짝’이 연상된다. 하지만 고갯마루에 오르니 뽕짝 소리는 들리지 않고 향기로운 차 맛을 즐길 수 있는 휴게소들이 우리를 맞는다. 토픽은 그 중에서 가장 주차장이 붐비는 곳에 차를 세웠다.

▲ 뿐짝 고개를 오르는 길 양쪽으로는 녹색의 차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 정철용
토픽에게 물어서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차를 주문하고 나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아침부터 배가 조금 쌀쌀한 게 심상치 않았는데, 아무래도 볼일을 봐야 될 것 같았다. 휴지는 안 쓰고 대신 왼손을 사용해서 물로 씻어내는 악명 높은 인도네시아의 화장실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나는 휴지를 준비해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화장실에는 휴지는 안 보이고 대신 물을 받아놓은 플라스틱 통이 한 구석에 놓여 있었다. 항문의 입장에서는 위생적이기는 하겠지만 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찝찝한 노릇인가! 더군다나 이들은 수저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민족인데….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는 항문으로 향하는 왼손과 입으로 향하는 오른손의 분업이 매우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단다.

시원하게 비운 뱃속으로 따스하고 향기로운 차를 흘려보내니 한결 속이 편안해졌다. 특이하게도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그 차의 맛은 입에서는 달게 느껴지더니 식도를 따라 위장으로 흘러들면서는 향기로운 풀내음으로 온 몸에 퍼져나갔다. 홀짝거리며 마시는 뿐짝의 따스한 차 한 잔은 반둥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오아시스다.

유황온천을 즐기며 반둥에서 빈둥대다

반둥회의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국이 참가하여 경제협력, 문화협력, 인권 및 민족자결, 종속민족문제, 세계 평화의 증진 등을 토의한 회의로 일명 ‘아시아ㆍ아프리카 회의’라고도 한다.
이 회의를 계기로 이른바 제3세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고 아시아ㆍ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평화 10원칙’은 이 반둥 회의에서 결의된 ‘세계 평화와 협력의 증진에 관한 선언’에서 내세운 평화의 옹호와 증진을 위한 원칙이다. 반둥원칙이라고도 하는 이 ‘평화 10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기본적 인권 및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의 존중 ② 국가의 주권 및 영토 통합의 존중 ③ 인종과 국가 간의 평등 ④ 내정불간섭 ⑤ 단독 혹은 집단적 자위권의 존중 ⑥ 집단 방위협정을 대국(大國)의 특수 이익을 위해 사용치 않고 내전(內戰) 불간섭 ⑦ 침략 및 침략의 위협, 병력 사용 금지 ⑧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⑨ 상호 이익과 협력 증진 ⑩ 정의와 국제 의무의 존중
뿐짝 고개에서 1시간을 더 달려서 우리는 반둥으로 들어섰다. 반둥은 해발 700미터의 고원도시로 연중 서늘한 기온과 쾌적한 날씨를 보여 네덜란드 치하에 있던 19세기 중엽부터 피서지 및 휴양지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유럽풍의 아르 데코(Art Deco) 스타일의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 당시 반둥이 ‘자바의 파리’라고 알려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꽃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반둥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아마도 1955년 4월에 역사적인 제1차 아시아ㆍ아프리카 회의(일명 반둥회의)를 개최하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제3세계 세력의 형성과 아시아 및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이 반둥회의로 반둥은 세계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반둥 시내에 있는 한국음식점 ‘코리언 하우스’에서 점심을 먹고 또 1시간을 더 달려서 마침내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찌아터 스파 리조트(Ciater Spa Resort). 이곳은 인도네시아 전통가옥식으로 지은 방갈로(bungalow)에 머물면서 단지 내에 있는 야외 온천장에서 천연 유황 온천욕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은 휴양지이다.

일요일이라 손님이 많아서였는지 야외 온천장 바로 옆의 예약된 우리의 방갈로에 여장을 풀기까지는 체크인을 하고도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숙소에 여장을 푼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온천장으로 향했다.

▲ 찌아터 스파 리조트 단지 내에 있는 야외 온천장.
ⓒ 정철용
이미 늦은 오후고 사람들도 거의 다 빠져나가서 온천장은 한적했다. 물이 제법 뜨겁고 유황 성분이 많아 눈이 매워서 물속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피부에는 효과만점이라고 하니 들락날락거리며 바로 옆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시켜 먹으면서까지 늦도록 온천을 즐겼다.

뜨거운 물속에 몸을 누이고 어둠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예전에 보았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노스탤지어>가 생각났다.

영화 속 주인공 안드레이는 촛불 한 자루를 켜들고 이탈리아의 어느 야외 온천장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간다. 촛불은 번번이 꺼지지만 그는 자신의 이 하찮은 행동이 정말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듯이 포기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장을 가로질러 맞은 편 끝에 닿는데 성공한다. 바로 그 시각 세상의 구원을 외치며 한 미친 사내가 로마의 시내 한복판에서 분신한다.

그렇다면 안드레이가 온천장에서 들고 갔던 촛불은 어쩌면 분신한 그 미친 사내의 생명이 아니었을까? 그의 성공과 미친 사내의 분신은 모두 세상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는데, 과연 세상은 구원되었을까?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노스탤지어> 포스터.
ⓒ 무비스트
나는 고개를 흔든다. 미국 등 강대국의 이라크 침공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지는 끊임없는 유혈 분쟁 등 최근의 지구촌 풍경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50년 전 반둥에서 선언된 세계 평화와 협력을 위한 평화 10원칙은 아직도 그 실현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할 것 같다.

머리로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내 몸은 뜨거운 온천물에 노곤하게 풀어진 채 무겁다. 짙어지는 어둠을 배경으로 더욱 선명하게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을 누군가 가로지르는 것이 보인다. 촛불을 켜들고 가는 ‘그’가 ‘나’이어야 할 텐데, 내 몸은 여전히 뜨거운 온천물 속에 잠겨 있다.

반둥에서 한가롭게 유황온천을 즐기며 빈둥대는 나를 타르코프스키가, <노스탤지어>의 안드레이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눈을 뜨고 올려다보니 어둠 속 반둥의 밤하늘엔 별들이 참 많이도 떠 있다. 하늘엔 평화, 그러나 땅에서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그 유황 냄새 속에서 나는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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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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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동쪽 자바 관광 조회(131) / 추천 / 퍼가기
등록일 : 2006-05-09 09:23:51

인도네시아 東자바

브로모 (Bromo) 산의 일출광경

東자바의 스라바야市에서 3시간 거리에위치

브로모 산의 일출광경

브로모 산 분화구 입구

브로모 산 분화구에 이르는 게단

브로모 산에 사는 여인들

가파른 비탈에 양배추를 심는다

브로모와 수라바야의 중간 지점...강 하구에 사는 사람들

수라바야와 마두라를 연결하는 페리

수라바야의 퇴근시간 풍경

수라바야의 옛 부두

아랍인 촌이라 불리는 곳에서 만난 무슬림 소녀들

수라바야의 새시장

마자빠힛 왕조가 처음 들어섰던 지역에

지금은 이렇게 성문만 남아있다.

쁘람바난 힌두사원의 전경

쁘람바난 힌두사원에서

라마야나 춤을 추는 무희들

쁘람바난 힌두사원 외벽의 부조들.

쁘람바난 힌두사원 외벽의 부조들

보로부두르사원'

보살이 되기위한 경전의 산'이라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세계 3대 불교유적으로 꼽힌다.

보로부두르 사원

족자카르타의 서부42km에 위치

사원의 회랑 벽면에는
부처의 탄생으로부터 득도에 이르는
장대한 이야기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

보로부두르 사원

족자마르타市의 단거리 교통수단인 베짝

솔로의 농촌풍경

솔로의 골동품 시장

솔로의 바틱공장--모든 작업이 수공으로 이루어진다

솔로의 가믈란 악기들

디엥고원의 초기 마따람 왕조의 힌두 유적들.

5-6세기에 건축된 이 사원들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종교적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은 사원들은 50피트가 넘는 높이로

유황지대에 세워졌으며

울퉁불퉁한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디엥고원은 스마랑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해발 1,800m이다

디엥고원에 놀러온 어느 가족

디엥고원의 사람들

디엥고원에는 이렇듯 아직 화산활동이

이어지고 있으며

곳곳에 많은 간헐천과 유황온천 지역들이 있다.

인도네시아-동남아시아 남부, 말레이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공화국.
면적190만 4000㎢
인구2억 1290만 명(2003)
인구밀도111.8명/㎢
수도자카르타
주요언어인도네시아(말레이)어·네덜란드어·자바어
종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
통화인도네시아루피아(Rp)
환율1달러=8649Rp(2004.3)
국내총생산2082억 달러
(2003)1인당 968달러
무역수지수출 610억 2300만 달러
(2003)수입 323억 9000만 달러
설명
동남아시아 남부, 말레이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공화국. 정식명칭은 인도네시아공화국. 면적 190만 4000㎢. 인구 2억 1290만 명(2003). 서쪽 인도양과 동쪽 태평양 사이 적도 부근에 있으며, 북쪽의 아시아대륙과 남쪽의 오스트레일리아대륙을 연결하는 중간지대를 이루고 있다. 수도는 자카르타.
인도네시아의 자연
인도네시아의 지형
인도네시아는 지형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를 나타내는 지역의 하나이다. 각기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양대륙 연장부에 해당되는 얕은 순다대륙붕과 사훌대륙붕 사이에 있다. 북서로부터는 히말라야산계(山系)의 연장인 테티스구조선(構造線)이 뻗어 수마트라섬·자바섬을 비롯한 소(小)순다열도 섬들의 형성과 동시에 격렬한 화산활동이 일어난다. 또한 동쪽에는 필리핀에서 뉴기니섬 방면을 관통하는 환태평양구조선(環太平洋構造線)이 통과하기 때문에 몰루카제도(諸島)·셀레베스섬 북부 등지에 화산활동이 일어나는 요인이 된다.

인도네시아의 화산수는 130개로 활화산이 78개나 있는데, 그 중에는 수마트라의 크린치화산, 자바의 메라피화산·브로모화산·수메르화산, 발리의 아궁화산 등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순다해협의 크라카타우화산, 숨바와섬의 탐보라화산처럼 옛날에 세계적 규모의 폭발을 일으켰던 것도 있다. 1815년 탐보라화산의 분화는 1883년 크라카타우화산의 분화를 능가하는,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폭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지반도 대부분 불안정하고 지진도 자주 일어나며, 해저지형도 복잡하고 여러 곳에 깊은 해구(海溝)가 있다. 2004년 12월에는 수마트라섬 해역에서 남아시아지진해일이 발생하여 반다아체 지방이 물에 완전히 휩쓸려 버리는 등 대참사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화산은 기름진 토양을 생성하기도 하여 인간 생활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크고 작은 섬들과 화산이 연속해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일반적으로 대륙처럼 큰 강이나 삼각주는 없다. 이 지역에서 인간의 거주지로 선택된 곳은 저지보다는 구릉지나 산간의 고원 또는 분지였다. 이러한 지역이 역사적으로 개척의 중심이 되었던 예는 수마트라섬·자바섬 등 각지에 많은데, 그 이유는 열대기후도 그 곳에서는 약간 누그러지며 유수관개(流水灌漑)에 따른 논의 개발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수마트라섬 동쪽 해안이나 보르네오섬 남쪽 해안에는 비교적 큰 강이 난류(亂流)하고 있으나, 몇몇 하항도시를 제외하면 아직도 인구가 희박하고 개발 정도가 낮다.
인도네시아의 기후
인도네시아의 기후는 적도 바로 밑의 열대우림기후와 그 남북의 열대계절풍기후로 크게 나누어진다. 기온은 전역이 항상 고온으로 연평균 25~27℃이며 연교차도 매우 적다. 그러나 높은 화산이 많기 때문에 고도에 따라 기온차가 커진다. 이리안자야의 해발고도 4000~5000m의 고산에서는 빙하나 만년설을 볼 수 있으나, 자바섬의 해발고도 2200m의 브로모화산 부근은 연평균기온 16℃, 해발고도 700m의 반둥고원은 22℃이다. 그래서 근대에 와서 해안저지의 대도시 주민들을 위하여 고지에는 많은 휴양지가 발달하였으며 기온차를 이용하여 각종 기온에 알맞는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적도 바로 아래 지역에서는 항상 비가 내려 연평균 강수량이 4000㎜이지만, 계절풍지역에서는 우기와 건기의 차이가 뚜렷하다. 이 두 계절은 각기 4월·11월을 교대기로 한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남서풍을 정면으로 받는 수마트라섬 남서안과 자바섬 서부는 우기에 강수량이 많고 저지에서는 자주 범람하지만, 동부의 소(小)순다열도로 갈수록 차츰 강수량이 줄어든다. 또한 소순다열도 방면은 건기에 남동풍이 강하게 불기 때문에 건조도가 높다. 그러나 섬나라이기 때문에 아시아대륙의 열대지역에 비하면 일반적으로 견뎌내기 쉬운 기후라는 특색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생물상
고온다습한 기후의 영향으로 군도(群島) 전체가 녹색식물로 덮여 있다. 그러나 기온차에 따라 식물분포도 해안저지의 맹그로브림·상록우림에서 해발고도 3000~4000m 산지의 고냉지식물에 이르기까지 복잡하다. 자바섬의 고산지역에서는 알프스에서처럼 에델바이스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식물 종류도 매우 많아서 속씨식물만도 2만 5000종이나 있으며, 야자나무도 100여 종이 넘는다. 지름이 1m나 되는 세계 최대의 꽃 라플레시아(rafflesia)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것이다. 이리안자야·보르네오섬 등지에서는 삼림분포도 비율이 전면적의 80%나 된다. 한편 그 밖의 섬에서는 개척의 진전에 따라 원생림이 차츰 줄어들고 제2차림을 덮이는 곳이 많아졌다.

인도네시아의 동물분포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양계(兩系)에 걸쳐 있다. 서쪽 섬들에는 아시아계 동물이 많지만, 마카사르해협에서 롬보크해협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월리스선(Wallace line)을 경계로 한 동쪽 섬들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계의 특질이 두드러지며 유대류(有袋類)도 나타난다. 그리고 셀레베스섬 동쪽 해안과 티모르섬 동쪽 끝을 잇는 베버선(Weber's line)은 사슴분포의 경계가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각종 특수한 생물이 있는데, 오랑우탄·반텡(들소)·자바코뿔소·야생조랑말·코모도왕도마뱀 등이 유명하다. 인도네시아의 민간설화에도 이러한 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자바섬 서쪽 끝이나 코모도섬은 야생동물의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뉴기니섬 방면의 극락조, 보르네오섬의 코뿔새 등을 비롯하여 귀중한 조류나 곤충류가 많다.
인도네시아의 지지(地誌)
자바섬
자바섬은 모든 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중심이다. 면적은 전국토의 7%에 지나지 않지만 동서의 역사적 교통로와도 가깝고, 또 섬을 가로지르는 화산맥(火山脈)으로 인해 토지가 비옥하여 생산물이 풍부하며, 그 풍요로움으로 인해 이미 2000년 전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야바디우>라는 섬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전인구의 약 70%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주로 농업으로 살아가는 섬으로는 세계 최대의 조밀성을 나타내어 농업용 토지이용도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다.

자바섬에는 제2차 말레이족에 속하는 세 민족이 거주한다. 중부에서 동부에 이르는 지역은 자바섬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개척된 곳으로 자바족이 사는데, 그들은 현재 인도네시아의 지도적 민족이며 자바섬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일찍부터 인도문화를 흡수하여 많은 왕국이 번영했고, 독자적인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이에 반하여 서부의 프리앙간산지대는 순다족의 거주지로서 인구는 자바섬의 약 20%를 차지하고, 역사적으로 자바족과 대립해 왔다. 종교적으로는 오늘날 자바족보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이다. 또한 딸려 있는 마두라섬에서부터 자바섬 동부에 걸쳐서는 마두라족이 거주한다. 그들은 근면하며 역사적으로 자바족과 융화가 잘 되어 왔다. 이들 세 민족은 저마다 다른 민족어를 사용하며 성격이나 생활풍습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밖에 자카르타·수라바야와 같은 해안도시는 자바섬 각지와 군도 각지에서 온 민족이 모여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주민의 성격에도 특수한 면이 있다.
수마트라섬
수마트라섬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섬으로 테티스구조선이 통과하여 높은 화산이 이어지는 서해안과, 순다대륙붕의 일부를 이루는 넓고 큰 저습지가 이어지는 동해안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저습지에는 바탄하리강·무시강·인드라기리강 등의 큰 강이 흐르는데, 말라카해협에 접해 있기 때문에 하구에 일찍부터 외래문화가 유입되어 팔렘방 등 하항도시가 발달하였다. 수마트라섬의 민족분포는 자바섬보다 복잡하다. 북쪽 끝에는 아체족이 거주하는데, 이곳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일찍 이슬람화한 곳으로, 민족성도 용감하여 20세기 초까지 네덜란드지배에 저항했던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토바호(湖)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원(原)말레이계의 바타크족의 거주지로서 오래도록 고립된 사회를 형성해 왔지만 근대에 이르러 그리스도교와 근대교육이 보급되어 지금은 상인이나 의사 등 근대적인 직업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늘었다.

서해안 중부의 고원을 중심으로 미낭카바우족이 산다. 그들은 수마트라 최대의 민족집단으로서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고 특유의 가옥형태를 가졌으며, 현재는 자바족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 동해안 일대에는 말레이인이 분포하며, 옛날에는 몇 개의 소왕국을 형성하였는데, 말라카해협을 사이에 둔 말레이반도 방면의 말레이인과 동일계통이다. 이 밖에 북부산지에는 가요족·아라스족, 남부지방에는 람풍족 등이 거주하고 있다.

수마트라섬은 옛날에는 밀림으로 덮여 있는 곳이 많았으나, 20세기부터 서양자본이 진출하여 북동부의 메단을 중심으로 담배·고무의 대농원이 개발되었고, 또 동해안 저지의 유전개발로 상황은 크게 변했다. 이러한 변동은 제2차세계대전 후에도 지속되어 전쟁중 800만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현재는 2100만 명을 넘어서 <제2의 자바>로 발전하고 있다.
셀레베스섬
이 섬의 특이한 형상은 테티스·환태평양의 2대 구조선의 활동결과로 생긴 것인데, 지역적으로는 우중판당(옛 이름 마카사르)을 중심으로 한 남서부반도와 메나도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반도의 두 지역만이 잘 개발되어 있다. 남서부에는 부기족·마카사르족 등의 여러 종족이 살며, 예로부터 선원이나 상인으로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활동하였으며 논농사가 발전하였다. 북동부에는 종족상 이들과 조금 다른 미나하사족이 사는데 이들도 농·어업을 생업으로 하며, 근대 이후에는 대부분 그리스도인이 되어 인도네시아의 그밖의 힌두교나 이슬람교 문화권 지역과는 다른 지역문화를 보이고 있다. 또 셀레베스섬 중앙의 산지는 원말레이계 토라자의 거주지로 특유의 문화를 남겼다. 이곳은 아직 많이 개척되지 않고 있다.
보르네오섬
보르네오섬(칼리만탄)은 수마트라섬을 능가하는 세계 제3의 큰 섬으로 전체섬 중 70%가 인도네시아령이다. 북부 말레이시아령과의 경계에는 분수령을 이루는 높은 산맥이 이어져 있고 해안 쪽으로는 저지가 펼쳐져 있으며, 특히 남부는 큰 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저지 사이를 카푸아스강·바리토강·마하캄강 등 큰 강이 흐르고 있으나, 이러한 적도 바로 밑의 거대한 우림형기후지역이 화산성의 비옥한 토양을 갖추지 못한 점 때문에 개척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으며 인구도 희박하다. 해안 가까이에는 말레이인·자바인·중국인 등이 거주하지만 보르네오섬 본래의 원주민은 원시말레이계 다야크족으로 오지(奧地)에 많은 부족이 나뉘어 살고 있으며, 수렵이나 화전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보르네오섬은 대부분이 밀림지역이지만 최근에 동부의 일부 지역에서 유전·삼림자원의 개발과 남부 해안지역에서 고무재배 등 부분적으로 개척되어 가고 있다.
소순다열도·몰루카제도
소순다열도·몰루카제도는 특수한 지역을 구성한다. 발리섬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건조도가 심해지고 사바나경관이 나타나는 곳도 있다. 발리족은 자바족과 비슷하며 뛰어난 농경민인데,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순수한 힌두교신앙을 유지하는 유일한 민족이며, 이로 인하여 이 섬은 고유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지니고 있다. 동쪽 여러 섬의 주민은 종족으로 원말레이계·멜라네시아계 요소가 강하며 화전경작 등을 주로 하고 있다.

또한 몰루카제도는 옛날부터 각종 향료의 독점생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다른 소순다 섬들과는 달리 일찍부터 외래문화와 접촉하였다. 현재 몰루카제도의 중심은 암보이나섬이며, 그곳에 사는 암본족은 네덜란드 통치 아래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리안자야
이리안자야는 세계 제2의 큰 섬인 뉴기니섬의 서반부이다. 자연이 복잡한데다 척량산맥(脊梁山脈)에 4000∼5000m의 고산이 즐비하다. 또 남쪽 경사면에는 광대한 대습원이 전개되며 섬 대부분이 적도우림(赤道雨林)으로 덮여 있어서 <녹색사막>이라고 불린다. 원주민인 니그로이드계의 파푸아족이 흩어져 있는 개척지를 제외하면 인구는 매우 적다. 그러나 최근 서쪽 끝의 첸드라와시반도를 중심으로 유전의 채굴이 시작되어, 앞으로 이리안자야의 개척 가능성은 크다.
인도네시아의 역사
인도네시아는 태고 때부터 좋은 환경 때문에 인류의 발상 발전지가 되어 왔다. 이른바 자바원인(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을 비롯하여 모조케르토인·솔로인 등 원시인류의 유물이 자바섬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주민의 대부분은 말레이민족계로 크게 원말레이계와 제2차말레이계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외래문화의 수용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서부의 자바섬·수마트라섬에는 기원 전후부터 인도상인의 동쪽 진출과 함께 힌두교·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문화가 유입되었다. 논벼재배기술을 비롯하여 산스크리트계의 문자와 문학도 전해져서 종래의 원시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문화가 전개되었다. 정치적으로도 많은 힌두계·불교계의 나라들이 일어났다.

5세기에는 다르마왕국(서부 자바), 6세기에는 칼링가국(중부 자바)이 나타났고, 같은 무렵에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에서는 불교계의 스리비자야왕국이 번영하였다. 그 세력은 8세기에는 중부자바에까지 미쳐 샤일렌드라왕국의 융성을 가져왔으며 장대한 보로부두르 불교유적도 이때 건설되었다. 또한 보로부두르와 함께 장려한 힌두교 유적인 프람바난사원군(群)도 9세기에 만들어졌고, 중부자바는 동남아시아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뒤 문화의 중심은 중부자바에서 동부자바로 옮겨져 11세기 이래 에를랑가·싱고사리·케디리 등 힌두교계 여러 왕국이 발전하였다. 또한 몰루카제도의 특산물인 육두구·정향나무 등의 향료가 옛날부터 외국상인들을 끌어들여 자바섬은 무역의 중계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말 원(元)나라의 쿠빌라이는 이 남해의 부유한 섬을 노리고 대원정군을 파견했으나 싸움에서 패하였다. 자바섬에서는 이 승리로 강대한 힌두교의 마자파히트왕조의 융성을 보게 되었고, 명재상 가자마다의 지도 아래 현재 동남아시아의 도서부 거의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여 인도네시아사(史)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당시는 서쪽으로부터 이슬람세력도 동진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수마트라섬 북쪽 끝의 아치에·말라카해협을 제압하여 말라카, 보르네오섬 북부 브루나이 등의 기지를 획득하면서 15세기 중엽에는 몰루카제도에 도달하는 한편 자바섬의 연안도시에도 세력을 확대시켰다. 1527년 마자파히트왕국은 이 공격에 의해 멸망하였고, 자바섬에는 새로 데마크(뒤의 마타람) 및 반탐 두 이슬람왕국이 일어났다. 이때 포르투갈·영국·네덜란드 등 서유럽 나라들이 잇달아 인도네시아지역으로 진출하여 향료무역의 독점과 식민지 획득을 노리고 서로 격렬한 싸움을 벌였는데, 결국 네덜란드의 전면적인 승리로 끝났다. 네덜란드는 서부 자바의 자카르타항에 새로이 바타비아성(城)을 건설하여 동인도회사의 중심기지로 삼았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향료 등 특산품 독점이 목적이었지만, 영토지배에 편승하여 이후 3세기 반에 이르는 식민지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19세기 초 유럽정세의 변동으로 한때 영국에게 점령당했고 빈회의에서 또다시 네덜란드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네덜란드는 강제재배법을 시행하여 원주민들로부터 착취를 강행하였다. 즉 중심지인 자바섬에서 원주민의 논에 사탕수수·커피 또는 쪽 등의 특산물을 강제로 재배하게 하여 대부분 무상으로 거두어들여 수출하였다.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이렇게 인도네시아로부터 착취한 거대한 이윤에 의해 국내 근대화를 완수하여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으나, 원주민은 빈곤과 기아에 시달렸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수마트라섬·자바섬을 중심으로 실시된 대농원과 유전개발도 역시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원주민사회는 여전히 빈곤상태로 방치되었고 교육혜택도 받지 못하였다. 물론 이러한 식민지정책의 강화에 대하여 가끔 저항운동이 일어나 1825~1830년의 자바전쟁,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수마트라섬의 아체전쟁 등 대규모 전쟁이 있었으나 모두 네덜란드에 의하여 무력진압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인도네시아인의 민족주의운동도 20세기에 들어오자 차츰 활발해졌다. 그 도화선 역할을 한 사람이 자바귀족의 딸인 카르티니였다. 그녀의 사상에 자극을 받아 조직적인 정치활동도 시작되었고, 네덜란드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에 의한 네덜란드정권의 붕괴는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1945년 8월 17일 국민당의 지도자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계속해서 식민지 재지배를 목표로 하는 네덜란드군과의 오랜 격전 끝에 1949년 말 네덜란드로부터 주권을 회복하였다. 네덜란드는 또 이리안바라트(지금의 이리안자야)에 대해서 집착을 버리지 않았으나, 이곳도 1969년 국민투표로 인도네시아령이 되었으며, 1976년에는 포르투갈령으로 남아 있던 티모르섬 북동부를 회수하였다. 서유럽세력의 침략 이래 주권을 회복하기까지에는 370여 년이 걸린 것이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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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공항/숙박 정보
공항/에릭하우스 Eric House
글,사진 호주돌기(sydney)

시드니를 출발하여 9시 30분을 떠난 뒤 내린 홍콩공항, 인천공항, 싱가폴 공항과 더불러 세계 3대 공항이라고 어느 누구는 그러던데....^^
홍콩공항은 도착장소를 보면 A 와 B로 나눠진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중 케세이 퍼시픽을 제외한 항공사들은 대부분이 A에 도착한다. 홍콩공항에 도착하면 제일 할것은,

홍콩도착지 A


1. 공항의 수속을 마치고 나온곳에서 앞을 바라보면 여러 호텔들과 정보센터가 있다. 그중 카운터 A15를 찾아보시라.
기분좋게 한글이 적혀 있다. " 아주태평양 여행사" 한국인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여행사인데, 이곳에서 지도(영문/한글)구하기. 그리고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시, 셔틀버스나 기차 요금을 할인받을수 있다.
아주태평양여행사

2. 옥터퍼스 카드 구매 . 이 정보에 대핸 워낙 글들이 많은 생략하겠다.

3. 대부분 공항에서ㅗ 도심의 이동은 버스로 많이 한다.첫인상이 남다르고 재미가 더하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가 # A21이다. 요금은 $33.00 (홍콩달러. 참고로 $1= 130~135 원)
공항버스 A21

당일 왕복을 이용하게 되면 50% 할인이 되니..꼭 타기전 기사에게 확인하도록. 간혹 스톱오버의 시간이 긴경우 아주 좋은 방법일수도.


그리고 홍콩은 수많은 행사로 인해 호텔의 가격이 너무 변동이 심하다. 최근 들어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민박집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름은 : 에릭하우스 지난 8월 하순에 오픈한 집으로 아주 새집이다. 침대나 그릇, 모든것들이 깨끗하고 정겹다.

위치: 침샤초이, 죽여준다. 너무 편하다. 3번재 방문한 홍콩여행중 가장 편하게 지낼수 있었던 곳이었다.
걸어서 모든것들이 해결된다.
늦은밤 , 이른아침 걱정없다.
특히 공항가는 버스 A21는숙소에서 걸어서 3분 걸린다. 땀이 흐르기 전에 버스탈수 있다.

공항버스 A21시간표

싱글: $350.00 둘이서 트윈방을 이용하면 $500.00 이니 실제 1인당 요금은 $250.00 3, 4명자는 방도 있으니 전혀 걱정없다.
실제 홍콩의 일반 호텔에서 4명이 자는것은 YMCA에서 도미토리 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 더 좋은 점은, 아침식사이다. 가정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랑 같다. 아주 맛있다. ^^ 그리고 한창 많이 먹을 젊은이들은 계속 더 먹을수 있다. ^^ 그리고 내장고 안에 있는 시원한 음료수..라면까지? ^^ 너무 좋다.

물론 인터넷이 있기에 급한것들도 확인할수 있지만, 이렇게 여행와서 인터넷에 너무 시간을 보내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 아무튼 좋다. 건물입구엔 24시간 수위 아저씨도 있다.
숙소에서 5분걸어서 아주 멋진 좋은 수영장도 있으니 요금은 주인에게 물어봐도 되지만,. 공설같아 보여기에 싸지 않을까요?

요금은 홈페이지를 보면 자세히 알수 있다.
http://www.eric-house.com/main/
그래서 사진을 찍어 오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보이는사진이랑 거의 같다보니.


이 숙소에서 꼭 둘러봐야 할곳이 아주 유명한 빵집인데....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품으로도 알려졌다.
KeeWah Bakery
이름은 기와 (KeeWah) 숙소를 나오면 오른쪽으로 약 15m에 떨어져 있다. 꼭 사먹어 보도록....


**현재 서울을방문중이며, (홍콩-한국-싱가폴-말레이지아-태국: )여행계획 이다보니 글을 올릴 수 있는 여건이 편하지 않다. 이해해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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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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