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에펠탑에서 서울까지는 몇 km일까?

[유럽기행 19] 파리 에펠탑(Eiffel Tower) 기행
07.12.26 21:07 ㅣ최종 업데이트 07.12.27 09:15 노시경 (prolsk)

몽파르나스 역(Gare Montparnasse)에서 스위스 인터라켄 행 기차티켓을 예매하다 보니 아침 시간이 꽤 흘렀다. 다리가 아파 호텔에서 쉬고 싶다는 아내를 호텔에 남겨 두고, 딸 신영이와 서둘러서 에펠탑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에펠탑까지는 걸어서 10분. 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파리의 아침이 상쾌했다. 신영이는 도로 옆 가게의 익살스런 휴대폰 광고판과 특이하게 생긴 하수구멍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십 여 년 전, 에펠탑 아래에 앉아서 에펠탑을 올려보고 있었다. 당시 파리에는 한파가 몰아쳐서 에펠탑 엘리베이터 운행이 중지되었고, 나는 할 수 없이 에펠탑 앞에서 사진 한 장만 찍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당시의 에펠탑에 대한 아쉬움은 이번 파리여행의 기대감으로 남았다.

▲ 에펠탑 오르는 사람들. 아침부터 서둘러서 에펠탑을 찾은 사람들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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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에펠탑 아래에 도착한 시간은 에펠탑에 오르는 엘리베이터 운영 시작 시간이 불과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하지만 이른 아침에 에펠탑을 오르려는 관광객들이 에펠탑 아래에 벌써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조금 더 빨리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이곳에 도착했을 사람들의 대기 줄 사이에 들어가서 섰다. 우리도 급하게 나왔기 때문에 호텔에서 주는 아침식사도 하지 못하고 나온 상태였다. 배가 고프다는 딸을 장사진 속에 남겨두고, 매점으로 뛰어갔다. 와플 2개와 오렌지 주스 2개를 사는데, 점원의 손동작이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빠르지는 못하다. 아빠가 오지 않자 딸은 계속 아빠가 갔을 매점 쪽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낮 시간에 에펠탑을 오르려면 수많은 관광인파 속에서 2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는데, 다행히 나와 신영이는 40분만에 엘리베이터 매표소 앞에 설 수 있었다. 매표소 앞 기둥에는 에펠탑의 설계자인 귀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을 기리는 금박의 흉상이 서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철골 노출의 구상을 실천에 옮긴 선각자에게 바쳐진 기념비였다.

에펠탑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티켓 2장을 사서 1장을 신영이에게 주었다. 나이가 어린 딸이 파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내가 파리를 바라보는 시각과 많이 다른데, 이 에펠탑 티켓을 보면서 그 차이가 또 드러났다. 이 아이는 에펠탑 엘리베이터 티켓이 너무 예술적으로 예쁘다는 것이다. 나는 엘리베이터 티켓을 다시 쳐다보았다.

▲ 에펠탑 티켓.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마다 모서리를 절취하면 탑 모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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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 티켓 봐! 색도 예쁘고 디자인도 너무 좋아! 아빠, 엘리베이터 2번 타잖아. 한번 탈 때마다 이 모서리를 떼어 내나봐. 그러면 삼각형으로 에펠탑 모양이 될 것 같은데?”

신영이의 생각대로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승무원이 티켓의 한쪽 모서리를 떼어냈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와서 멈춰 섰고, 에펠탑 밑에서 이 엘리베이터만을 한참 기다린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작은 안도의 탄성이 나왔다. 내부가 웬만한 미니버스보다도 넓은 엘리베이터 안은 순식간에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 에펠탑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노출된 철골의 위용을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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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에펠탑 북쪽의 엘리베이터는 에펠탑 철탑의 경사면을 따라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갈수록 파리의 중세 건축물들이 시야의 아래쪽으로 들어섰고, 파리의 광활한 지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야 많이 타 봤기 때문에 신기할 게 없지만, 철탑 속의 개방형 엘리베이터에서 보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의 위용이 대단했다. 지상에서 보던 에펠탑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서 이 철탑에 오르는 모양이다.

에펠탑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웅장한 것이었다. 어떻게 1889년에 이 수많은 1만 2천개의 철 덩어리를 짜 맞춰서 에펠탑을 쌓아올렸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에펠탑을 오르는 수많은 여행기에서 에펠탑의 웅장함을 찬탄하는 것이 조금은 과장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와서 직접 보는 에펠탑은 거대함과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엘리베이터 2층 전망대에서 내리자, 2층 전망대에서 3층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운행되고 있었다. 2층 전망대는 나중에 둘러보기로 하고 3층 전망대행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로 바로 걸어갔다. 우리의 줄 뒤로는 계속 한국말이 들리고 있었다. 줄에 서 있으면서도 딸은 계속 신이 나서 에펠탑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이번 여행에서의 느낀 점을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식을 낳으면, 여행을 보내라고 했다.

에펠탑 3층에서 내려다 본 전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우리나라의 산하와는 달리 도시와 도시 주변으로 끝없는 평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에펠탑 서쪽 발 아래에는 사이요 궁(Palais de Chaillot)이 있고, 사이요 궁과 푸른 녹지대 너머에 라 데팡스(La Defense)가 눈에 들어왔다. 세느강 주변으로는 뛸르리(Tuileries) 정원과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이 태양 아래 있었다.

▲ 라데팡스 원경. 에펠탑 서쪽으로 파리 신도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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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신영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3층 전망대 올라가기 전 2층 전망대에서 기념품 가게를 보았던 것이다. 신영이는 2층 전망대로 내려오자마자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신영이가 골라서 집어든 기념품은 목각 달력이었다. 이 나무 기념품은 매일 직접 날짜 주사위를 수동으로 변경하는 목각 달력인데, 에펠탑과 샤크레 쾨르 사원(La Basilique du Sacre Coeur), 노틀담 사원(Cathedrale Notre Dame)을 배경으로 한 기념품이었다. 신영이가 졸라서 할 수 없이 산 이 수동 목각달력이 이제는 유럽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념품이 되었다.

나는 기념품 가게를 나와 2층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줄을 한참 서서 에펠탑에 올랐던 나의 직장 동료는 고생해 가면서 에펠탑에 꼭 오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에펠탑에 직접 오른 건 남다른 경험이었다. 노출된 철골 구조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파리가 왜 아름다운 계획도시인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세느강변 세느강변으로 중세의 건축물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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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영이와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면서 파리의 파노라마를 찍었다. 그러다가 나와 신영이의 눈에 강렬하게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전망대 상단에 에펠탑에서 세계 주요도시까지의 거리가 각 나라의 국기와 함께 표시되어 있었고, 거기에 대한민국 서울이 있었다. 서울까지의 거리는 8991km, 평양까지의 거리는 8794km. 나는 지구의 반지름보다 훨씬 먼 이 거리를 이동해서 지금 에펠탑 위에 서 있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기차를 타고 8991km를 여행한다면? 물론 기차 안에서는 긴 시간의 지루함에 정신이 지칠 것이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신체는 괴로움을 호소할 것이다. 하지만 열차에서 지친 몸을 내려 바라본 파리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와 닿지 않을까?

나는 에펠탑 위에서, 서울에서 파리까지 8991km를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집에서 서울역까지 잠깐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파리행 기차를 탄다. 내가 탄 기차는 서울역을 출발하여 평양을 거쳐 모스크바, 베를린을 지나,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에 도착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상상이 내가 죽기 전까지는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열차가 개성공단까지 가고 있지 않은가?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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