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실크로드 下 - 투르판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자취가 묻어 있는곳

■ 도시의 폐허와 이슬람 사원이 공존하는 투르판

-역사 유적지의 산 보고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투르판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우루무치에서 차를 달리다보면 무미건조한 황무지에서 어느 순간 간간히 잿빛 풍경 속에 짙푸른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신장의 또 다른 오아시스 도시인 투르판이다. 투르판 인구의 93%는 위구르족이 차지하며 일부 지역은 해발보다 154m나 낮다. 투르판은 중국에서도 가장 더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던 날의 기온은 46도, 이 무더위에서 먹었던 한 통의 차가운 수박 맛은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투르판에서는 카레즈라는 지하수로를 볼 수 있다. 카레즈는 천산 기슭에 대략 30m 간격으로 판 수직우물을 옆으로 연결한 지하수로다. 천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와 투르판의 생명수를 이루고 있다.

자오허(교하)고성은 투르판에서 서쪽으로 10km, 두개의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중국의 지배가 미친 시기가 짧아 중국문화보다는 인도나 이란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 한대에서부터 후한에 걸쳐 투르판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번성했지만 499년 가오창(고창)국이 흥하고부터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한 무제 때 국경을 수비하기 위해 이곳에 수비대 마을을 세웠지만 징기스칸에 의해 폐허가 됐다. 이곳의 유적이 가오창 고성보다 더욱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남북 총길이는 1650km, 동서 방향으로 가장 넓은 곳은 300m 정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돼 있다.

가오창 고성은 한나라가 흉노를 토벌해 투르판을 점령한 뒤 쌓은 성으로 성 안에 거대한 인도식 불교사원과 불탑, 왕궁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가오창성은 둘레가 5km, 흙으로 지어진 성벽의 두께가 12m 정도로 거대했지만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다. 630년 경 경전을 구하기 위해 천축으로 가던 현장이 가오창국 왕의 간청으로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설법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현장은 다시 가오창국으로 돌아 왔지만 그 때는 이미 가오창국이 당에 의해 멸망된 후였다.

아스타나고분군은 가오창 고성 앞쪽 4km 지점에 있는 고창국의 지하고분군이다. 이곳에는 약 600기의 고분이 있는데 주로 귀족들의 분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과 새가 그려진 벽화 등이 남아 있다.

소공탑은 아프가니스탄 스타일의 이슬람 사원이다. 높이는 44m, 18세기 말 청에 복속됐던 투르판의 군왕이자 이슬람교도였던 액민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수래만이 세웠다. 탑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 소공탑 또는 액민탑이라 불린다.

■ 작열하듯 타오르는 산, 훠연산

훠연산(화염산)은 투르판 동쪽에 위치해 있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훠연산에 도착했지만 일행들은 쉽사리 버스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다. 버스의 창문 밖으로 붉은 훠연산이 바로 눈 앞에서 작열하는 듯 타오르고 있었다. 47도의 기온, 마지못해 버스에서 내려서도 몇몇 일행은 버스가 만드는 그늘 밑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훠연산을 위구르어로 ‘기지르타그’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가 ‘붉은산’이란 의미라니 이름만으로 훠연산의 열기가 더해지는 것 같다. 훠연산의 전체 길이는 100km, 폭은 9km, 평균 높이는 500m로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철선공주와 그녀의 남편인 우마왕과 싸우는 대목에서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훠연산의 불을 끄는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산 표면의 패인 흔적이 만들어 내는 작열하는 듯한 착시효과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베제클리프 천불동은 위구르국 왕가의 석굴사원으로 6~14 세기에 걸쳐 조성된 불교미술의 보고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이슬람교도들의 침공과 외국 탐험대의 약탈로 석굴 안의 불상 대부분이 모습을 감췄다.

투르판 글·사진=박준 객원기자tibetian@freechal.com
취재협조=웰빙차이나항공 02-771-8600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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