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르네상스 문화의 성지

21세기에도 중세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도시, 복원을 반복하는 도시. 피렌체는 '현재'의 거리와 '르네상스'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
(2005-10-17)
글 사진 = Travie Photographer 오재철 / nixboy99@hanmail.net


ⓒ 트래비


21세기에도 중세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도시, 복원을 반복하는 도시, 과거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도시라는 타이틀들이 피렌체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작은 도시지만 거리와 고즈넉한 골목 하나하나, 길가의 창문, 작은 들꽃, 예쁜 집과 성당, 사람들까지 도시 전체가 과거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저마다 역사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듯해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옛 유적과 문화를 소중히 보존하고 있다지만, 피렌체처럼 도시 자체가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여행자들은 ‘현재’의 피렌체 거리를 거닐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도시가 부흥했던 ‘르네상스’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피렌체는 오랫동안 새 건물을 짓기보다는 도시 전체를 복원하는 작업을 오랜 시간 진행해 왔다. 새 생명을 불어넣어 정성껏 복원된 도시는 다시금 생기를 받아들여 꽃 피어나는 느낌이다.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거리 곳곳에서 낡은 느낌보다는 생동감과 낭만이 풍겨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르네상스문화의 파수꾼, 박물관

ⓒ 트래비

피렌체인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까닭은 중세의 도시를 후손들에게 보전해 주는 시간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들을 배출한 도시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 근거 있는 자부심의 배경에는 피렌체가 르네상스문화를 꽃 피운 중심지였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참고로 피렌체의 영어이름인 Florence는 꽃이란 단어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피렌체에는 적어도 르네상스 문화의 작품 보유량에 있어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우피치 박물관과 갈레리아 델 아카데미가 있다. 갈레리아 델 아카데미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행렬을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


미술책에서만 봤던 다비드를 마주 대하는 순간 시간은 다시 한번 멈춘다. 너무나 매끈하게 조각되어 있는 다비드의 몸, 팔에 두드러지게 묘사돼 있는 힘줄, 골리앗과의 결전을 목전에 둔 비장한 눈빛, 왼쪽 어깨에서 오른손으로 이어지는 돌팔매의 모습들이 어우러져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증명한다. 중세의 천재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의 손길이 닿은 고대의 인물 다비드와 현대의 방문객들이 시간의 벽을 넘어 한 공간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갈레리아 델 아카데미가 여행객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베키오다리 오른편에 위치한 우피치 박물관에 들어서면 피렌체 출신의 천재 예술가들의 석상들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건물의 벽에 조각되어 있는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 작은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천재들이 탄생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피렌체 출신의 천재들 덕택에 우피치 박물관은 세계의 그 어떤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는다.


주요 미술 콜렉션은 건물의 맨 위층에 있다. 르네상스양식의 미술작품이 보관되어 있는 전시실 쪽 넓은 복도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조각들로 장식돼 있다. 드디어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눈앞에 그 실체를 드러는 순간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다. 약간 바랜듯한 색상이 대작의 경건함을 한층 더해 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작품에 가해진 섬세한 터치에서 예술가의 정성과 작품 제작 시대의 예술풍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느낀 감동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으로 이어진다. 모델들의 역동적인 자세로 당시의 관습을 깬 이 작품은 강렬할 정도로 선명한 색채를 자랑한다. 옷감의 구겨진 면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한 부분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우피치박물관은 고금(古今)을 뛰어넘는 걸작들로 관람객들을 끝까지 흔들어 놓는다. 박물관을 나와서 베키오 다리 밑을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강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들뜬 기분을 정리할 수 있다. 걸작과 천재 예술가들을 늘 생활 안에서 가깝게 접할 수 있는 피렌체 사람들이 부러울 뿐이다.

피렌체, 그 정상에 서다

“와 버렸어.” 400개의 계단을 올라온 그녀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아오이는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라고 말하자 그녀는 “응” 이라고 조그맣게 끄덕였다.
석양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이런 때조차도 피렌체라고 하는 도시는, 변함없이 조용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이토록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도, 두오모 정상에는 세계에서 가장 평온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츠지 히토나리 <냉정과 열정 사이-blu> 중에서

ⓒ 트래비

드디어 두오모에 오른다. 성당 왼편의 입구에 나 있는 계단에 첫발을 올려놓으면서 가슴은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준세이와 아오이가 감동적인 재회를 한 두오모는 연인들에게는 성지와도 같다. 영원한 사랑을 이어준다는 두오모로 가는 계단에는 순례자처럼 경건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연인들이 줄을 지어 있다. 겨우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계단을 오르다 보니 벌써부터 숨이 찬다. 계단의 중간 중간마다 나 있는 창으로 피렌체의 모습을 보며 목을 축인 후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나선형의 돌계단. 20여 분이 지나자 강한 햇살에 눈이 부시다. 시선 가득 들어오는 피렌체 시내의 전경은 순간 말을 잃게 만든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기억은 불어오는 바람에 씻은 듯이 날아가 버리고 난간에 기대어 쿠폴라의 빨간 지붕을 내려다본다. 조토가 설계했다는 종탑이 왼쪽으로 우뚝 솟아 있다. 두 눈에 다 담기 버거울 정도로 아름다운 피렌체 시내, 벽면을 가득 메운 사랑의 언약, 아찔하게 내리쬐는 여름의 햇살이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아스라이 떠오르게 한다. 시간을 잊게 만드는 이곳에서 풍경에, 분위기에 취해 있다 보니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마치 지금까지 속해 있던 현실세계와는 저만치 떨어진 것만 같이.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높은 곳에 올라와 보니 왜 이곳이 연인들의 성지인지를 여실히 알 것 같다.


피렌체의 붉은 노을을 보며…

ⓒ 트래비

늦은 오후, 두오모의 감동을 뒤로하고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작은 언덕 위에 있어 피렌체 시내를 내려보기에 더없이 좋은 미켈란젤로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그림을 내건 상인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자들,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 사이사이에 상징처럼 박혀 있는 연인들이 피렌체 시내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다. 광장의 중앙에 있는 ‘다비드’상도 그들과 함께 나란히 시선 맞춰 피렌체 시내 쪽을 향하고 있다. 비록 진품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은 없을지언정 광장 중앙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비드’상은 한결 우러러보인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광장 끝에 위치한 테라스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피렌체 시내의 전경을 바라본다. 피렌체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두오모와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 강이 시야에 가득 차게 들어온다.


붉은 지붕 때문일까? 피렌체의 전경은 온통 붉은 색의 물결이다. 곧 그 위로 석양이 내려앉는다. 붉은 노을이 더해 피렌체 시내는 이젠 타들어갈 듯 진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노을 지는 피렌체는 혼자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광경이라 누구라도 붙잡고 감동을 함께하고 싶을 정도다.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이미 불을 밝힌 가로등과 건물들의 불빛이 피렌체를 조용히 밝히기 시작한다. 도시가 가져다주는 휘황찬란함은 조용한 도시 피렌체에서만은 예외다. 차분하면서도 은은한 생동감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피렌체는 늘 한결같다.

★ 피렌체의 명소 Big 5

*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

이탈리아 도시 곳곳에서는 ´두오모´를 볼 수 있다. 두오모(Duomo)는 영어의 돔(Dome)과 같은 뜻으로 라틴어 ´도무스(Domus)´에서 유래된 말로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성당을 가리킨다. 밀라노, 피사 그리고 피렌체에도 두오모가 있는데 각 두오모만의 이름이 있다. 그중 피렌체의 두오모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즉 꽃의 산타마리아 대성당이라고 불린다. 도심의 하늘로 높이 솟은 두오모와 주황색 타일로 덮인 돔은 피렌체에서는 압도적인 크기로 도심의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띈다. 피렌체 공화국과 길드가 함께 지은 것으로 1292년에 착공, 1446년에 이르러 완공됐다. 106m의 높이인 두오모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7년에 완성됐는데 3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 성당 왼쪽 입구에서 입장료 6유로를 지불하고 463계단을 올라가면 두오모의 옥상에서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 르네상스 제일의 ‘우피치 박물관’

16세기에 코시모 1세 공작의 사무실 건물로 지어진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관이다. 르네상스의 회화 컬렉션으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제일이다. 이 미술관은 디귿(ㄷ)자 모형으로 된 3층 건물로 1584년에 건립되었으나, 미술품 수집은 15세기 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3층에 회화, 2층에 소묘와 판화, 1층에 고문서류를 수장하고 있다. 회화 부문은 14∼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17∼18세기의 바로크와 로코코의 화가, 독일과 플랑드르의 북방 르네상스 화가들의 중요한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다. 특히나 ‘봄’, ‘비너스의 탄생’등 보티첼리의 작품 중 상당수를 소장하고 있다. 미술품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에게는 두오모와 더불어 피렌체 관광의 핵심지라고 할 수 있다.

* 유럽 최초의 학교 ‘갈레리아 델 아카데미아’

1563년에 드로잉, 회화, 조각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유럽 최초의 학교다. 이곳에 전시된 미술품 중에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다. 거인 골리앗과의 결전을 앞둔 비장한 모습을 5.2m의 거대한 누드로 표현했다. 힘줄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에 대한 묘사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이 ‘다비드’상은 본래 피아차 델라 시뇨리아에 있었으나, 안전상의 문제로 1873년 이곳 아카데미아로 옮겨 왔다. 미켈란젤로가 29세에 완성한 다비드상은 그가 일생 동안 제작한 조각품 가운데 최고로 손꼽힌다. 아카데미아는 13~16세기의 토스카나파 회화의 작품과 15세기, 16세기의 피렌체 화가들, 그 가운데 필리피노 리피, 프라바르톨로메오, 브론치노, 리돌포 델 기를란다요의 중요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 피렌체의 역사가 흐르는 ‘베키오 다리’

1345년에 조토의 제자 타데오 가디가 설계, 건설된 것으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기록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추격을 받던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들은 모두 파괴했으나 유독 베키오 다리는 남겨 두었기에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다리는 본래 대장장이, 푸줏간들의 차지였으나, 소음과 악취로 시민들의 비난을 받다가 1593년에 그들을 추방한 후, 보석 세공인들과 금세공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다리 양 옆에 지어진 건물의 위로 나 있는 통로, 코리도이오 바사리아노는 1565년 메디치 가문의 생활 공간을 일반인들과 분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한 것이다. 즉 당시 귀족들은 냄새나고 지저분한 다리 아래를 통과하지 않고 이곳을 통해 다리를 건넜다. 다리 가운데에는 유명한 금은세공사이자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이 서 있다.

* 노을 지는 미켈란젤로 광장

아르노 강 남쪽 기슭, 동남쪽의 작은 언덕에 위치한 미켈란젤로 광장은 피렌체 시내의 전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특히나 황혼 무렵의 석양이 드리운 피렌체 시내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1860년 주세페 포지가 설계한 전망대로 곳곳에 미켈란젤로 동상의 복제품이 놓여 있고 수많은 연인들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달콤하고 따사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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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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