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돌아보기] (4) 와이카레모아나 트랙

보석 같은 호수 꿰는 아름다운 코스
오네포토~파네키리 산장~마라우이티 산장~왕가누이 산장 46km 꼬박 사흘 답사

뉴질랜드 북섬의 중동부 내륙에는 와이카레모아나(Waikare-moana)라는 이름의 신비한 호수가 있다. 이 호수를 꿰는 와이카레모아나 트랙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9개 트랙(The Great Walks) 중 하나다. 와이카레모아나는 마오리족 말로 ‘잔물결이 치는 바다’라는 뜻이다.

이 지역을 호크스베이(Hawkes Bay)라고 부르는데, 지진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근방 도시인 네이피어와 와이로아 중간 지역은 1930년대까지는 바닷물에 잠겨 있던 곳인데, 지진에 의한 지반 융기로 인해 수백만 평이 넘는 지역이 하루아침에 솟아올라 육지로 변했다. 이 융기된 땅에는 현재 포도 과수원과 가축 농장이 대부분 들어섰는데, 지금도 땅에는 조개와 게 껍질이 흔하게 발견된다.

우리가 갈 와이카레모아나 호수 역시 지진으로 인해 생성된 호수다. 2,200년 전 어느 날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가파른 산에서 쏟아져 내린 어마어마한 바위와 흙덩이가 깊은 계곡을 흐르던 강물(와이카레타헤케 강)을 막아 지금의 호수를 이룬 것이다. 인공으로 만들려면 몇 년에 걸쳐 초대형 장비를 동원해야 할 터이지만 단 몇 초만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힘이다.

호수는 형성 과정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을 이룬다. 화산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화구호는 단순한 동그란 모양을 기본으로 하고, 빙하호는 거대한 빙하의 힘이 산의 계곡을 긁어 내려오면서 대부분 긴 막대 모양을 이룬다. 계곡을 흐르던 강이 막혀서 생성된 호수는 인공호수처럼 복잡한 나무가지 모양이며 수량에 비해 아주 긴 외곽선을 그려낸다.

와이카레모아나 호수는 이런 출신 성분으로 인해 호수면의 높이가 매우 높고 물이 깨끗해서, 경관지 이외에도 고도차를 이용한 발전과 식수원 등으로도 매우 값어치가 높다. 아주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호수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호수가 보이지 않는데, 산모퉁이를 도는 순간 엄청난 규모의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와이카레모아나는 북섬 내륙 깊은 곳에 고립돼 있어 신비한 느낌이 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지역 대부분의 주민이 마오리족이다(90% 이상).

도로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비행기, 셔틀버스, 시외버스, 밴을 차례로 갈아탄 후에야 트랙 기점인 오네포토에 도착했다. 오네포토에서는 미리 예약해 놓은 빅부시(Big Bush)라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작은 호수 바로 앞의 깨끗한 욕실과 부엌이 달려 있는 방 2칸 짜리 한 채를 배정받았는데, 사람이 많지 않은 겨울철이라 하루 숙박비가 20NZ달러(약 13,000원)이다. 내일 도착할 산장에서 지낼 수 있는 2일 숙박용 티켓을 사기 위해 28NZ달러(약 20,000원)를 빅부시에 지불하니 뉴질랜드 자연보호국에서 팩스로 티켓을 보내준다.

트레킹 총 일정은 2박3일이고, 전체 구간은 46km다. 2박3일로 산행하려면 둘째 날 걷는 시간이 많아 중상 정도의 체력 조건을 필요로 한다.

제1일 오네포토~파네키리 산장(5시간·8.8km)

빅부시 홀리데이파크 직원이 트랙 입구인 오네포토까지 낡은 밴(봉고차)으로 데려다 준다. 오네포토에서 보이는 와이카레모아나 호수의 물은 아름답다. 오늘의 숙소는 파네키리 산장으로 산 정상(1,180m)에 위치한 산장이다. 따라서 오늘은 내리막이 없는 5시간의 오르막이다.

산을 오르다 보니, 길옆에 키위 새똥이 보인다. 뉴질랜드의 상징인 키위의 똥은 다른 새와는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우선 색이 아주 희고 다른 새에 비해 양이 많다. 찍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아주 톡 쏘는 암모니아 냄새와 함께 휘발성 냄새가 나는 게 틀림없이 키위의 배설물이다.

이외에도 키위새는 여러 가지 포유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류는 난소가 하나인데 키위는 포유류처럼 2개이고, 뼈속이 꽉 차 있고, 체온이 38℃로 일반 조류의 40℃ 보다 낮다. 또한 표면은 깃이 없이 털에 가까운 형태의 것으로 덮여 있고, 콧구멍이 부리의 뿌리쪽이 아닌 끝에 달려 있다.

다른 조류는 체형이 역삼각형인데 키위는 삼각형이고, 몸집 대비 가장 큰 알을 낳는 새이기도 하다. 알의 무게가 몸무게의 20%에 달해 사람에 비유하면 12kg의 아기를 낳는 것과 같다. 조심성이 워낙 많아 자연 상태에서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한때는 뉴질랜드 전역을 통해서 가장 흔한 새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개체수가 너무 줄어 보호 조류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뉴질랜드에서 유일하게 키위 수가 늘어나는 곳이다.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데, 산 좌측은 완전히 구름으로 덮여 있고, 오른쪽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다행히 호수를 오른쪽에 두고 올라가기 때문에 깨끗하게 보인다. 올라가는 중간에 벼랑 끝 천연 바위에 난간을 설치해 전망대를 만들어 두었다. 올라갈수록 호수 전모가 점점 한눈에 들어온다. 밑에서 본 호수 뒤로 훨씬 커다란 호수가 연결되어 있다. 그 규모가 대단하다.

이 구간은 숲이 짙어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실버아이, 블랙로빈, 팬테일 같은 새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더 가까이 온다. 너도밤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었고, 그 줄기와 땅에도 이끼가 잔뜩 덮여 있어 숲 전체가 온통 초록색이다.

한겨울이지만 날씨가 따뜻해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정상부는 고도가 그리 높은 곳이 아닌데도 호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산장에 도착할 즈음 나무계단이 보인다. 정상에 오르자 거대한 호수와 첩첩한 산들이 장관을 이룬다. 마침내 이 깊은 산 최정상에 아름다운 산장이 나온다. 가스로 난방이 되는 36인 침대를 갖춘 산장은 전방에 와이카레모아나 호수를 두고 정북향으로 나 있어, 일출과 일몰을 모두 다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산장이다(뉴질랜드는 적도 남쪽인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정북향이 한국의 정남향 위치와 같음).

산장 내부에는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와 더욱 평화롭다. 물을 끓여 따끈한 홍차를 마시고 있으니, 한 쌍의 커플이 올라온다. 영국에서 온 제임스와 페리 커플은 휴가 여정이 3주의 짧은(?) 기간이어서, 뉴질랜드 북섬만 여행한다고 한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 호수 좌측으로 해가 지며, 산장 뒤쪽에서 넘어오는 구름이 장관을 연출한다. 나와 제임스 커플은 식사하다 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커플은 “원더풀!”을 외치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둘이 연신 키스를 한다. 집에 두고온 가족이 생각난다.

제2일 파네키리 산장~마라우이티 산장(9시간30분)

새벽에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보니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하늘에 있어야 할 구름이 전부 내려와 호수 위에 덮여 있는 게 아닌가. 펼쳐진 절경 때문인지, 쌀쌀한 아침 공기 때문인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침 햇빛의 붉은 색과 하늘의 파란 색이 구름에 비쳐서, 호수를 덮은 구름에 신비한 색이 감돈다.

오늘은 9시간30분의 일정이다. 기본 8시간에 코로코로 폭포(할아버지 폭포 정도로 해석하면 됨)로 가는 사이드 트랙이 1시간30분 정도 추가된다. 아침 일찍 산행해 보면, 옛날 도사들이 자기 키보다 훨씬 큰 지팡이를 왜 가지고 다녔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거미줄 때문일 것이다. 밤새동안 쳐놓은 끈적한 거미줄이 얼굴에 잔뜩 걸려 간지럽다.

완만한 내리막길에 새소리가 요란하다. 2시간 정도 내려가니 드디어 호숫가에 도착했다. 호수빛도 합류하는 지류의 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나무뿌리의 탄닌이 섞인 홍차색, 흰 백토가 섞인 청백색, 진흙이 섞인 노란색 등 호수는 구역마다 다른 색을 가진다. 긴 구름다리를 지나니 호숫가로 갈 수 있도록 길이 나 있다. 호수 주변은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파랗고 맑은 물색은 오히려 두려운 느낌이 난다.

약 3시간 후 코로코로 폭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막다른 길이어서 돌아나와야 하므로 배낭을 길옆에 세워두고 카메라만 들고 트랙으로 향했다. 트랙이 더 좁아진다. 긴 줄을 잡고 건너야 하는 시냇물과 징검다리 몇 곳을 건너는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지나니 폭포가 나온다. 마치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정방형의 폭포가 신기하다. 폭포가 내려오는 계곡의 공기가 시원하다. 그다지 여유가 없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돌아나왔다.

코로코로 캠프사이트를 지나면 또다시 구름다리가 나온다. 아래를 보니 어른 종아리 만한 송어떼가 폭 2~3m의 좁은 지류를 경쟁하듯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마침 알을 낳는 시즌이라 위험을 무릅쓰고 상류로 알을 낳으려 가는 것이다. 이 시기에 작은 시내로 올라오는 송어들은 뉴질랜드 법에 의해 보호받는 ‘그림의 떡’이다.

이 송어가 탐난다면, 다음의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민물낚시 라이센스를 사야한다. 그리고 미끼를 써서는 안된다. 즉 루어나 플라이 낚시처럼 가짜 미끼를 써야 한다. 또한 낚시 이외의 도구(작살, 그물, 돌, 총 등)를 사용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지류나 지류의 입구, 혹은 상류에서 낚시를 해서는 안된다. 30cm 이하의 송어는 다시 방류해야 한다.

송어는 일반 유통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직접 잡는 방법 외에는 맛볼 수 있는 길이 없다. 연어보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해서 많은 양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신선한 특유의 향이 난다.

어두컴컴한 저녁 5시30분에야 마라우이티 산장에 도착했다. 산정의 파네키리 산장보다는 훨씬 작고 오래된 것인데, 호숫가 만 안의 작은 계곡에 위치해 있어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다. 타이산 붉은 카레로 저녁을 먹고는 설거지 대신 휴지로 깨끗이 닦아 놓았다. 오리지널 타이 카레는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매워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제임스 커플이 도착했다.

제3일 마라우이티 산장~테푸나 산장~왕가누이 산장~트랙 끝지점

새벽 6시30분, 어제 저녁 7시30분에 침낭에 들어간 지 꼬박 11시간이 지난 뒤다. 숙면을 취하고난 후의 상쾌함으로 몸 마디마디가 부드럽다. 숙면은 오랜 시간의 산행 후에 얻는 큰 보상 중 하나다. 한껏 기지개를 켠 후 산장 밖으로 나가보니 밤새 물안개가 호숫가에 내려앉아 자욱한데, 그 안개 속에서 각종 새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온다.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을 들르고는 살라미 햄과 콩을 잔뜩 넣고 라면을 끓인다. 매콤한 라면 냄새 때문인지 제임스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뭘 만드는지 물어본다.

오늘은 트레킹 마지막 날로 7시간의 산행이다. 오후 2시에 트랙 끝으로 빅부시 직원이 데리러 오기로 했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7시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오늘은 주로 호숫가를 지나는데, 자그마한 반도를 넘어드는 두 번의 긴 오르막이 있다. 출발지점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안개로 덮인 호수가 한국에서 본 것처럼 낯설지 않다. 오전 10시가 넘자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햇빛과 안개의 조화가 더욱 신비스럽다.

2시간 정도 걸으니 작은 시냇물 입구에 모텔 수준의 아름다운 테푸나 산장이 나온다. 이 산장은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깨끗한 건물 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1인용 개인침대들로 꾸며져 있으며, 다른 건물에는 취사시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을 들여놓았다. 건물마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주변의 아름다운 숲과 호수를 항상 감상할 수 있다. 3박4일 여정이라면 이곳에서 하루를 묵어가는 것이 좋다.

이곳을 지나니, 호수의 작은 반도를 가로지르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반도의 특징을 이용해서 반도 입구를 그물로 막아 키위를 보호 관찰하는 지역으로 지정해 놓았다. 저녁 시간에 이곳에 오면 야생의 키위소리를 듣고 실제로 볼 수 있는 확률도 매우 높다.

트랙은 계속해서 오른쪽에 호수를 두고 걷는데, 흑조, 오리, 송어가 호수면 위아래로 보여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풍경을 이룬다. 마지막 산장인 왕가누이 산장이 나오는데, 오래된 건물이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어 깨끗하다. 이곳에서 약 45분 가면 배를 타고 트랙을 마감하는 곳이 나온다. 트랙을 완주하고 싶은 마음에 45분 더 걸었다(실은 이곳에서 1시간30분 더 가야 46km 완주다). 이곳에서부터 평지가 나온다. 좌우는 늪지이고, 그 가운데에 진흙탕 트랙이 있는데, 마지막이라 그런지 45분이 길게 느껴진다.

드디어 저 멀리 보이는 구름다리 위에 빅부시 숙소에서 마중나온 뉴질랜드 청년이 보인다. 처음 나를 트랙 입구에 실어다준 고물 밴이 고장나서 주인 아주머니의 멋진 벤츠 승용차를 가지고 왔단다. 오는 길에 상점에 들러 사과, 고기 파이, 콜라를 들며 한국에서 먹던 선지해장국을 그리워해본다.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 묘사하거나 사각의 틀에 갇힌 사진으로 보여주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만, 특히 이 와이카레모아나 트랙에서의 아름다운 새소리와 폐 깊숙이 밀려드는 차가운 산공기를 조금도 담아드리지 못해 아쉽기 이를 데 없다.

글·사진 김태훈 아이넷뉴질랜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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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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