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낭만, 역사, 신앙의 3중주 - 이탈리아 로마

세계 4위 관광수입국이라는 꽃은 맨땅 위에서 피어난 게 아니다. 녹록하지만 녹슬지 않은 옛 제국의 영광이, 문화와 예술이 낳은 찐득거리는 낭만성이, 신이 내린 영속의 축복이 그 거름이 됐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개발지표 2001'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지난 99년 283억5,700만달러의 관광수입을 올려 미국, 스페인, 프랑스에 이은 세계 4위 관광대국의 자리에 올랐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더니 아마 그 길을 따라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이탈리아로 모여드는가 보다. 그래도 너무 안심하지는 말지어다. 요긴한 대목에 철도 노동자들은 느닷없이 일손을 놓아버리곤 하니까 말이다. 근로자 10인 이상이면 노조결성이 자유롭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저 수굿하게 '로마법'을 따를 수밖에.

로마법상의 로마 관광코스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돼 있다. 분류 기준은 낭만, 역사, 신앙. 낭만을 주제로 한 코스는 '스페인 광장-트레비 분수-판테온-나보나 광장'으로 이어지며 넉넉한 여유와 한갓진 낭만을 선사한다. '콜로세오-포로로마노-베네치아 광장'으로 이어지는 역사코스에는 고대 로마 제국의 화려했던 영광의 자취가 아로 새겨있다. 바티칸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을 중심으로 이뤄진 신앙코스에서는 신이 로마에 내린 축복에 감탄하게 된다.

romance
낭만코스는 부담 없이, 하릴 없이, 어영부영 즐기면 그만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단박에 세계적인 명소로 부상한 스페인 광장과 계단, 등 뒤 분수에 동전 한 개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 트레비 분수, 기원전 25년에 신전으로 건축돼 지금까지 고대 로마 유적 중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판테온 등을 차례로 거치면서 로마의 여유와 낭만을 만끽하면 된다. 저녁엔 나보나 광장의 노천카페에 들러 은은한 황색 가로등 불빛과 좔좔대는 분수 소리, 그리고 차가운 생맥주의 3중창 낭만연주곡을 즐겨볼 일이다.

history
콜로세오에서 포로로마노를 거쳐 베네치아 광장까지 이어지는 역사코스에는 인간을 스르르 빨아들이고 마는 옛 로마 제국의 그 처처한 영광의 흔적에 주목해야 한다. 2,750여년 동안 로마 제국이 밟은 흥망성쇠의 흐름이 여울여울 불타오르며 시간 개념을 혼란시킨다. 예상보다 규모가 훨씬 큰 콜로세오. 하긴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중에서 가장 컸기 때문에 그 명칭도 '거대하다'는 뜻을 지닌 '콜로살레'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그 놀라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게다. 일부는 무너져 내렸고 또 일부는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수용인원 9만명 규모가 뿜어내는 당당한 위풍은 여전하다.

그 감동은 현재의 것이 아닌 1,900년도 더 된 과거의 것이다. 그 느낌은 솔직히 감동보다는 연민에 더 가깝다. 기둥만 앙상하게 남은 운동장 위로 완공을 기념해 백일동안 진행됐다는 5,000마리의 맹수를 죽이는 대혈투 광경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검투사끼리 혹은 인간과 야수가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며 선연한 핏빛을 토해낸다. 흥분한 로마 시민들의 함성 소리가 시간을 거스르는 메아리 되어 울린다. 피의 잔인함으로 시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려야 했을 만큼 로마 제국은 지키고 숨겨야할 엄청난 야심과 권력과 영화를 지녔던 것이다.

성난 군중의 함성을 뒤로 하고 콜로세오 앞에 자리 잡은 포로로마노로 발길을 돌린다. '로마 공회장'이라는 말 뜻 그대로 이 곳은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의 중심지였다. 원로원과 공회당, 신전, 상가, 감옥 등 로마를 움직이는 중추 시설이 이곳에 밀집해 있었고 로마인들의 만남과 토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비록 지금은 세월의 풍파에 닳아빠진 주춧돌이며 기둥, 허물어진 벽 등이 웅장했던 과거를 허허로이 증명하고 있을 뿐이지만 2,100여년의 장고한 세월이 풍기는 장중함과 엄숙함은 유한의 인간을 압도하고 만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잘려나간 기둥은 하늘을 향해 다시 솟아오르고 이곳저곳 나뒹구는 벽돌은 다시 벽을 쌓고 길을 만든다. 폐허 속에 옛 제국의 위용이 용솟음친다. 존재하는 것의 유한성 끝자락에 존재했던 것의 무한성은 시작되는 법. 스산하지만 절대 스러지지 않는 그 영속의 감동이 거침없이 밀려온다.

콜로세오에서 시작된 고대 로마의 거리는 좌우로 포로로마노와 옛 로마 황제들의 공회장 등을 끼고 일직선으로 달리다가 베네치아 광장에 이르러 멈춘다. 베네치아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시대도 근대로 향한다. 로마 시내의 중심 좌표 중 하나로 쓰이는 베네치아 광장은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인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안고 있어 의미도 각별하다. 지난 1870년에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1885년에 건립을 시작, 1911년에 완공됐다.

통일의 상징적 의미도 의미지만 건물 자체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으로도 명성이 높다. 기념관 앞 광장이 바로 베네치아 광장인데 이곳은 무솔리니가 파시즘 주창의 대중선동 장소로 활용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그가 대중을 선동하고 그예 2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포했던 기념관 발코니에는 이제 로마 시내를 조망하는 관광객들의 느긋한 시선만이 가득할 뿐이다. 당시의 긴박함과 집단흥분의 상태는 온 데 간 데 없다. 그저 씁쓸함만이 가슴 속에 일렁일 뿐이다.

religion
무솔리니가 남긴 것은 비단 덧없음 뿐만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국가지만 종교적으로는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바티칸 시국'은 바로 그의 '작품'이다. 1929년 무력으로 이탈리아 통일왕국을 무너뜨린 무솔리니는 평화와 자유의 상징인 교황청과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에 놓이게 된다. 무솔리니는 이 문제를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의 자치와 독립을 인정함으로써 해결한다. 이 때 교황청 쪽과 맺은 조약이 바로 '라테란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교황을 국가원수로 하고 0.44평방미터의 영토에 약 900명의 국민이 거주하는 바티칸 시국이 탄생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국가지만 교황이 거주하는 가톨릭의 총본산인 만큼 막강한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의 중심은 성 베드로 성당과 바티칸 미술관.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무덤 위에 건립된 성 베드로 성당은 4세기 초에 최초 건립되고 1503년에 재건축됐다는 역사적 측면에서나 그 웅장함에서 단연 세계 최고의 성당이라 할 수 있다.

로마 이전 시대의 유적들을 비롯해 로마시대, 중세, 르네상스, 현대 미술품까지 폭넓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바티칸 미술관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으로 너무나 유명한 곳이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바티칸 시국 관광에만 최소 하루를 투자할 정도로 이곳은 로마가 아니면서도 로마를 대표하는 로마관광의 중심지다. 신이 내린 축복의 증거다.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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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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