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로마 바티칸 박물관
神의 대리인 바티칸 시국
배낭 초보자의 ‘유럽 박물관 기행’ ④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로마’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기로 돈을 버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살면서 문화강국을 이루었던 팍스 로마나의 시대에 대한 동경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또 전 세계인들이 평화를 갈구할 때 먼저 바라보는 곳이 이곳 로마 바티칸이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박물관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떼르미니 기차역에 내리는 순간, 이미 로마라는 박물관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 로마의 중심에 있는 신의 도시 바티칸 시국으로 가려면 테르미니 역에서 64번 버스를 탄다. 제국의 후예들이 소매치기로 활동하기로 유명한 버스다. 일행 중 한명은 가방을, 다른 한명은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로마의 소매치기는 허명이 아니다.
로마에 있는 사람의 반절은 관광객이고 그 중 반절은 바티칸박물관에 온 듯 아침 일찍 서둘러 가도 줄을 서야 한다. 안내 데스크에는 한국어로 된 ‘바티칸’이라는 제목의 박물관 안내 책자를 판다. 엄청난 소장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동선을 따라 주요한 작품을 설명해 놓은 이 안내 책자가 유용하다. 다만 입구보다 ‘지도의 방’ 앞에서 더 싸게 판다. 조각상들에 대한 설명을 포기한다면 2유로정도 절약할 수 있지만 설명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다.
넘치는 수장품, 복사품도 작품
바티칸 박물관 관람은 이집트관에서 시작된다.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바티칸 한복판에서 이집트 석상을 만나는 것은 뜻밖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를 지배하기 이전, 로마가 이집트까지 지배한 대제국이었으며 역대 교황들이 미술품과 유물 수집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그곳에서 람세스의 어머니와 아내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동물의 조각상을 모아놓은 동물의 방, 흉상을 모아놓은 흉상의 방, 조각의 방, 뮤즈의 방 등을 둘러보노라면 너무 많은 소장품을 놓아둘 곳이 없어 늘어놓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그 중 팔각형의 안뜰에는 낯익은 작품이 있다. ‘라오콘’ 군상이다. 1506년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발견된 이 작품은 본래 청동작품을 로마인들이 대리석으로 복사한 것인데 미켈란젤로가 가장 아꼈던 작품이라고 한다.
지도의 방을 지날 때까지는 바티칸박물관에서 종교를 느낄 수 없다. 방대한 수장품을 자랑하는 여느 박물관의 느낌이다. 그러나 지도의 화랑에 들어서면서부터 느낌은 달라진다. 천정을 가득 메운 그림들에 압도되면서 무엇을 감상해야 하는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내책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예술이 신을 불러들인 곳
벽과 천정을 채운 프레스코화를 대하면서 드디어 속의 세계를 벗어나 성스러운 종교의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을 갖게 된다. 프레스코화로 가득한 이 방들은 교황들의 거쳐였지만 라파엘의 작품이 있는 방들은 교황의 방이 아니라 ‘라파엘의 방’이라 불린다. 이 중 ‘아테네 학당’에는 라파엘이 플라톤을 레오나르도의 얼굴로 그렸고 자신의 자화상도 그려넣었다.
바티칸박물관 감상의 절정은 시스틴 소성당이다. 라파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등 한두번쯤 들어본 적 있는 화가들의 프레스코화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다. 1508년 천지창조를 그리기 시작한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미리 보고 싶어하는 교황과의 다툼으로 작업을 중단했다. 교황의 사과를 받고야 다시 그린 것을 보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교황의 권위를 이기는 시대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잠깐동안의 휴지기를 거치면서 표현의 차이를 가져왔다.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작품을 올려다본 미켈란젤로는 섬세하게 그린 작품들이 천정을 올려다보는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닿고 작품을 단순화했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아담의 창조’다.
성당의 앞마당에는 각국 언어의 가이드들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안내를 시작한다. 성당안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예배당에 대한 예의로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지창조를 완성한 20년 후 1534년 미켈란젤로는 다시 최후의 심판을 제작하게 된다. 지금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천조각을 하나씩 걸치고 있지만 본래 다 나체로 그려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작당시 교황의 의전담당관인 비아지오 다 체세나는 이 작품을 목욕탕이나 식당 같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그가 얄미웠던 미켈란젤로는 오른쪽 아래 구석에 뱀에 감겨 고통스러워하는 미노스의 얼굴에 그의 얼굴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자신의 얼굴도 순교자가 들고 있는 살가죽에 그려넣었다고 한다. 그 표정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생도 꽤나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신의 나라, 바티칸
시스틴 성당을 나와 햇살이 내리꽂히는 앞마당에 서면 신을 예술로 찬양한 자들에 대한 감동으로 몸을 떨게 된다. 승자였던 로마제국의 수집품으로부터 시작한 관람이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로 마무리 될 때는 그 곳이 신의 나라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 신의 대리인이 사는 곳 산 삐에뜨로 성당은 교황의 높은 권위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교회는 건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하고, 예술가들을 착출했으며, 로마의 유적을 뜯어 건축자재를 마련했다. 어쨌든 또다른 위대한 작품으로 탄생한 삐에뜨로 성당에서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24세의 청년 미켈란젤로가 만든 피에타다. 젊고 아름답게 표현된 마리아는 피렌체에 있는 미켈란젤로 최후의 피에타와 비교가 된다.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피에타의 마리아는 슬픔에 눈물이 짓무르고 힘겨운 삶을 살아온 흔적을 담은 듯 거칠다. 바티칸의 피에타는 슬픈 표정이지만 작가가 젊은 만큼 힘이 넘친다. 그 피에타에서 젊은 수사와 수녀는 신을 보았을까?
부활절, 교황이 주재하는 미사에 참석하려고 전세계의 사제와 수녀들이 64번 버스를 타고 도착하고 있었다.
로마 글·사진=송옥진 객원기자 oak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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