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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에서 란주까지의 거리는 300km나 된다.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다. 신기한 것은 그 먼 거리를 가면서 그 넓은 땅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산꼭대기까지 개간해 놓은 밭이 있고, 염소나 양을 키우고 있는 목동이 보인다. 마침 밀 수확 계절이라 곳곳에 널어놓은 밀짚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산비탈의 중턱쯤에는 마치 인위적으로 판 것처럼 보이는 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협곡운동에 의해 생긴 자연현상이다. 이곳의 주민들에게는 곡식 저장고나 농기구 보관창고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우박이 떨어졌다. 그 지름이 1㎝가 넘는다. 차들이 모두 멈춰 섰다. 혹시나 해서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봤다가 손바닥이 뚫리는 줄 알았다. 몇 분 사이에 주위는 온통 하얀 구슬의 세상이 되었다. 다양한 풍경과 변화하는 날씨 덕분에 6시간의 긴 이동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란주는 기다랗게 생긴 감숙성(甘肅省:깐수성)의 성도로 중국대륙의 거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육도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란주부터는 자연환경이나 사람들의 분위기가 현저히 바뀐다. 여기서부터는 사막이다. 오아시스마다 도시가 발달해 있다. 사람들도 이슬람교도인 회족이 많이 살고, 위구르인 등 소수민족이 많이 보인다. 한족들을 전략적으로 많이 이주시켜서인지 도심에서는 한족이 많이 보인다. 또한 이곳은 유가협댐의 건설로 풍부해진 수력발전, 난주에서 옥문유전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의 건설로 풍부한 석유, 교통의 요지라는 점에서 서북지역 최대의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시내에 들어서자 누런 황하가 도심의 중심을 흐르고 있다. 강가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고 도심도 깨끗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상류로 가니 아파트공사가 한창이다. 머지않아 우리의 한강처럼 아파트들의 철벽으로 쌓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병령사 석굴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란주 시내에서 2시간 정도 황하 상류를 향해 달린다. 황하를 끼고 달리기 때문에 강가에서 아침 일찍 기공체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황하의 발원지인 만큼 강변 공원에는 '황하모친상' 조각이 있다. 상류로 가니 험준한 산세 탓인지 곳곳에 교통사고가 나 있다.
가이드는 이 댐을 후진타오가 직접 설계했다고 하지만 자세히 확인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후진타오는 감숙성의 청화대학교에서 하천발전 분야를 전공했다. 문화혁명기간 동안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이곳에서 일하면서 혁명의 광풍에 휘말리지 않았던 것이다. 댐에 있는 선착장에서 병령사까지는 50㎞, 보트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이다. 댐건설로 생긴 인공호수와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을 즐기다 보면 산 위에 병령사의 한부분인 불예대(佛爺臺)가 보인다. 이곳이 고대에 대상들이 황하를 건넜던 지점이다. 선착장에 내려 선장과 한 시간을 약속하고 병령사 계곡으로 들어선다.
이에 따라 불상에 대한 공양이나 동굴의 수리가 계속 이어졌고 원나라 이후에는 라마불교가 유행해서 라마불교 양식의 석각이 조각되었다. 약 1500년간 183개의 석굴과 776구의 불상이 조성되었다. 석굴은 크게 주 석굴이 있는 하사, 계곡 상부가 되는 상사, 그리고 이 중간지역인 중사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멀리 하사(下寺) 산벽에 조각된 현암좌불(懸巖座佛)이 시야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석굴은 상하로 나뉘어져 산기슭을 따라 2km에 걸쳐 이어진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조각과 지금도 색채가 뚜렷하고 아름다운 보살, 비천 등의 벽화가 남아 있다.
병령사 석굴군의 대표격인 현암좌불은 당대에 조성되었으며 높이가 27m인데, 상반신은 천연의 석주를 이용하여 조성했고 하반신은 찰흙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바위자체가 입자가 작고 점착력이 좋은 사암으로 되어 있어 뚫거나 조각하기에 좋았다. 석불이 어찌나 큰지 강의 반대편에 서서야 한눈에 들어온다. 불상의 자태는 풍만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거대한 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된 석굴들이 서로 잘 조화되어 장관을 이룬다. 원래 대불 앞에는 다층누각이 있었지만 청대 말 화재로 소실되었다. 옛날 사냥꾼이 사냥을 하다가 이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절벽에서 오색의 빛이 발하는 것을 보고 대불을 조성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다리 밑에는 계곡 위쪽 상사로 가는 지프차가 있다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석굴의 아랫부분에 있던 와불상은 댐건설로 물이 차오르면서 보존의 어려움이 있자 따로 절을 지어 실내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예술적으로는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169번과 172번 석굴은 사다리를 타고 석벽을 올라가야 하는데 입구가 막혀 있다. 왜 막아놓았으며, 어떻게 하면 저 곳에 갈 수 있느냐고 안내원에게 물으니 주로 전문가들이 저 곳으로 올라가는데 가려면 한 사람당 300위엔을 더 내야 한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선장과 약속한 시간 때문에 서둘러 선착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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