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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과식한 화꿔 때문인지 야간에 먹은 복숭아 때문인지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이번 여행 중 벌써 세 번째로 장이 고장난 것이다. 숙소에 비치된 화장지는 2인 2회 분량이어서 아내의 안면 마사지 종이까지 동원해야 했던 처절한 밤이었다. 잠을 설친 탓에 아침 출발 시간을 맞출 수 있었으니 배탈을 고마워해야 하나? 시닝 가는 길
거얼무에서 시닝으로 향하는 도로에 요금소가 설치되어 있다. 여행 초반엔 도로마다 저걸 세우고 통행료를 받아먹는 게 여간 밉살스럽지 않았는데 이젠 오히려 반갑다. 저것이 있다는 것은 돈을 받아먹어도 좋을 만큼 매끄러운 길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므로. 2박 3일의 비포장 행군이 사람을 바꿔놨다. 요금소 앞에서 교통공안이 제대로 된 서류검사를 한다. 면허증과 차량등록증, 운행허가증 등등…. 이제까지 대개는 면허증만 보거나 어디로 가냐는 정도로 검문이 끝났었는데 이번엔 뭘 좀 아는 공안을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이 순간 운전은 내가 하고 있다. 중국 면허를 받지 못한 교수님은 도심구간 운전을 피하셨기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공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중국의 공안은 소문으로 듣던 중앙아시아 쪽 경찰들과는 너무 다른 이미지다. 안 보이는 뒷거래야 어떤지 모르겠고 길에서 만난 공안들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트집을 잡아 돈을 요구하거나 귀찮게 구는 일을 보지 못했다. 중국도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낮이 아니라면 이런 속도는 상상하기 어렵다. 도로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장난 차는 차선을 막은 채 돌로 바리케이드를 친다. 그러다 수리가 끝나면 그 돌들을 방치한 채 그냥 떠난다. 그리고 야간 운전 중에 돌을 발견하지 못한 차가 그것들을 들이박는다. 운이 좋으면 돌들을 튕겨낼 것이고 운이 나쁘다면 차가 튈 것이다. 지난 번 타클라칸의 밤길에서 우린 운이 좋은 쪽이었기에 아직 살아있다.
죽기 전 한 번은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을 운명으로 여기고 오랜 세월을 준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진행하는 것은 내 여행의 자세와 같겠으나 그들의 신심과 고통을 감내하는 정신에는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그 성찰의 행군 속도에 비해 나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민펑 지난 사막의 가시풀 오아시스와 같은 상황이다. 겉에서 보기엔 한 없이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인데 실상은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 그 이끼들 사이로 양 똥들이 가득하다. 드넓은 초원지대이긴 하지만 가축의 수효를 다 먹이기엔 태부족일성 싶다. 인근의 유목 티벳인들이 주섬주섬 모여든다. 아이들도 구경하느라 신났다. 이곳은 차가 관통하는 길이니 외지인을 제법 보았을 터인데도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왁자지껄이다. 캠코더 액정에 비친 자기 모습에 어린 아이처럼 좋아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 중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 대화는 불가능하다. 아내가 몰려든 티벳 아이들에게 볼펜을 나눠준다. 제지하지는 않았지만 못내 걱정스럽다. 저 아이들, 다시 외국인을 만나면 이제 습관처럼 볼펜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길에서 만난 한국인이 건네준 볼펜 한 자루의 의미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분명 우정의 징표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우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내려오다 대형트럭 두 대가 정면충돌한 현장을 봤다. 구조차량들이 와서 사고처리가 한창이다. 고지대에서 내려오는 구간엔 브레이크 파열이 잦고 이 구간에선 졸음운전도 많아 사고가 종종 있나보다. 길 옆에 사고 난 차량을 전시해 놓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운 바다 칭하이(靑海), 우린 서로 사랑하나봐 어느 순간부터 산자락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칭하이호(靑海湖)! 과연 바다의 면모를 닮은 고원의 호수답다. 아련히 수평선이 일렁이고 물결은 잔비늘을 반짝이는 모습이 가히 신비롭다. 칭하이성의 명칭 자체가 칭하이호에서 왔다는 것을 보면, 이곳의 티벳족들이 저 호수를 신성시 한다는 사실이 믿겨진다.
적당한 진입로를 찾지 못하고 주행하기를 한참. 이러다 결국 다가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칭하이호 둘레가 거의 600㎞에 달하고 면적도 4300㎢로 서울 면적의 5배이니 그 사이 무슨 해결책이 없겠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 달린다. 간혹 관광객을 위한 단지가 있었지만 저 곳에 내려 호수를 보고 싶은 생각을 일지 않는다. 그러다 발견한 진입로. 아마 인근 유목민들의 출입로인 것 같다. 야크와 양들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레 접근해 드디어 호수에 접근했다.
하베이의 평원을 지나고 간쑤성의 황토고원을 넘었다. 고비의 열기와 타클라마칸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이기고 급기야는 고원지대의 푸른 바다 호수에 섰다. 벅찬 가슴과 회한. 흔히 먼 길 달려 겨울바다에 섰을 사람들의 심경이 이러하리라.
이 여행 내내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진종일 같이 앞만 보고 달려야 했으니. 마주본 적도 없지만 한 순간 다른 곳을 본 적도 없다. 같은 곳을 보고 같은 느낌을 안고…. 이토록 오래 둘이서 한 곳을 응시한 시간들에 감사한다. 먼 훗날 늙고 병들어 서로를 부축할 여력도 남아있지 않을 때 조용히 아내의 손등에 내 손바닥을 얹고 읊조릴지 모를 일이다. 그때 그 길들, 모래와 구름들, 우린 아주 오랜 시간 한 곳을 같이 바라본 때가 있었노라고.
그들이 물 밖에 나온 사이 사진을 찍으려 하니 바지를 내려 자세를 가지런히 하고 다소곳한 표정을 짓는다. 참 순박해 보이는 이들이다. 장신구로 치장한 건 둘 다 마찬가지인데 한 청년의 목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곳은 과연 누구의 땅일까?
염호에 들어가 물 한 입을 먹고 몸을 적신다. 소년을 따라 역광의 호숫가를 소일하는 말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검은 말이 흰 빛의 백구 주변을 돈다. 우린 그들을, 그들은 우릴 구경한다. 등자 없는 말잔등에 몸을 제껴 올라타는 소년의 모습에 경탄하니 청년들도 올라타 본다. 그들의 자세는 더 경쾌하다. 이들은 말을 졸업하면 오토바이를 타나보다. 수박 한 통을 같이 쪼개먹고 헤어졌다. 두 청년은 오토바이를 소년은 말을 타고 초원으로 사라지는데 그 모습이 아릿하다. 세상은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 지나온 길에 대한 그리움
거울에 비친 지나온 길. 차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지나온 길에 마음을 두고 있다. 상관없다. 앞으로의 길도 어차피 '지나온 길'이 될 터이니, 지금의 애정을 그때 주지 뭐. 해 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둠 속에서 4000m 고개를 넘어야 했다. 밤 10시. 시닝에 도착해 야시장을 헤맨다. 하루 이동거리 763㎞. 어렵게 닿은 곳일수록 쉬 잠드는 것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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