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경영하라(1)
뉴질랜드 여행기(14) : 폭스턴의 네덜란드 전통 풍차
정철용(ccypoet) 기자
뉴질랜드는 1840년 영국 정부의 주도로 건국되었고 지금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공식적인 국가 원수인 입헌군주국이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 탓인지, 뉴질랜드 여행을 다니다보면 '캠브리지', '퀸스타운', '해밀턴', '웰링턴' 등 곳곳에 영국의 지명이나 위인들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지명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띤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이 작은 섬나라가 국가 이름을 빚지고 있는 나라가 영국이 아니라 네덜란드라는 사실은 몹시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질랜드(New Zealand)'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질랜드(Zeeland)는 바로 라인강이 북해로 흘러들고 있는 네덜란드 남부 해안지역의 지명인 것이다.

나라 안의 여러 지명은 영국에 빚지고 있지만 정작 나라 이름은 영국이 아니라 네덜란드에 빚지게 된 데에는 아벨 태즈먼(Abel Tasman)이라는 네덜란드 항해사의 공이 컸다. 1642년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을 출발하여 호주 동쪽에 있다고 여겨진 미지의 대륙 탐사에 나선 그는 출항 5개월 만에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뉴질랜드를 발견한 것이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에게 부하 선원들 여러 명을 잃는 곤욕을 치르면서도 뉴질랜드 남섬의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 북섬까지 탐사를 계속한 아벨 태즈먼은 이 땅에 '네덜란드 국회의 땅(Land of States-General)'이라는 의미로 'Staten Landt'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몇 년 후, 이 이름은 네덜란드 남부 해안지방의 이름을 딴 '새로운 질랜드(Novo Zeelandia, 영어식 표현으로는 New Zeeland)'로 바뀌어서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의 뉴질랜드 이름이 된 것이다.

하지만 곤욕을 치른 아벨 태즈먼이 그 이후에 두 번 다시 뉴질랜드를 찾지 않았던 것처럼 19세기 후반 유럽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밀어닥친 초기 뉴질랜드 이주민들의 물결 속에는 네덜란드인들은 거의 없었다. 뉴질랜드에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러니 아무리 그 이름을 네덜란드에 빚지고 있다고는 해도 뉴질랜드에서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 유물이나 볼거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뭐든지 자세히 찾아보면 마침내 보이는 법. 이번 여행길에 우리는 너무나도 네덜란드다운 것을 한 작은 마을에서 볼 수 있었다.

파머스톤 노쓰에서 테 마나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점심을 먹은 후에 우리는 다시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렸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태즈먼 해에 인접해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인 폭스턴(Foxton). 우리가 네덜란드를 떠올릴 때면 튤립과 함께 자동적으로 연상하게 되는 멋진 풍차가 그 마을에 있다는 것을 여행안내책자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 폭스턴의 풍차 '드 몰렌'의 모습. 17세기 네덜란드 전통 풍차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사진은 Foxton Windmill Trust Inc.-폭스턴 풍차 재단-에서)
ⓒ2005 정찰용
파머스톤 노쓰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20여분을 달려 폭스턴에 도착해 보니 과연 4∼5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풍차 한 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가벼운 바람을 맞아 그 커다란 양팔을 슬슬 돌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를 환영한다는 몸짓처럼 여겨졌다.

문외한인 나의 눈에는 일단 겉보기로는 그저 평범한 풍차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입구에서 받은 안내책자를 들여다보니 '드 몰렌(De Molen)'이라는 이름의 이 풍차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전통 풍차를 그대로 복원해 낸 것으로서 그렇게 만만하게 볼 것이 결코 아니란다.

1990년 첫 발의에서 2003년 개관까지 10년 이상을 공을 들인 이 풍차는,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하여 현지의 건축가로부터 직접 디자인과 사양을 받아왔으며 이후 뉴질랜드내 네덜란드 커뮤니티의 재정 지원과 자문을 얻어서 이 마을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제공한 노동력으로 완성한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고전적인 작품의 아름다움을 좀 더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내부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우리는 골드 코인(색깔이 황금색인 뉴질랜드의 1달러나 2달러짜리 동전을 말함) 기부금을 입장료로 내고 풍차의 내부 2층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기어 올라갔다.

▲ '드 몰렌' 풍차의 내부 모습. 기어의 톱니까지도 전통적인 방식대로 나무로 만들었다. (사진은 Foxton Windmill Trust Inc.-폭스턴 풍차 재단-에서)
제법 넓은 다락방처럼 느껴지는 그 내부 공간은 다시 5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복잡한 기계장치들이 층간에 이어지고 있었다. 톱니처럼 맞물려 있는 기어, 그들을 이어주는 축, 맷돌이 들어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둥근 통 등 대부분의 기계장치들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희뿌연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것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그 기계장치를 실제로 작동시켜 움직이는 모습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풍차는 이처럼 실제로도 작동이 되어 밀가루를 빻아내며 그렇게 빻은 밀가루를 아래층 매장에서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고 한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기능까지도 17세기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제분 방식을 그대로 복원하기 위하여 풍차 내부에 쓰인 기어와 맷돌, 풍차의 팔(돛대) 등 주요 자재까지도 네덜란드에서 직접 들여와 만들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2003년 4월에 이 풍차가 문을 열고나서 한 해 동안만 6만 명에 이르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또한 네덜란드의 전직 총리까지도 다녀갔다는 사실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떠나기 전에, 주민 수가 모두 합쳐서 5천명도 채 되지 않는 이 바닷가 작은 마을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른 '드 몰렌' 풍차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 '드 몰렌' 풍차가 있어 뉴질랜드는 비로소 그 이름에 걸맞는 관광명소를 지니게 되었다. (사진은 Foxton Windmill Trust Inc.-폭스턴 풍차 재단-에서)
ⓒ2005 정철용
이 풍차가 있어 뉴질랜드는 드디어 그 이름에 걸맞은 관광명소를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풍차인가. 그러나 바람을 경영하여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의 돈을 빻아내고 있는 '드 몰렌' 풍차는 자랑하는 기색도 없이 얌전하게 슬슬 돌아가고 있었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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