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내 마음 속에 신이 있었네
인도네시아 여행기(7) : 수라바야의 브로모 화산(2)
정철용(ccypoet) 기자
빠난자칸산 전망대에서 장엄한 해돋이를 보고 구름바다 아래로 하산한다. 다시 지프를 타고 산길을 내려오면서 창문을 통해 길 옆을 보니 천길 낭떠러지다. 이런 길을 그 어둠 속에서 달렸단 말인가. 오싹 소름이 돋는다.

내리막길이 끝나자 지프는 울퉁불퉁한 모래바다를 달린다. 2천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들의 중턱쯤에 해당되는 지대에 이렇게 모래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가이드의 말로는 주변의 화산들이 폭발했을 때 분출된 화산재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몹시도 고와보이는 모래는 잿빛이다.

요철지대를 지나 평탄한 모래밭으로 들어서자 말을 탄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와 우리가 탄 지프를 뒤쫓아 온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역마차를 습격하는 인디언들처럼 우리의 지프로 다가온 그들은 가이드에게 두꺼운 종이쪽지들을 건넨다. 가이드는 말의 이름이 적혀있는 그 종이쪽지를 하나씩 우리에게 주면서 여기서부터 브로모 화산의 분화구까지는 이제 말을 타고 가야한다고 말한다.

▲ 유황연기 피어오르는 브로모 화산의 분화구. 저 아래 힌두신들이 살고 있다.
ⓒ 정철용
유황 연기 내뿜는 신들의 거처, 브로모 화산

겁 많은 아내와 장모님을 빼놓고 장인어른과 나와 아이들은 모두 말에 올라탄다. 뉴질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준수한 말이 아니라 조랑말에 가까운 작은 말들이다. 난생 처음 타보는 말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지만 기수가 옆에서 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으니 탈만하다.

브로모 화산의 전설

옛날에 조꼬 세거(Joko Seger)라는 왕과 로로 안텡(Roro Anteng)이라는 왕비가 살고 있었다. 매우 고결한 기품을 지닌 그들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에게 간곡하게 기도를 드렸다. 이에 감동한 신들은 마침내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 조건은 막내를 제물로 바치면 많은 자식들을 낳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신들과 약속을 했다.

그 후로 조코와 로로는 많은 자식들을 낳아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그들은 신들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근심에 빠졌다. 그들은 사랑하는 막내아들 케수마(Kesuma)를 도저히 제물로 바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참다못한 신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온 마을에 재앙을 내리는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이 사실을 안 케수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몸을 브로모 화산의 분화구에 던졌다. 이에 신들은 노여움을 풀었다는 표시로 분화구로부터 거대한 구름을 분출했다.

이후 브로모 화산 주변에 사는 고산족인 텐거족(Tengger, 이 이름은 왕비의 성 Anteng과 왕의 성 Seger의 끝 음절을 합성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달력으로 마지막 달의 보름날에 과일이나 야채와 꽃 또는 가축 등을 제물로 브로모 화산의 분화구에 던지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것을 야드냐 까사다(Yadnya Kasada)라고 부른다. / 정철용
그 말을 타고 제법 먼 거리의 모래바다를 건넌다. 모래언덕 위, 브로모 화산의 분화구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앞에서 우리는 내린다. 돌아가는 길에 또 말을 타니 나중에 다시 그 앞에서 만나자고 기수는 말한다.

중간 중간에 쉬어가면서 248개의 가파른 계단들을 모두 오르니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까 전망대에서 보았던 그 하얀 유황 연기가 잿빛의 분화구 한복판 갈라진 틈에서 솟아나오고 있다. 마지막 분출이 1993년에 있었다고 하니 브로모 화산은 아직 활화산인 셈이다.

계단 중간 중간에 사람들이 앉아 꽃을 팔고 있더니만 계단 끝 꼭대기 위에서도 한 노인이 에델바이스로 만든 꽃다발을 팔고 있다. 그는 분화구를 가리키며 꽃을 집어던지는 시늉을 한다. 유황 연기 피어오르는 화산 꼭대기에서 웬 꽃이람. 그것이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저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래, 신들의 거처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유황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못 참겠던지 아이들은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조른다. 올라갈 때와는 달리 우리는 계단을 단숨에 내려온다. 계단을 다 내려와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를 태웠던 말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등에 태우고 숨을 헉헉거리며 모래언덕을 올라온다.

10살 된 나의 말 바라(Bara)'는 쉴 틈도 없이 다시 나를 태우고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70kg이 조금 넘는 내 몸무게가 그렇게 무거웠나. '바라'는 연신 방귀를 뀌어댄다. 그 꼴이 우스우면서도 안쓰럽다. 뒤쫓아 오는 딸아이가 내 말이 뀌어대는 방귀 소리에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바라'는 아내와 장모님이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준다. 말에서 내린 나는 '바라'의 옆구리를 쓰다듬어 준다.
"내가 너무 무거웠지? 그래도 잘 참아주었으니 고맙다, 바라야."

불교와 힌두교가 혼합된 사원, 자위 사원

7시 40분쯤 호텔로 돌아와 우리는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서양식으로 간단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는 뷔페식 아침 식사에 빵은 보이는데 우유가 안 보인다. 아이들이 우유를 찾길래 호텔 직원에게 주문을 하였더니 바로 갖다 준다.

▲ 채 가시지 않은 구름을 배경으로 모래밭 한복판에 서 있는 힌두 사원.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들어가지 못했다.
ⓒ 정철용
가이드의 말로는 이 지역에는 이슬람교로부터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어든 힌두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유를 놓지 않은 것은 그래서일까?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하여 숭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전에 다녀온 브로모 화산 아래에서 보았던 힌두 사원을 떠올리며 나는 나름대로 그렇게 추정해 본다.

아직 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넓은 모래바다의 한복판에 신비한 모습으로 서 있던 힌두 사원이 눈에 자꾸 밟힌다. 외부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아쉽게도 우리는 그 힌두 사원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1년에 단 한 번, 이들의 달력으로 마지막 달의 보름날(보통 10월이나 11월에 해당됨)에 열리는 축제 때에 외부인들에게도 개방이 된다고 하는데, 그때 다시 찾아올 것인가.

▲ 불교와 힌두 양식이 혼합된 사원 간디 자위. 족자카르타에서 보았던 문두트 사원과 비슷하다.
ⓒ 정철용
기약 없는 후일을 도모하기보다 우리는 가능한 현재를 선택하기로 한다. 호텔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한 후 바로 공항으로 가는 대신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또 다른 사원을 구경하기로 한 것이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 기사와 가이드에게 별도의 요금을 더 주기로 하고 우리는 호텔에서 2시간을 쉰 후 출발을 했다.

불교 양식과 힌두 양식이 혼합된 사원이라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트레테스(Tretes)의 자위 사원(Candi Jawi)은 족자카르타에서 보았던 문두트 사원(Candi Mundut)과 비슷해서 큰 감흥이 들지 않는다.

카르타나가라(Kartanagara) 왕이 다스리던 싱가사리(Singasari) 왕조의 마지막 시기인 13세기 후반에 지어진 사원이라고 한다. 그는 불교와 힌두교는 동일한 종교의 두 측면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이 사원의 석실에 있는 신상(神像)은 반은 시바의 모습으로 나머지 반은 부처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신상이 없는 신의 집, 모스크

점심을 먹고 수라바야로 향한다. 도로 양 옆으로 늘어선 집들이 하나같이 낡고 추레하다. 그러다가 가끔씩 번듯하고 화려해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띈다. 이슬람 사원, 즉 모스크다. 인도네시아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이 기막힌 부조화가 너무나 불공평해 보여서 가이드에게 묻는다.

“저기 저 집들은 저렇게 낡고 더러운데, 모스크는 왜 그렇게 크고 화려하게 짓는가요?”
“모스크는 신들이 사는 집이니까요.”

이슬람교도인 가이드는 내 질문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한다. 그 대답에 나는 할말을 잃는다. 이들은 물질은 가난해도 마음은 결코 가난하지 않구나. 내 질문의 부질없음을 그리고 가이드의 대답이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뒤늦게 깨닫고 나는 부끄러워진다.

반둥 가는 길에서도 보았는데, 여기서도 작은 마을들을 통과하는 비좁은 길의 한가운데에서 돈을 구걸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자기 마을에 번듯한 모스크를 짓기 위해 돈을 모금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부에서 지원을 안 해주니 직접 마을 주민들이 나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지은 모스크의 내부를 한번 구경해보고 싶어서 가이드에게 부탁을 했더니 수라바야 시내에 있는 한 모스크에 우리를 내려 준다. 자카르타에서도 겉모습만 보았을 뿐이어서 모스크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장식과 으리으리한 규모를 생각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선 모스크의 내부는 너무나 단순하고 소박하다. 의자도 없는 맨바닥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흰 벽이 너무나 정결하다. 겉보기와는 달리 너무나 소박하고 단순한 모스크 안에서 나는 어디에 시선을 둬야 될지 몰라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사원이면 으레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신상(神像)이 보이지 않는다. 신상이 없는 신의 집이라니! 그렇다면 신은 어디에 사는가?

남자 몇 명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 모습이 자못 경건하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알아챈다. 신은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 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명 있을 것이라고. 기도를 올리는 그들의 마음이 바로 그들의 신을 모신 석실일 터이다.

전날 밤에 묵었던 호텔 방에서 발견한 천정의 ‘키블라’ 표시를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나는 그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물러 나온다. 가이드와 기사가 시계를 쳐다보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메카의 카바 신전을 향해 있는 '키블라' 표시. 그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기도할 때 신은 기도하는 이의 마음속에 깃든다.
ⓒ 정철용
자카르타로 돌아와 처남 집에서 하루를 더 머물고 우리는 오클랜드의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 비행기 안에서 나는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자카르타와 족자카르타 그리고 반둥과 수라바야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풍경들을 말이다.

우리에게는 고작 1500원에 불과한 10,000루피아를 받고도 너무나 고마워하는 그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끼고 고마워하는 마음. 그들의 마음속에 항상 깃들어 있는 신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물질적 가난 속에서도 풍요로운 그 마음일 것이다.
본 기사를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여행기를 마칩니다. 관심있게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여행 일정과 숙박 및 교통편 등을 세세하게 준비하고 예약해준 처남과 말이 잘 통하지 않음에도 친절하게 설명해 준 현지 가이드와 운전 기사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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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에서 맞은 해돋이
인도네시아 여행기(6)-수라바야의 브로모 화산(1)
정철용(ccypoet) 기자
반둥의 땅꾸반 뻬라후 화산에 몹시 실망하고 돌아온 우리에게 처남은 다시 화산행을 권유한다. 이번에는 자바 섬의 동쪽에 위치한 브로모 화산.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며 동부 자바의 주도(州都)이기도 한 수라바야의 남쪽에 있는 유명한 화산이란다.

▲ 해 떠오르기 전 동쪽 하늘의 황금빛이 눈부시다.
ⓒ 정철용
그 화산에서 맞이하는 해돋이가 장관이라고, 이번에는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처남은 자꾸 우리의 등을 떠민다. 2주간의 인도네시아 일정이 이제 다 끝나가니 그럼 마지막으로 그곳에 다녀올까? 반둥에서 뺨맞은 것을 수라바야에서 풀고 오는 것도 괜찮을 성 싶어서 우리는 다시 짐을 꾸렸다. 이번에는 처남과 함께 살고 계신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짜리 조카와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공항에서 낙오자가 되어 2시간 늦게 출발하다

그런데 우리끼리 다닐 때는 괜찮더니만 어른들을 모시고 가는 그날따라 교통체증이 너무나 심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와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8시 50분. 평소 걸리는 시간의 두 배가 더 걸렸다. 결국 9시에 출발하는 수라바야행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오랫동안 직업군인 생활을 하셨던 장인어른의 말씀을 빌리자면 우리는 졸지에 '낙오자'가 된 셈이었다.

우리는 '낙오자 처리반'(?)에 우리 일행 여섯 명의 이름을 올려놓고 다음편 비행기에 빈 좌석이 나기만을 기다렸다. 10시 비행기에 빈자리가 나지 않자 나는 몹시 초조해졌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되는데 과연 빈자리가 한꺼번에 나올 수 있을까? 처남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아예 아직 자리가 있는 오후편 비행기로 새로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이 어떨지를 의논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인어른께서는 조금 두고 보자며, 낙오자답게 낙오자 처리반의 처분만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계셨다. 마침내 10시 30분이 지나자 낙오자 처리반의 직원이 나를 향해 손짓을 보내왔다. 운 좋게도 11시 비행기에서 여섯 자리 모두가 나온 것이다! 이 행운은 분명 나의 초조함이 아니라 장인어른의 느긋함에서 비롯된 것이 확실했다.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수라바야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현지의 가이드와 운전기사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남이 미리 여행사에 알려주어서 이들도 우리의 늦은 출발을 이미 알고 있었던지 전혀 불평이나 군소리가 없었다.

▲ 태양이 쏘아보내는 황금빛 화살에 나는 환성 대신 침묵으로 답했다.
ⓒ 정철용
우리는 에어컨이 시원찮은 8인승 승합차를 타고 수라바야 시를 벗어나 남쪽으로 한참 달렸다. 쁘로볼링고라는 작은 마을 못 미쳐서 차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덜컹거리며 산길을 20분쯤 올라가니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 큰 건물이 서 있었다. 그랜드 브로모 호텔. 우리가 묵을 숙소였다.

본격적인 일정은 다음날 새벽 3시 30분부터 시작될 예정이라며 가이드와 운전기사는 우리가 호텔 투숙 절차를 마치자 물러났다. 산 아래 전망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야외수영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영을 즐겼다. 제법 물이 차가웠다.

제비 몇 마리가 수영장의 물 위에 떠 있는 벌레를 보았는지 낮게 비행하면서 물수제비를 떴다. 저런 제비를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던가. 제법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는 뉴질랜드에도 제비는 없으니 분명 한국에서였을 터인데, 그게 언제 적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 제비들이 모두 여기서 살고 있었구나.

알전구들을 가로등 삼아 어두운 산길을 달리다

다음날 새벽 3시. 모닝콜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우리는 서둘러 옷을 차려입는다. 밤을 지새워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보기는 아마도 내 생애에서 처음인 것 같다. 베란다에 나가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는 별들과 묵직한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세상이 너무나 고요해서 숨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울 지경이다.

호텔 로비에는 가이드와 기사가 벌써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2시 30분에 일어났다고 한다. 남들은 모두 잠들어 있을 시간에 깨어나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세상을 만끽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일까. 그러나 그 시간이 그들에게는 일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내 말이 어쩌다가 새벽에 깨어난 이의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 섬세한 주름이 아름다운 바톡산과 하얀 유황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브로모산. 그 뒷편 중앙에 스메루산도 보인다.
ⓒ 정철용
로비 한 구석에 마련된 뜨거운 차를 한 잔씩 마시고 우리는 출발한다. 차는 어두운 산길을 구불구불 느릿느릿 간다. 그 길을 따라 양 옆으로 집들이 드문드문 서 있고 그 집들의 처마에는 어김없이 환하게 불을 밝힌 알전구들이 매달려 있다. 그것은 분명 어둠 속 산길을 오르는 차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짙은 어둠 속 험한 산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걱정했는데, 이렇게 불 밝힌 따스한 마음들이 있었구나. 알전구 주위로 퍼지는 불빛이 너무나 안온하다.

그 알전구들을 가로등 삼아 20여 분쯤 달렸을까. 모자를 쓰고 두꺼운 점퍼를 걸친 한 떼의 키 작은 남자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호텔에서 얻은 지도로 확인해 보니 쩌마랄라왕 마을이다. 작은 지프차들이 비좁은 길의 여기저기에 웅크리고 있다. 그 중 한 지프로 우리는 갈아탄다. 여기서부터는 더 험한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일출과 유황 연기 솟아오르는 화산을 보다

예상대로 길은 더 험해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지프는 요동을 치며 달린다. 길을 비춰주던 알전구들도 없고 이제 오로지 조그만 지프차의 헤드라이트와 운전수의 손만 의지해 달린다. 그 어둠 속의 50여 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 내려오는 길에 본 스메루산이 시커먼 연기를 분출하고 있는 장면
ⓒ 정철용
마침내 일출을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는 빠난자칸산(2740m)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4시 50분. 전망대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우리는 긴 팔 웃옷을 하나 더 걸쳤을 뿐인데, 모자를 쓰고 두터운 파카를 입고 장갑까지 낀 사람들도 있다.

해가 곧 떠오르려는지 동쪽 하늘 지평선 부근 산 주위에서 시작된 황금빛이 점점 넓어지면서 짙은 군청색 하늘을 자꾸 위로 밀어낸다. 그에 따라 지평선 아래 짙은 어둠도 점점 밝아지면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온통 구름바다다. 저 구름바다를 헤치고 우리가 올라왔구나.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천상의 세계에 있는 것인가.

온몸에 스미는 감동을 말없이 즐기고 있는데 드디어 태양이 산의 뒤편에서 첫 햇살을 쏘아 보낸다. 5시 15분. 황금빛 화살을 맞은 사람들이 일제히 환성을 지른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을 경배하기를 말없는 침묵으로 대신한다.

그 어디에서나 해돋이는 장엄한 풍경이다. 스무 살 무렵 북위 38도 한국의 동해안 바닷가에 맞았던 해돋이든, 새로운 천년의 새벽에 세계인들과 함께 지켜본 남위 38도 뉴질랜드 기스본의 일출이든, 그리고 마흔이 되어 그 중간쯤 적도에 가까운 인도네시아의 브로모에서 내 심장을 관통한 태양의 화살이든 간에 말이다.

일출의 순간은 짧아서 사람들은 이내 하산을 서두른다. 우리는 전망대의 남쪽 방향으로 구름바다 속에 마치 섬처럼 솟아있는 듯한 화산들을 다시 눈에 담는다. 원추형의 산정에서 내려오는 선명한 초록빛 능선들이 마치 주름처럼 잡혀 있는 앞쪽의 바톡산(2440m)과 그 왼쪽으로 하얀 유황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잿빛의 브로모산(2392m)이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 저 구름바다 아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 정철용
여기에 그 뒤 연봉들 너머 보이는 스메루산(3676m)의 위용은 새벽 3시에 일어나 1시간 30여 분을 어둠 속 험한 길을 달려온 우리의 노고에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특히 스메루산은 마치 화산 폭발을 재현하여 보여주듯이 간헐적으로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데, 우리가 전망대에 도착하기 몇 분 전쯤에 분출이 있었는지 구름처럼 보이는 잿빛 연기가 스메루산의 산정에서 길게 이어져 있다.

15분마다 이루어진다는 시커먼 연기의 분출이 30분이 지나도 기미가 안 보인다. 가이드가 하산을 권유한다. 구름바다 저 아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또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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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바야/8810

수라바야 2006. 6. 27. 09:29

수라바야/8810

아직은 우리의 70년대 모습, 그러나 꿈은…
2006-03-22 12:30 | VIEW : 5,753

아이들 맘껏 뛰노는 골목으로
예전의 골목길은 지저분하고 허름했지만 이제는 동네가 환하고 깨끗해졌다. 주민들은 진흙탕 길에 보도블록을 깔고 집집마다 화분을 내놓았다. 오른쪽 사진은 수라바야 시 크라잔 쿠팡 캄풍의 주거환경개선사업 이전 모습. 사진 제공 ‘11월 10일 대학’

[도시, 미래로 미래로]<19>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집집마다 훤히 열려 있는 현관문, 집 앞마다 내놓은 화분들, 옹기종기 모여 일감을 매만지는 아낙네들,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바퀴 달린 탈것에서는 모두 내려야 한다고 적힌 골목 입구의 안내판, 골목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 골목길은 마당이고 놀이터고 또 일터다. 우리에게는 흑백사진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1970, 80년대의 골목 안 풍경이 천연색의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곳.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 수라바야다.

○ 대도시 수라바야의 그늘에서 핀 꽃, 캄풍
죽죽 뻗은 키 큰 나무들과 곳곳에 솟은 고층 건물들, 그리고 넓은 도로. 사진으로 본 수라바야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우아한 근대 도시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항공사진 속의 모습일 뿐 이 도시를 실제로 메우고 있는 것은 혼돈이다.



무법자처럼 차로를 휘저으며 달리는 자동차, 시커먼 매연을 뿜는 오토바이들. 도로변 개천에서 나는 악취는 매연과 범벅이 되어 콧속을 후벼 팠다. 넓은 길과 높은 건물로 대변되는 근대 도시의 원형은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처럼 수라바야에서 실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풍경의 도심이 수라바야의 전부는 아니다. 혼돈의 정글 같은 거리 사이로 얼굴을 내비치는 캄풍의 골목길은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한국의 달동네처럼 인도네시아의 저소득층 주거지역을 일컫는 단어, 캄풍(Kampung). 수라바야 시민 300만 명 중 약 63%가 이곳에 살지만 거주 면적은 시 전체의 7%에 불과할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다. 현재 수라바야에는 70여 곳의 캄풍이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인 캄풍의 골목길은 놀랍게도 냄새부터 다르다. 대도시 수라바야의 겉만 번지르르한 빈곤이 캄풍에서는 청빈한 공동체의 풍요로움으로 바뀌었다. 이 평화로운 풍경은 ‘캄풍개선사업’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최소한의 재원으로도 도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국립 ‘11월 10일’ 공과대 건축학과 해피 산토사(65·여) 교수의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단호했다. 그는 조한 실라스(70) 교수와 함께 캄풍개선사업의 주역이다.


수라바야에서 1977년에 시작돼 현재 2단계 진행 중인 캄풍개선사업의 원리는 간단하다. 사업집행구역으로 지정된 캄풍에서는 최대 20가구가 한 단위가 되어 공동체를 구성한다. 이 공동체가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예산 집행 계획을 제출하면 정부는 지원금을 준다. 예산 집행은 공동체 스스로 하고 정부는 집행을 감독할 뿐이다.

2004년 수라바야에서 캄풍개선사업에 집행된 사업비 총액은 3억 원 정도다. 배정되는 예산은 재료 구입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나서 하수구를 만들고 골목길을 포장한다.

○ 공동체가 마을 환경 개선의 주체
2002년 개선 지역으로 지정된 크라잔 쿠팡 캄풍의 한 집을 찾았을 때 이 캄풍의 대표 드위 마완(29) 씨와 작업 근로자 3명을 제외한 6명의 관계자는 모두 동네 부녀자들이었다. 마완 씨는 “토론과 주민 독려는 물론 공사 감독, 모니터링, 조경수 구입, 작업 근로자에 대한 음식 제공까지 모두 여성들이 무보수로 맡아 일을 진행한다”며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지금의 크라잔 쿠팡 캄풍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캄풍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는 것과 달리 정부와 캄풍이 서로를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중재자로 나선 것은 대학이었다. 대학은 각 캄풍의 현황을 조사해 예산집행계획을 보완하게 하고 구성원 간의 갈등이 생기면 조정했다.

캄풍개선사업의 슬로건은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공동체’다. 이 사업은 이슬람 국가에 주는 최고의 건축상인 에이가칸상, 유엔환경상, 그리고 월드해비타트상을 수상했다.

수라바야의 캄풍개선사업은 도시의 변화에서 공동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 사업이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것도 결국 사업을 이끌고 나갈 공동체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라바야의 캄풍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은 깔깔거리며 사진기 앞으로 몰려들곤 했다. 소박하지만 공동체가 건설한 안전한 공간에서 자라난 이들이 만들 미래의 도시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모른 척하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어린이들이 만들 도시와는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다.
수라바야(인도네시아)=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지원금 어떻게 쓰이나▼
‘캄풍’ 주민들의 경제적인 형편은 한국과 비교하자면 생활보호대상자와 차상위 계층의 중간 단계쯤이다.
캄풍개선사업의 특징은 이것이 단지 마을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주민들의 삶을 ‘리디자인’ 한다는 데 있다.

지원된 예산 중 마을 환경개선사업에 사용되는 비용은 전체의 20% 정도다. 나머지 예산은 각 가구의 사업 종자돈으로 사용된다. 새로 고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경제적 자활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기금의 운영방식은 우리의 계와 거의 비슷하다.
우선 공동체의 한 가구에 약 3만 원의 예산이 지원된다.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캄풍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노점이 아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만한 금액이다.



수라바야 캄풍개선사업은 주민들이 경제적 자활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개선사업의 ‘순환기금’을 얻은 주민들은 주거지 인근 시장에 조그만 상점을 내 자신들이 빌려 쓴 돈을 갚아 나간다. 사진 제공 ‘11월 10일 대학’

약간의 이자와 함께 석 달 안에 갚는 이 기금은 다음 가구에 지원된다. 불어나는 기금은 계속 다음 가구에 지원되기 때문에 캄풍개선기금의 이름은 ‘순환기금’이다.
지원을 먼저 받으면 먼저 받아서 좋고 나중에 받으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서 좋다. 자신이 기금을 갚지 못하면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이 나누어 갚아야 한다. 이사를 갈 때는 기금에 진 부채를 모두 청산해야 하고 이미 설정된 기준에 동의하는 가구가 새 구성원이 된다.
수라바야=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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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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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바야 Surabaya

수라바야 2006. 6. 27. 09:06

아시아 (ASIA)

인도네시아 (INDONESIA)

자바 섬 (JAVA)


< 수라바야 Surabaya >



하늘에서 본 수라바야.. 도시가 상당히 깨끗하고 이뻐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이면 여기가 하늘에서 본곳 맞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답니다..


'영웅의 거리‘ 수라바야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출신지이며, 1945년 독립선언 후 영국군이나 재식민지화를 도모하는 네덜란드군과 격렬하게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보인 젊은이들의 정열과 단결이 국민의 사기를 고양시켜, 그 후 실질적인 독립을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전투가 시작된 11월 10일은 ‘영웅의 날’이라는 국경일로 정해져 있으며, 특히 수라바야에서는 구기와 같은 빨간색과 흰색의 의상으로 몸을 감은 대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현재는 외국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인도네시아 제2의 상업도시로 오래전부터 국제항으로서 번성한 딴중 뻬락 항은 지금도 깔리만딴이나 술라웨시, 동부 제도로 가는 물자공급 기지로 북적거린다. 관광객에게는 웅장한 브로모 산이나 인도네시아 각 섬으로 가는 기지가 되고 있다.


§ 교통편


? 비행기

쟈카르타에서 1일 30편(80분 소요, Rp.185.000), 덴빠사르에서 1일 8편 (55분, Rp.91.250)등 주요 도시에서 항공편이 다수 있다.

수라바야의 주안다 공항에는 택시 승차장이 있으며 먼저 요금을 창구에 내고 영수증을 받아서 승차한다. 시내까지는 40분 정도면 도착한다. 다무리사의 버스도 공항에서 출발하는데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다니다.


? 배

펠니사가 깔리만딴?수라웨시?이리안 자야?쟈카르타?수마트라 각 방면으로 가는 배를 운항하고 있다. 사무소는 Pahlawan(☎21041) 거리에 있다. 승차권 예매는 10일 전부터 시작된다. 끄린찌 Kerinci호를 이용할 경우 우중 빤당으로 가는 것은 22시간(이코노미 클래스 Rp.32.000), 발릭빠빤으로 가는 것은 46시간 (이코노미클래스 Rp.48.000)이 소요된다.


? 버스

각 도시에서 수라바야의 교외에 있는 봉우라시 Bungurasih(별칭 Purabaya)버스 터미널행 버스가 자주 있다. 이곳에서 시내 버스 (C나 P-1)를 타면 30분 정도면 수라바야 중심부에 있는 딴중안 플라자 Tunjungan Plaza 쇼핑 센터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갈 수 있다.

브로모 산으로 갈 경우 중계 기지가 될 쁘로볼링고 Probolinggo로 가는 버스도 자주 다니고 있다.(2시간 소요, Rp.1.700,에어컨 차량은 Rp.3.000).


? 열차

수라바야에 역이 세 개 있다. 빠사르 뚜리 Pasar Turi 역에는 무띠아라 우따라 Mustard Tara호 등 쟈카르타 방면에서 북쪽으로 도는(스마랑 경유) 노선이 출발한다.

쟈카르타에서는 남쪽으로 도는 (족쟈카르타 경유)비마 Bima호(15시간)등 1일 3편, 족쟈카르타와 솔로에서 1일 7편 (6.5~5시간), 발리 섬 방면에서는 쟈바 섬의 동쪽 끝 끄따빵 Ketapang 항에 가까운 바뉴왕이 Banywangi에서 1일 3편(7시간) 운행한다.


§ 관광코스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시내 버스와 메모가 자주 출발한다. 사전에 행선지의 번호를 알아두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동물원이나 붕우라시 버스 터미널로 갈 경우에는 빵리마 수디르만 거리 JI. Panglima Sudirman의 버스 정류장에서 C나 P-1의 버스를 탄다. 수라바야 항에 갈 때도 JI. Basuki Rakhmad의 버스 정류장에서 역시 C나 P-1을 이용한다.

대부분의 열차가 도착하는 구비 역에서 걷기 시작한다. 역을 배경으로 빼무다 거리 JI. Pemuda를 걸어가면 외쪽 모퉁이에 동쟈바 관광안내소가 있다. 브로모산으로 가는 투어 소개나 마두라 섬의 소 경주 일정도 알려주므로 들러본다.

안내소 바로 앞의 까윤 거리 JI.Kayum를 강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면 꽃시장이나 수조 안에 있는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요리해 주는 레스토랑이 모인 공원이 있다.

오른쪽으로 돌면 거리의 중심가인 빵리마 수디르만 거리 JI. Panglima Sudrman로 나온다. 합류하는 Basuki Rakhmad 거리를 북쪽으로 향해 걸으면 화려한 쇼핑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딴중안 플라자 안은 싱가포르처럼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북쪽으로 가면 딴중안 거리 JI.Tunjungan로 이름이 바뀌며 귀금속이나 바틱을 취급하는 가게가 나온다. 가루다 항공의 바로 앞을 오른쪽으로 돌아 젠뗑 브사르 거리 JI.Genteng besar로 들어가면 왼편에 중고 전기제품이나 남국의 과일 등을 파는 구뗀 시장이 있다. 이 거리는 밤이 되면 포장마차가 꽉 들어차 있다.


? 수라바야 동물원 Kebun Binatang Surabaya

코모도 대도마뱀?오랑우탄?수마트라 호랑이 등 인도네시아 각 지역의 유명한 동물이 모인 동남 아시아 최대의 동물원이다. 울타리를 사용하지 않고 수로(水路)로 동물을 둘러싸고 있으므로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이 안에는 수족관도 있다. 시내에서는 10분 정도 거리에 있으며 빵리마 수디르만 거리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버스는 모두 동물원 옆에서 정차한다.


? 국민 휴양공원 Taman Hibunan Rakat

유원지?극장?영화관이 모인 수라바야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싸구려 과자집으로 바뀐 저택이 초라하게 있어 묘한 기분이 든다. 오전 6시부터 심야까지 여는데 활기가 넘치는 것은 저녁 무렵부터이다. 목요일 밤 8시부터 와양 오랑, 토요일 밤 8시부터 스리무락(쟈바의 코메디)이 공원 안의 극장에서 상연된다.


§ 호텔

수라바야의 호텔은 가격이 비싼 편이다. 게다가 싼 여관은 몇 군데밖에 없다. 보통 관광객은 수라바야를 이동의 중계 지점으로 생각하고 오래 머물지 않는다.


◎ 역시 하얏트

주소 : Hyatt REegency

☎ (031)511234 Fax (031)521508

신축한 리전시 타워의 코너룸은 욕실에 창이 있어 수라바야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목욕할 수 있다. 요금은 조금 비싸지만 욕실에서 바라보는 야경이나 마두라 섬의 전망은 한번 볼 만한 가치가 있다.


◎ 시내 중심에 있는 중금 호텔 Elmi

주소 : JI. Panglima Sudirmann 42-44

☎ (031)522571

에어컨?텔레비전?냉장고가 있고 장원에는 큰 풀장도 있다.

매일 밤 로비에서 가믈란 연주회가 열리다.


◎ 새로 지어 기분 좋은 호텔 Pavkjoen

주소 : JI. Genteng Besar 94-98

☎ (031)43449

즐거울 정도로 청결하며 넓은 호텔로 화교 아줌마들이 명랑하게 일하고 있다. 호텔 앞 거리에는 밤이 되면 와룽이 많이 있으므로 식사할 때 매우 편리하다.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 수라바야 싼 여관의 대명사 Bamboe Denn

주소 : JI. Ketabang kali 6-A

☎ (031)40333

Garden Palace 호텔 앞 도로를 조금 가면 강이 있으므로 다리를 건너서 바로 왼쪽으로 꺾어진다. 테니스장을 따라 오른쪽 길을 바로 왼쪽으로 꺽어진다. 구비 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이다. 세계 각지에서 여행자가 모이는 여관은 분위기도 좋고 여행 정보도 많다. 만디룸은 공동 사용이다.


발리 섬에서 자바섬으로 넘어가는 곳에 보이는 산... 원시적인 느낌이 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정상에 올라가고팠지요...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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