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언덕마을 몽마르트르의 변신

가난한 화가의 거리서 '보보스'촌으로
파리=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
입력 : 2004.11.18 16:51 05'


‘코 묻은 딱지와 유리 구슬, 손때 묻은 인형과 부서진 로봇 장난감….’ 파리 북쪽에 위치한 언덕 마을 몽마르트르(Montmartre). 이곳에 어린 날의 보물 상자와도 같은 작고 소중한 즐거움을 찾아 파리의 보보스(Bobos·경제적으로 성공한 부르주아면서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삶을 꿈꾸는 신세대)들이 몰려들고 있다.

파리의 명소들 중에서도 몽마르트르만한 요지경이 또 있을까? 20세기 초까지 몽마르트르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다. 피카소가 청년 시절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곳도, 모딜리아니 등 미술사를 장식한 대가들이 둥지를 틀었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지금도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풍경화를 파는 거리의 화가들로 북적댄다. 그런가 하면 몽마르트르로 올라가는 입구는 카바레 물랭루주와 각종 섹스숍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환락가다.


▲ 누가 진짜 사람이고 누가 그림일까요? 파리 몽마르트르의 '거리의 화가'들은 최근 비싸진 집값 때문에 대부분 다른 지역에 살면서 이곳으로 출퇴근한답니다.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기자

그 요란한 모습 속에 몽마르트르의 다른 얼굴이 숨어 있다. 가난한 예술의 보헤미안들 대신 호기심 넘치는 삶을 좇는 부유한 보헤미안들, 즉 보보스가 찾아드는 동네가 된 것이다. 구릉이 거의 없는 파리에서 몽마르트르는 파리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부동산사무실 ‘이모폴리스’의 비르지니 아르씨는 “4~5년 전보다 집세가 엄청나게 올랐다”면서 “주로 경제력 있는 전문직 독신자나 젊은 부부들이 집을 구하러 온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사무실에는 ‘방 2개, 전망 좋음’ 등의 조건을 갖춘 고급 아파트 가격이 92만유로(약 13억원), ‘가구 딸림, 방 2개 아틀리에’라고 써붙인 셋집이 월 2500유로(약 350만원)라고 광고가 붙어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기에는 너무 비싼 동네가 돼버린 것이다.

실제 파리에서 활동 중인 화가들은 아틀리에를 파리 외곽에 가진 사람이 많다. 30년째 몽마르트르의 거리 화가로 활동해온 스타니슬라스 알빈스키씨는 “몽마르트르의 거리 화가들 중 상당수가 다른 지역에서 출퇴근한다”면서 “나는 몽마르트르에 살지만 중심가는 너무 비싸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랫동네에 산다”고 말했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영화 ‘아멜리 풀랭의 환상적 운명’도 몽마르트르의 변화에 큰 몫을 했다. 2001년 개봉된 이 영화가 프랑스는 물론 미국, 일본 등지에서 크게 히트하면서 아멜리의 환상을 좇아 전 세계 관광객과 파리지앵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보보스들이 사는 몽마르트르의 풍속도는 파리의 여느 주택가와는 다르다. 지난 일요일 낮, 몽마르트르 중심지 아베스 거리의 카페와 빵집은 주말 새벽까지 놀다가 늦잠 자고 느지막이 브런치(아침 겸 점심)를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로 북적댔다. 브런치 먹으며 2~3시간 죽치고 앉아 있으면 친구들과 즉석에서 만날 수 있다.

평일 아침 몽마르트르에서 명품 거리인 몽테뉴 거리까지 가는 80번 시내버스를 타도 이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패션계, 광고계 종사자 등 튀는 직업의 젊은 멋쟁이들이 몽마르트르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에 내린다. 4년 전 이사 왔다는 대만인 유학생 황수린(파리 1대학 박사과정·미술사 전공)씨는 “다른 동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활기와 재미가 넘친다”고 말했다.



보보스들이 몰려든다고 몽마르트르가 말끔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탈바꿈한 건 아니다. 정육점이며 치즈가게, 싸구려 옷가지를 파는 시장통에, 고급 주택이 밀집한 한적한 산책로가 뒤섞여 있다. 또 다른 쪽에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도 있다.

관광객과 파리지앵, 부자와 빈자가 한 모퉁이씩을 차지한 채 알록달록 삶을 엮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몽마르트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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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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