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유럽 10-산마르코광장과 플로리안 카페
날짜: 2006.02.01, 글쓴이: 박번순, 조회: 135
니스발 베네치아행 야간열차는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에 7시 36분 도착예정이었고, 여기서 7시 52분 베로나 행 기차를 탈 계획이었다. 니스에서 기차를 탈 때 내가 탄 객차는 기관차 바로 뒤편이었는데 밤에 여기저기서 오는 객차를 연결하고 기관차를 바꾸면서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는 가장 후미에 있었다. 역구내로 들어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무거운 짐을 지고 베로나와 볼로냐를 헤맬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그래서 아예 산마르코 광장에 가보고 바로 피렌제로 들어가 기차 여건에 따라 시에나 혹은 루싸를 택일해 다녀오리라는 생각을 한다.

베네치아인들은 이미 중세에도 단체관광객 유치 사업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컨대 괴테도 베네치아에 와서 하인을 대동하고 산마르코 광장을 어슬렁거렸던 것이다. 산마르코 광장의 정취와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찬탄했기 때문에 더 이상 노래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1997년 5월 초 아드리아해에 불어오는 부드러운 해풍에 아직 쌀쌀한 기운이 스며 있던 늦봄의 어느 저녁 나는 산마르코 광장에서 한껏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광장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비껴가는 햇살에 시시각각 변하는 성당과 종루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 까페의 이름이 플로리안이었다. 플로리안에서는 한 바이올린주자가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했고 드리우는 석양과 함께 종루의 종은 청량한 종소리를 광장과 베네치아 전역에 울리고 있었다. 나는 그 종소리를 들으면서 최고의 기쁨과 설렘 그리고 서울에 있는 가족에게 대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카페의 이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후 2년쯤 지났을까 우연히 신영복선생의 책을 읽다가 “플로리안에서 모의되지 않은 혁명이 없었고 최초의 신문이 만들어졌다”는 내용을 보았다. 플로리안이 갑자기 내게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이후 서양사학자 이광주 선생이 쓴 “베네치아의 까페 플로리안으로 가자”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17세기 후반 플로리안의 탄생부터 카페가 지나온 역사적 발자취를 서양의 문화, 지성사와 함께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플로리안의 실체를 더욱 분명하게 해주었다.

우리에게 플로리안이 어떤 것일까 한번은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경희대 앞에 플로리안이란 식당이 문을 열고 있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옛 직장의 동료와 함께 플로리안이란 식당을 찾아갔다. 경희대 앞 플로리안은 베네치아와의 플로리안과는 달리 푹신푹신한 소파의 식탁테이블이 갖춰져 있었다. 우리가 간 그 때만 그랬는지 손님은 없었고 저렴한 스파게티와 플로리안 정식을 팔고 있었다. 플로리안의 역사나 그 이름을 알고 식당의 문을 열었을 그 주인의 수준을 경희대생들이 알아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 12월 우리식구와 나는 다시 베른으로 들어가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오후에 베네치아에 들렀다. 도착시간은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같았는데 10시 43분 출발 야간열차의 예약은 이미 끝나 있었다. 예약 창구의 직원은 일단 기차를 타보면 자리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걱정이 되었다. 아내는 딸에게 기도를 하라고 한다. 나는 이런 문제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의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고 했다. 딸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는 모르지만(우리가 기차에 올랐을 때 쿠셋이 4석이 비어 있었다) 일단 믿기로 했다.

정선장에서 만난 한 지방대학의 건축과 학생들 3명과 어둠 속에서 리도섬을 들어갔다. 토마스 만을 생각했지만 어둠 속의 리도섬 바다가에는 사람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물가로 갔으나 물색은 보이지 않았고 찰랑이는 소리만 들었다. 물색은 비취 빛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그런 회색이었을까? 학생들과는 계속 동행했다. 그들은 10시 43분 뮌헨행 기차를 탈 예정이었으니 어두운 베네치아를 같이 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초 우리 식구는 플로리안에 가서 식사를 하는 만용을 부려볼 까 생각 중이었는데 3명의 객이 불었다. 우리 식구만 가서 식사를 하기 미안했고 그들과 같이 가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12월 28일 밤 플로리안의 노천 까페는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실내로 들어가야 하는데 제복을 입은 종업원의 서빙을 받기에는 우리 일행의 행색이 너무나 말이 아니었다. 우리나 그 학생들이나 모두 배낭을 짊어지고 그것도 부족해서 손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결국 플로리안의 식사는 포기하고 역 앞으로 나와 중국음식점에서 와인과 함께 더 적은 비용으로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며칠 굶은 것 같이 많이 먹는 그 남학생들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2004년 여름 다시 우리는 베네치아로 갔다. 나는 호기를 부려 플로리안에서 식사를 한번 하자고 했으나 천상 중년의 한국 아줌마인 아내가 극구 만류하여 결국 커피, 콜라, 맹물만 한잔씩 하는데 그쳤다. 괴테를 비롯해 유럽의 역사를 주름 잡았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모사를 꾸몄던 그 플로리안 식당에서 우리는 그렇게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 채 지나쳐 온 것이다.

10시 59분 볼로냐행 기차를 타기로 하고 산마르코 광장을 찾아 나섰다. 골목골목을 돌고 돌아 40분 만에 리알토 다리에 이르고 거의 한 시간 만에 광장에 이르렀다. 아침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예의 그 비둘기들은 여전히 있었고 아드리아해 저 넘어서 아침 해볕이 산마르코 광장 한 쪽을 적셔오고 있었다. 눈부신 태양. 눈을 태양과 마주 뜰 수 없었다. 플로리안은 노천 까페를 열지 않았다. 휑한 광장의 모습이다. 베네치아의 바다색은 우리의 그것과 하등 다름이 없고 좁은 수로의 물은 외견상 불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바다를 노래한 사람이 어디 한 두명인가? 베니스를 보고 죽자라는 말이 있다. 베니스에 이미 4번째 들렸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플로리안에서 폼을 잡고 식사를 한번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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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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