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뉴질랜드 여행기 23] 코로만델 반도의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 몇 곳 ①
동봉
2007. 6. 30. 20:32
+ 종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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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만델 반도가 오클랜드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양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바닷가들 덕택이다. 오클랜드에서 뻗어나온 1번 고속 국도와 코로만델 반도의 간선도로 25번 국도를 2번 고속 국도가 연결시켜주고 있는데, 이 도로들은 화창한 주말과 여름 휴가철에는 오클랜드와 코로만델 반도 사이를 오가는 차들로 몸살을 앓는다. 그중 2번 도로는 교통사고가 많기로 악명이 높아서, 도로 곳곳에 경고 표지판들이 수도 없이 세워져 있다. 졸음운전이나 과속운전은 또 하나의 치명적인 사고(Just Another Fatal Accident)의 요인이 되니 조심하라는 내용을, 그 두음자 'JAFA'를 이용하여 조금씩 변형시킨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지역 주민들은 이것을 다르게 읽는다. '또 한 명의 망할 놈의 오클랜드 시민(Just Another Fucking Aucklander)'이라고. 오클랜드에서 코로만델 반도로 오가는 차량들이 일으키는 수많은 교통사고에 대해서 그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염증을 느끼고 있는가를 너무나도 확연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니 뉴질랜드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골 사람들의 선망이 어린 시샘과 오해가 섞인 편견을 담은 농담이라고 가볍게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코로만델 반도를 찾았던 것은 봄 방학이 끝나가던 9월 말의 평일이어서, 1∙2번 고속 국도도, 25번 국도도 모두 한산했다. 도로 사정이 순조로워서 우리는 예정했던 일정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들러 보자고 마음에만 두고 있었던, 코로만델 반도의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 몇 군데를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 뉴 첨스 비치, 작은 바위섬과 바닷새들이 지키고 있는 해변 여행 첫날, 와이아우 워터웍스에서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나온 우리는 그날 우리가 묵을 숙소가 있는 코로만델 타운 바로 직전에 우회전하여 동쪽 바닷가에 있는 작은 마을 팡가포우아(Whangapoua)로 향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일정에 여유가 생겨서, 다음날 시간이 나면 잠깐 둘러보기로 한 뉴 첨스 비치(New Chums Beach)를 앞당겨서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우리는 해변으로 나갔다. 조금 실망스러워하는 우리의 마음을 아주 고운 흰 모래가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 너머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 누그러뜨려 주었다. 바다에 뫼 산(山)자 형상으로 떠 있는 바위섬이라니! 마치 누군가가 분재를 해놓은 듯한 바위섬이 지키고 있는 해변은 고적하고 아늑하고 또한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해변을 이리저리 거니는 우리를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갑자기 나타난 우리가 이 바닷가에는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은 시냇물이 흘러드는 저 멀리 바닷가 모래밭에 무리지어 앉아 있는 바닷새들이 우리를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오늘 이렇게 그날 찍었던 사진 몇 장을 들여다보며, 나는 내 기억 속에 고적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9월의 어느 봄날 그 바닷가를 복원해내고 있는 것이다. 콜빌 잡화점, 저물 무렵에 만난 코로만델 반도 최북단의 구멍가게 뉴 첨스 비치를 출발한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서 코로만델 타운으로 되돌아왔다. 예약해 놓은 모텔에 도착한 오후 4시경, 일단 체크 인을 하고 짐을 내려놓은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해안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도로 곳곳에 일방통행의 비좁고 작은 다리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기는 했어도, 차들이 드물어서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벌써 문을 닫은 콜빌 잡화점(Colville General Store)이 석양빛에 커다란 붉은 간판을 물들이며 도로변에 고적하게 서 있었다. 각종 생필품과 차량용 휘발유, 그리고 낚시꾼들을 위한 미끼 등 온갖 잡화들을 팔고 있는 이 가게는 코로만델 반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상점인데, 간이우체국도 상점 옆에 붙어 있었다. 아, 이 가게의 주인은 누구이며, 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이들은 또 누구인가? 하루에 몇 사람이나 이 가게를 이용할 것이며, 또 간이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는 이들은 또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차에서 내려 잠시 가게를 둘러보는 내 마음에 떠오르는 질문들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입 다문 채 말없이 앉아있는 이 낡고 오래된 구멍가게가 눈물겨웠다.
시간도 늦었지만 우리 차는 일반 승용차여서 우리는 그 안내판 너머 길은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턴을 해서 다시 잘 포장된 길을 되돌아오면서도, 나는 안내판이 가로막고 있는 저 비포장도로 너머로만 자꾸 향하는 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유를 꿈꾸었던 뉴질랜드의 히피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아마도 저 길 너머, 일반인들은 쉽사리 닿지 못하는 코로만델 최북단의 바닷가 어디쯤에 숨어 살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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