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2005)..........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20] 우웨이에서 내몽고 고비사막 바단지린 속으로
동봉
2007. 1. 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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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이(武威). 한무제 때 곽거병의 대군이 이 일대를 점령했다. 이 때 설치한 한서사군 우웨이(武威)·장예(張掖)·주취안(酒泉)·둔황(敦煌) 중 동쪽 첫 번째 도시가 여기 우웨이다. 당나라 때 '서늘한 도시' 양주(凉州)라 불렸던 이곳은 고선지 장군의 아버지 고사계가 장교로 복무한 하서군이 주둔했던 지역이다.
이후 당의 세력 확장에 따라 고사계는 더 서쪽 지역으로 이동해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에 이르고 아들 고선지 또한 무관으로서 서역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우리 일행도 그곳에 닿게 될 것이다. 오전 10시까지 늘어지게 자서인지 몸 상태가 어제보다는 한결 낫다. 내가 잠든 사이 다른 일행은 박물관을 다녀오고 산책을 하며 알찬 아침을 보낸다. 일행의 집결을 기다리며 차량을 점검한다.
냉각수와 브레이크 오일, 엔진 누유 여부, 각종 벨트들, 타이어 공기압, 전조등, 하체 차동축과 서스펜션, 계기반의 상태를 살펴본다. 매일 아침 반복하는 일임에도 오늘은 각별히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드디어 사막으로 향하는 날인 것이다. '황량함' '죽음' '절대고독' 뭐, 이런 그럴싸한 단어들이 풍기는 겉멋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온전한 실크로드의 유적이란 오직 삭막한 사막 뿐인 탓에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일단 우웨이에서 장예 거쳐 주취안에 이르는 하서주랑 길을 버리고 네이멍구(內蒙古) 고비사막인 '바단지린(巴丹吉林)' 지대로 들어가려 한다. 이후 네이멍구 자치주의 아라싼여우치(阿拉善右旗)를 거쳐 내일 하서주랑으로 다시 들어와 만리장성의 서쪽 끝 지아위관(嘉峪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차량과 적재물 점검이 끝나고 차를 몰아 숙소 인근의 가게로 갔다. 오늘 찬거리와 생수를 구입한다. 두 차 모두 20L 물통이 실려 있지만 행여나 싶어 30여 개의 생수를 또 구입했다. 사막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믿을 건 물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식량(햇반과 라면, 통조림 등)이 고스라니 실려 있으니 물만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다. 차량이 두 대여서 위성전화기는 준비하지 않았다. 상황이 좋다면 한 대가 다른 한 대를 견인하면 될 것이고 여의치 않으면 한 대가 빠져나와 구조를 요청하면 될 것이므로.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두 대 모두 고장이 나거나 탈출할 수 없는 지형에 갇힌다면? 물을 지고 장정 둘이 구조요청을 향해 떠나고 나머지는 조난지점을 이탈하지 않는다. 만약 인근 오아시스나 도로까지 겨우 100Km 거리라면 사막에서의 1일 물 소요량이 2L, 빠지는 모래 사막이 아니라면 1일 20Km까지의 행군이 가능하고… 그러면 구조요청일까지 총 5일 소요, 물은 10L가 필요하다는 얘기. 물 10L와 5일치 식량을 지고 사막을 걷는다… 흠. 에라, 그냥 길에서 100km 이상은 절대 벗어나지 말자. 우웨이에서 다시 만난 김일제
이 곳 우웨이는 김일제의 아버지 휴도왕의 활동무대였다. 휴도왕이 이웃 흉노왕인 곤사왕(昆邪王)의 꾐에 빠져 죽자 김일제 형제와 그의 어머니는 곽거병에게 포로가 되는데 일제의 아버지가 항복하지 않고 죽었으므로 말 기르는 일을 맡았다. 이 때 그의 나이 14세였는데 무제가 잔칫날 말을 검열할 제 말을 끌고 어전 앞을 지나던 수십 인이 왕의 후궁들을 흘끔거렸으나 뚝심있고 선 굵은 김일제만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지. 용모가 엄숙하고 훤칠한 데다(키가 8척 2촌) 일제가 끌고 있는 말 또한 살찌고 훌륭한 지라 무제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출신을 물었단다. 이에 일제가 자신의 내력을 밝히니 무제가 기특하게 여기고 군마를 관리하는 마감(馬鑑) 벼슬에 임명했다. 이후 무제를 암살하는 자객을 한 눈에 알아보고 저지함으로써 무제의 총애를 얻고, 훗날 '투후'벼슬에까지 봉해진다. 이후 그들의 후손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신라왕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인데 오늘날엔 꽤 설득력을 얻고 있는 설이어서 이국에서 만난 석상 하나가 가벼이 보이지 않는다. 우웨이의 김일제 상은 한반도에서 온 나그네의 생각을 읽는지 못 읽는지 말지기를 하던 때 모습 그대로 인민 공원을 지키고 있는데 그 뒤로 청동분마상(靑銅奔馬像)이 우뚝하다.
하늘에 가득 그의 목청이 울릴 듯, 입은 포효하고 발동작은 거세다. 왼쪽으로 살짝 뒤틀린 목은 역동적이다. 조형적 아름다움이야 그렇다 쳐도 제비를 밟고 뛰는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말의 빠름을 강조한 고대인의 재치가 상큼하다. 공원 높은 대(臺) 위에 뛰는 말이 하늘을 날고 있다. 그야말로 고대인들이 간절히 원했던 천마가 저기 있다.
낡고 때 묻었지만 목까지 단추를 가지런히 잠근 농부. 척박한 땅에서 어렵게 수확한 산물을 이 값에 넘기는 그에게서 삶의 무게가 덕지덕지 묻어났다. 무언가를 싸게 사서 마음이 아픈 건 또 무슨 감정이냐. 16시45분 물어물어 진창을 떠났다.
잠시 차를 세우고 일들을 봤다. 무슨 일을 봤냐고 묻지 마라. 무슨 일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하지 마라. 남자들은 알아서 차 주위에 포진하고,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막의 배 낙타 아라싼여우치까지는 지도상 도로가 표기되어 있다. 이대로 달리면 된다. 눈은 지평선에 머물고 운전대를 잡은 손은 고정되어 있다. 차는 100Km 속도를 유지하는데 좌우의 풍광은 멈춰선 채 그대로다. 아.......사방이 불타는데, 지평선 근처엔 아지랑이처럼 열기가 피는데 꾸물거리는 장애물이 얼핏 보인다. 낙타다. 수십 마리의 낙타가 풀(엄밀히 말하면 가시나무)을 뜯다가 도로를 넘어 다른 쪽으로 몰려 간다. 이 녀석들이 놀란 것인지 반가워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일에 제법 익숙한 표정이다.
단번에 100리터의 물을 먹고는 물 없이 3일에서 일주일을 견딘다. 인내를 뽑아내면 20일까지도 생존한다. 단봉낙타는 타기에 좋고 쌍봉낙타는 짐을 실어 나르기에 적당한데 200kg의 짐을 지고 매일 30km씩 일주일을 행군할 수 있다. 바로 이곳 고비사막이 쌍봉낙타의 고향이다. 우리의 철낙타 백구와 파라곤. 바퀴는 굵고 표면은 각질화 되어 있다. 또한 홈은 깊어 모래에 잘 빠지지 않으며 뜨거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75리터의 연료를 마시고 보급 없이 600km를 달릴 수 있다. 400kg의 짐과 5인의 사람을 태우고 끝없이 행군할 수 있다. 출생지는 다르지만 이들은 이곳을 위해 태어났다. 차를 가로막은 낙타가 느리게 되새김질 하며 눈을 꿈뻑거린다. 백구도 거친 숨을 고르며 응시한다. 서로를 알아본 탓일까? 권태를 되새김질하는 저 낙타만이 이곳의 생명체다. 물론 방목한 낙타들의 수를 헤아리러 얼마 만에 한 번씩은 사람이 나타날 게다. 이곳은 시간이 멈추어진 세계. 오늘이 어제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곳이니 뜻밖의 조우가 반가웠을 터. 다시 달리는데 무전기(CB) 교신이 되지 않는다. 거리가 가까운 데도 먹통인 것이 무언가 문제가 있는가보다. 차창으로 팔을 빼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신호를 보낸다. 주행 중일 때 무전기를 점검하라는 신호. "채널이 돌아갔었네요" 금세 대답이 온다. 고마운 녀석이다. 무슨 일인지 교신거리가 채 200m도 되지 않고 있지만 차량 2대가 한 몸으로 묶일 수 있도록 만든다. 사막에서 사라진 2호차 한참을 달리는데 왼편으로 길 같잖은 길이 사막 깊은 곳으로 뻗어있다. 주변은 온통 모래뿐, 지형지물이 없으니 지도와 대조하지 못하겠다. 네비게이션 상의 위성 좌표로 분간을 해 보려다 까뭇 잠든 철봉씨를 깨우기 난처해되는 데까지 가보자 맘먹고 달렸다.
서둘러 2호차가 사라진 길로 쫓아갔다. 처음엔 그냥 속도내서 따라가면 만나려니 했다. 그러나 한참을 달려도 외줄기 뿐인 이 길에서 앞지른 2호차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일반적인 상식으론 한 팀의 차가 보이지 않으면 속도를 줄이고 주행하든가 정차해서 기다릴 텐데 가도가도 만날 수가 없다니.
혹 어딘가에 전복된 것은 아닐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아무 일도 생긴 게 아니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