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폼페이, 그 비극의 현장에서
동봉
2007. 4. 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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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여행에 이어 이젠 좀 더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역사에서 사라졌던 도시 폼페이. 폼페이는 무려 1500년 동안이나 땅속에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순박하고 친근하게 다가온 '폼페이' 사철을 타고 폼페이로 향하면서 바라본 이탈리아의 풍경들은 로마와는 사뭇 달랐다. 로마가 오래된 유적지를 깨끗하게 갈고 닦아 화려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면 이탈리아의 지방의 모습은 우리의 시골 풍경을 보듯 소박하고 평범해 보였다. 특히, 열차로 이동할 때 눈에 띄는 것은 열차길 곳곳에 그려진 낙서들이었다. 그 중 대다수는 지저분한 낙서가 아니라 정성이 가득한 그림 작품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훌륭해 보였다. 이러한 낙서는 열차는 물론 플랫폼 곳곳에 빼곡히 그려져 있기도 하다(사진 1).
처참한 모습 고스란히 남아 폼페이는 역시 세계적인 유적지답게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진 4∼6) 폼페이의 대부분은 과거의 화려한 모습은 사라지고 뼈대만 초라하게 남아 있어 포로 로마노에서와 비슷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엔 베수비오 화산으로 사라졌던 당시의 처참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특히 폼페이에선 그 유명한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도 가깝게 볼 수 있어 당시의 긴박하고 처참했던 광경들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베수비오 화산으로 인해 사라지기 직전의 폼페이는 아름다운 자연과 위락시설 등 로마의 귀족들이 주로 거주하던 도시로 농업, 상업 등 현대 도시를 버금가는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곳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기둥과 외벽 정도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진 10, 11) 처음 간 입장에서 어떤 건물이 뭘 하는 곳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기억하기는 어려웠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곳 중에 하나는 공회당(사진 9)이다. 이곳은 당시 법원에 해당하는 곳으로 재판이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공회당은 당시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뿌리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 여관과 병원 등은 물론, 현재의 음식점이나 카페에 해당되는 곳들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특히 원형 경기장은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보다도 더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문화생활까지 즐겼던 당시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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